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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국에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 '길위에 김대중'으로 본 '택시운전사'와 '킹메이커'

[#OTT] 영화 '길위에 김대중'으로 본 '택시운전사'와 '킹메이커'
민주주의 지킨 한국 현대사 중심엔 김대중이 있었다

입력 2024-01-24 18:00 | 신문게재 2024-01-2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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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김대중
정치가 DJ의 모습에 가려진 아버지, 남편의 모습이 드러나는 건 ‘길위에 김대중’을 보는 재미다.(사진제공=명필름)

 

지난달 오전 일찍 시내 모처의 영화관. 평소대로라면 한산해야 할 정치 다큐멘터리의 상영에 취재진이 몰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테러를 당하기 이틀 전 용산 CGV에서 열린 ‘길위에 김대중’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이 작품은 개봉 첫 주 1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며 전국에서 단체관람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영화
영화 ‘길위에 김대중’ 소감 밝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연합)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야권 유력 정치인으로 도약하기까지의 과정,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에 맞선 민주화 투쟁과 1987년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 이들의 인터뷰로 담아냈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은 22일 오후 경남 양산시내 한 영화관에서 이번 총선에 출마할 양산지역 갑·을 후보들과 함께 보자는 제안을 직접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를 관람한 후 “가슴에 가장 강렬히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장례식날 권양숙 여사 앞에서 오열했던 모습”이라며 “오늘 영화에서 그분이 5·18묘역 앞에서 오열하던 모습과 똑같더라”고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길위에 김대중1
영화 ‘위에 김대중’은 한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쿠키영상이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들며 등장하기 때문. (사진제공=명필름)

 

전직 대통령의 삶을 다룬 작품은 ‘노무현입니다’를 시작으로 ‘문재인입니다’로 이어졌고 ‘길위에 김대중’이 그 정점을 찍는 모양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남산의 부장들’ ‘1987’ ‘택시운전사’와 최근 1000만 영화로 등극한 ‘서울의 봄’ 등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했지만 모두를 아우르는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고 논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를 촘촘히 엮은 ‘길위에 김대중’의 연출은 다소 투박하다. 일제 치하에서 남들보다 똑똑했던 청년 김대중의 성공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남다른 사업가 기질로 선박 14척을 소유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던 그는 이승만 정권의 하야 그리고 6.25를 겪으며 결심한다.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을 가장 근간에서 보고 접하며 민주주의가 뿌리내려야 할 당위성을 뼈에 새기게 된 것.  ‘길위에 김대중’은 이후 연달아 낙선하며 기운 가세와 그 와중에 병사한 첫 아내에 대한 사무침 그리고 이희호 여사와의 로맨스까지 ‘인간 김대중’의 삶도 놓치지 않는다.

택시운전사
왓챠, 넷플릭스 쿠팡플레이등 모든 OTT로 볼 수 있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세계로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우연히 돕게 된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다. (사진제공=쇼박스)

 

한국 근대사를 잘 모르더라도 이 작품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영화 두편이 있다. 5.18 광주의 비극을 그린 ‘택시운전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제는 그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규명에 앞장서야 할 역린과도 같은 작품이다. 사글세방에서 어린 딸을 키우는  만섭(송강호)은 외국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 통금 전에 돌아오면 거금 10만원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운다. 

그 돈이면 밀린 몇 달치 월세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그곳에 어떤 비극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건 피터 뿐이다. 한 집 건너면 모두가 알 정도로 소박했던 광주시민들은 옆집의 아들이, 술친구였던 앞 집 회사 동료가 한순간에 북한군으로 몰려 맞아죽거나 총알에 쓰러지는 걸 보고 결기한다. 단지 독재타도를 외친 대학생들의 일상적인 데모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길위에 김대중
투옥당시 안기부에 의해 “정치에 복귀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 건강상의 이유로 미국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김대중. 귀국 당시 몰린 환영 인파의 모습이 ‘위에 김대중’에 등장한다. (사진제공=명필름)

 

“발포하라”는 명령에 방아쇠를 당기고 몽둥이를 든 군인들에게 임산부와 어린 딸,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게 꿈이었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양심을 지키고 인간의 도리에 충실했던 광주시민들의 피에 만섭은 가려지고 왜곡된 진실을 전세계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교통과 통신은 물론 언론마저 통제됐던 상황에서 ‘폭동’으로 끝날 뻔했던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위해 한국으로 날아온 피터를 안전하게 귀국시키려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하는 상황.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웃음과 희망을 버무리며 폭넓은 관객층을 동원한 ‘택시운전사’는 2017년 첫 1000만 영화로 등극했다.

‘길위에 김대중’ 속에는 유독 달변가였던 자신의 모습을 자평하는 고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치열한 선거판의 중심에서 사람이 몰리는 곳 어디든 달려가 연설을 시작하면 시장에서 좌판을 벌였던 아낙네들까지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영화 ‘킹메이커’는 그 치열한 전쟁 속 김대중에서 출발한 김운범(설경구)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겨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김운범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는 이름도 존재도 숨겨야만 하는 ‘킹메이커’다. 승리를 위해서는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이 동반돼야 한다는 운범에게 “과정보다 결과”라는 말로 응수하는 인물.

킹메이커
거리의 정치인이었던 운범에게 기꺼이 자신의 지략을 나누는 창대의 모습. 선거에 이기고 기뻐하는 모습은 이 둘의 갈라진 운명에서 가장 달콤한 한 때였다. 티빙과 웨이브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제공=CJ ENM)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창대의 선거 전략 덕분에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마침내 대선 후보에 오르게 된 운범은 당시 정치권 여야인사들의 증언으로 ‘길위에 김대중’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대중의 당선만큼은 볼 수 없다”며 선거조작을 지시하고 이기기 위해 국가예산을 쏟아부은 박정희 대통령의 불안은 ‘킹메이커’의 시작이기도 하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변성현 감독이 ‘지천명 아이돌’ 설경구와 또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제작단계부터 주목받았지만 “당시 정치 지형을 10대가 봐도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은 두 사람을 ‘빛과 그림자’로 대치시키며 역설적인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모티프가 된 두 인물이 갈라선 이후 서로 얼굴도 본 적 없다는 지점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옳은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수단을 쓰는 건 과연 옳은 일인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을 듣노라면 역대 대통령이 보여준 그릇의 크기가 가늠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300만원짜리 디올백에 들어가는 건 휴대폰과 차키, 립스틱 정도가 고작이다. 노트북 하나도 못 들어가는 그 크기를 알고 작금의 시국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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