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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한국엔 신정아가 미국엔 애나 델비가 있었다

[조은별 기자의 K엔터+] 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인기 비결

입력 2022-02-22 18:30 | 신문게재 2022-02-2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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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 (사진제공=넷플릭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한국 케이퍼무비의 대명사 ‘범죄의 재구성’에서 최동훈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사기는 상대의 마음 속 욕심의 끈을 흔들어놓는 데서 출발한다. 적은 돈으로 손쉽게 큰돈을 벌고 싶거나 상대의 화려한 인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은 사기의 늪으로 끌어들이는 촉매제다. 

‘구찌샌들’과 ‘셀린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맨해튼 고급호텔에서 생활하던 뉴욕의 미녀 사기꾼은 그런 의미에서 ‘심리전’의 대가다. 독일 출신 상속녀라는 그는 25세가 돼야 인출 가능한 신탁계좌에 6000만 달러가 있다고 주장한다. SNS를 활용해 부유한 삶, 유명인사들과 관계를 자랑하며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돈이 떨어지면 ‘시스템’을 탓하거나 아빠가 화나 용돈이 끊겼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무마한다. K좀비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을 제치고 넷플릭스 글로벌 1위를 차지한 ‘애나 만들기’ 속 주인공 애나 델비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애나 만들기’는 2017년 검거된 여성 사기꾼 애나 소로킨의 사기극을 극화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 프랑스 파리의 패션잡지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애나는 2013년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겨 애나 델비라는 가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자신을 ‘백만장자 상속녀’라고 소개하며 화려한 인맥을 구축하고 뉴욕에 최고 아트 사교 클럽 ‘애나 델비 파운데이션’을 만들기 위해 서류를 위조해 2200만 달러(약 224억 원)가 넘는 대출을 신청하기도 했다. 4년간 그가 사기 친 금액은 약 27만5000달러(약 3억2774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실제 소로킨의 부친은 러시아 출신으로 트럭운전사를 하다 독일로 이민해 냉난방기기를 판매한 소규모 사업가다. 

소로킨의 엽기적인 행각은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묘하게 맞닿아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이민자의 딸이 인맥을 구축해 사기를 쳤다는 점에서 포항 가짜 수산업자 사건이, 여성의 관음증을 더했다는 점에서 신정아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사기의 본질은 ‘심리전’이라는 만국공통의 법칙이 적용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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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 (사진제공=넷플릭스)

 

◇‘포항 수산업자’처럼 화려한 인맥을 구축하고 자랑하라 

소로킨이 ‘애나 델비 파운데이션’ 사교클럽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을 수 있던 건 그의 화려한 인맥에서 비롯됐다. 극 중 소로킨은 변호사 앨런을 찾아가 자신의 보증을 부탁한다.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파트너 변호사인 앨런은 소로킨의 허황된 이야기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소로킨의 인맥과시에 생각을 돌려 금융권 대출을 돕는다. 

극중 소로킨의 인맥 쌓기는 남자친구 체이스의 후원자 노라에서 시작했다. 소로킨을 탐탁지 않아 했던 노라도 그의 ‘말발’에 홀랑 넘어가 자신의 인맥을 소개하며 그를 상류층으로 이끈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논란이 됐던 ‘포항가짜수산업자’ 김모씨 사건이 이와 흡사하다. 사기 잡범이던 김씨는 수감 중 교도소에서 만난 한 언론인의 비호를 받아 지역재계, 정가와 인연을 맺는다. 그는 자신을 ‘1000억원대 유산을 상속받은 지역 재력가’로 소개했고 오징어 사업을 한다며 투자금을 가로챘다. 검거 뒤 김씨가 유력 정치인의 친형에게 거액을 사기치고 유명 연예인과 친분을 맺을 수 있던 것도 감옥에서 쌓은 인맥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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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 (사진제공=넷플릭스)

 

◇‘신정아’처럼 ‘여성성’을 십분 활용하라 

소로킨의 유명세는 그의 엽기적인 행각과 더불어 여성을 향한 관음증이 더해지면서 불어났다. 실제 소로킨은 법정 출두 당시 유명스타일리스트 아나스타샤 워커를 고용해 명품의상을 착용했다.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마이클 코어스의 블랙 드레스, 셀린의 검정 뿔테 안경이나 미우미우의 화이트 원피스는 SNS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소로킨은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한 생로랑의 화이트셔츠와 빅토리아 베컴 팬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울음을 터뜨려 판사에게 “옷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소로킨은 직접 여성성을 활용해 유명세를 더했지만 여성 피의자를 관음적인 시선으로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지난 2007년 학력위조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정아씨의 경우 미국에서 귀국했던 당시 그가 착용한 알랙산더 맥퀸 티셔츠와 보테가 베네타의 가방, 버버리 바지와 돌체 앤 가바나의 재킷까지 낱낱이 보도됐다. 고개 숙여 사과할 때 카메라에 잡힌 그의 헤어스타일까지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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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 (사진제공=넷플릭스)

 

◇‘인스타 팔이’ 피플처럼 SNS에 부를 과시하라 

소로킨에게 SNS는 사기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는 파리에서 패션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SNS에 삶을 기록하며 가상의 부를 과시했다. 소로킨이 남자친구 체이스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사기 행각을 고발한 레이첼 윌리엄스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도 SNS 속 삶 덕분이다. 모로코 여행 경비 6만2000달러(약 7300만원)를 윌리엄스에게 덤터기 씌우고 LA로 도주한 소로킨은 SNS에 올린 흔적 때문에 결국 검거되고 만다. 

SNS로 패가망신 할 줄 알았던 소로킨은 SNS의 힘으로 일어선다. 그가 법정 출두 당시 입었던 의상을 기록한 인스타그램 계정이 생기며 다시금 대중의 시선을 끌었고 결국 소로킨은 자신의 사기행각 스토리를 넷플릭스에 32만 달러에 팔며 마지막까지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자신이 사기 친 이야기를 팔아 사기 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번 셈이다. 미국 정부는 이중 14만 달러를 피해자 구제명목으로 동결했다. 매일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부를 과시하는 한국의 수많은 ‘인스타 팔이’ 피플들의 대모인 셈이다.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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