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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여전한 혐오와 차별, 억압…그럼에도 서로를 보듬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입력 2024-02-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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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에 참석한 박제영 연출(왼쪽부터)과 몰리나 역의 전박찬, 이율(사진=허미선 기자)

 

“몰리나라는 인물이 쉽지 않게 다가왔어요. 성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트랜스젠더인데 처음에는 트랜스젠더냐 트랜스 섹슈얼이냐 논쟁도 있었죠. 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제가 중점적으로 접근한 부분은 언제나 이 객석 어딘가에 당사자가 앉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였던 것 같아요.”

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3월 3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 프레스콜에서 전박찬은 자신이 연기하는 몰리나(이율·전박찬·정일우,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는 몰리나와 정부에 저항하는 정치범 발렌틴(박정복·차선우·최석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빌라 데보트 감옥의 작은 감방에 갇힌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다.

 

2024 거미여인의키스_공연사진8(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중 발렌틴 차선우와 몰리나 전박찬(사진제공=레드앤블루)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g)이 1976년 발표한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1985년 영국 런던 브러시 시어터에서 연극이 초연됐고 같은 해 영화로도 만들어져 칸영화제와 미국·영국 아카데미에서 몰리나 역의 윌리엄 허트(William Hurt)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2년에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이듬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져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거미여인의 키스’는 한국에서 2011년 초연된 후 2015년, 2017년에 이어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시즌에 합류한 박제영 연출은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쓰여진 이 가슴 아픈 이야기가 2024년도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발렌틴과 몰리나처럼 우리도 언제든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박제영 연출(왼쪽부터)과 몰리나 역의 전박찬·이율·정일우, 발렌틴 박정복·최석진·차선우(사진=허미선 기자ㅖ)

 

“다수의 의견과 생각 혹은 그 편견에 의해서 개인이나 소수의 의견이 억눌리고 존엄성까지 무너지는, 우리 일상과 개인의 삶 속에서 처한 상황이 어떤 지점에서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폄훼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발렌틴 혹은 몰리나의 대사들로 위로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엘리펀트송’ 이후 5년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정일우는 “몰리나는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유리알로 설정했다. 그렇게 약해보이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캐릭터로 잡았다”며 “유약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을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지난해 5월 건강문제로 무대를 떠났던 최석진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그는 “쓰러지고 나서 복귀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그때 천천히 ‘거미여인의 키스’ 대본을 봤다”고 털어놓았다.

 

2024 거미여인의키스_공연사진7(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중 발렌틴 최석진과 몰리나 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어쩌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 발렌틴이 갖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무대에서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죠. 겁내지 않고 천천히 해보자 마음먹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입니다.” 

 

이어 최석진은 “제가 제일 무서웠던 건 포용적 예술이었다”며 “제 무대를 보시고 ‘아팠잖아’ ‘아팠었던 거 치고는 괜찮네’ 식으로 예술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너무 아플 것 같다”고 고백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최석진의 무대 복귀작인 동시에 ‘응답하라 1994’의 빙그레로 잘 알려진 B1A4 멤버 차선우의 연극 데뷔작이기도 하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서 ‘헬로, 더 헬: 오델로’ 무대에 올랐던 그는 ‘거미여인의 키스’ 발렌틴으로 처음으로 국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있다. 

 

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발렌틴 역의 박정복·최석진·차선우(사진=허미선 기자)

 

“연극 무대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톤, 발성, 몸동작, 연기의 농도 등도 잘 모르겠어서 초반에는 좀 헤맸던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큰 압박이었는데 좋은 형님들과 연출님 덕분에 무대에서 열심히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박정복은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2막 2장”을 꼽으며 “이번 시즌에서 제일 재밌고 다이내믹한 것 같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되게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던 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고 그 멀어짐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과정들이 재밌습니다.”

 

2024 거미여인의키스_공연사진14(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공연 중 발렌틴 박정복과 몰리나 이율(사진제공=레드앤블루)

 

몰리나 역의 이율 역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며 “몰리나가 유일하게 자신의 속마음, 본심을 얘기하는 부분이라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고 동의를 표했다. 전박찬은 “2막 3장에서 두 사람이 육체적인 저녁을 보내고 서로에게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언급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 같다”고 털어놓았다.

“배우 전박찬이 몰리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극 중 발렌틴이 대사로 해줘요. 너 자신을 폄훼하지 말라고. 아무도 너를 함부로 다루게 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선물같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몰리나한테 필요한 얘기고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발렌틴이 유일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석진 역시 “너 자신을 폄훼하지 말라”는 발렌틴의 대사를 몰리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꼽으며 “최석진으로서 발렌틴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극 중 대사에 있다”고 밝혔다.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하는 대사인데요. ‘너는 이미 훌륭한 순교자야’라고 해요. 그 말을 발렌틴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전박찬·이율·정일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이율은 “몰리나에게 ‘괜찮아’라고 딱 세 글자 밖에 못할 것 같다”며 “그리곤 좀 토닥여줄 것 같다”고 전했다. 차선우는 “몰리나에게는 ‘고마워’, 발렌틴에게는 ‘잘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박정복은 “제가 발렌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2막에서 몰리나가 해준다”고 밝혔다.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너 혼자 잘 살기 위한 게 아니잖아, 너는 참 착한 사람이야 라는 의미의 그 말을 저도 발렌틴에게 해주고 싶어요. 나라면 너 같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성 소수자와 혁명가의 로맨스라는 외연을 두르고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적취향만으로 ‘게이 로맨스’로 치부하기에는 작품이 가진 깊이와 무게가 사뭇 버겁다. 프레스콜 막바지에 전박찬 역시 “관객분들이 이 작품을 단순히 성소수자와 정치 사상범의 로맨스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몰리나 역의 전박찬·이율·정일우, 발렌틴 박정복·최석진·차선우(사진제공=레드앤블루)

 

“보편적인 사랑이야기는 맞지만 현대사회, 특히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우리 역사에 있었던 어떤 운동과도 관련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작품을 좀 더 다양하게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타고난 본성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내면의 상처, 비밀 등을 숨기기 위해 쾌활하게 웃어 보이는 사람과 신념을 위해 본성을 절제하는 듯 보이지만 억압 속에서 결국 본능에 충실하게 돼버리면서 고뇌하는 사람.

‘거미여인의 키스’는 극단에 선 듯 보이지만 결국 이어져 있는 두 사람의 연대 혹은 사랑이야기다. 그 연대와 사랑에는 성별도, 성적 취향도, 정치성향도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한 두 사람이 서로에게 기꺼이 보듬는 존재가 된다는 데서 이 작품은 빛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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