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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색깔, 상징이 되기까지…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황지혜 '컬러 인사이드'

입력 2023-09-23 07:00 | 신문게재 2023-09-2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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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20년차 CMF(Color, Material, Finishing) 디자이너가 전하는 9가지 색깔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컬러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인간과 어울려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감성 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코코 샤넬의 말을 인용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색은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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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인사이드|황지혜|크레타

 

 

◇ 천박하고 매혹적인 컬러 ‘레드(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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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의 상징 ‘페라리’

 

저자는 레드가 가장 천박할 수도, 가장 매혹적일 수도 있는 컬러라고 말한다. 강인한 생명력, 열정과 사랑, 권력, 분노와 수치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갖는다. 이집트인들은 생명·승리의 의미로 붉은 황토를 몸에 발랐고, 르네상스기에는 권력을 상징했다. 프랑스혁명 후로는 자유와 혁명을 상징한다. 앙리 마티스는 대표작 <붉은 방>에서 작품 전체를 강렬한 레드 원색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까르띠에’는 진한 레드로 제품의 전통과 권위를 살렸다. ‘페라리’는 다소 어두운 ‘로소 스쿠테리’부터 시작해 9개의 대표 레드 컬러를 운영하며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의 국가 상징 색은 높은 채도의 ‘칠리 레드’다. 국기 ‘유니언잭’에도 칠리 레드가 있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국가 상징 색으로 사용되었다. 1854년 앤 여왕이 영국 상선의 깃발 컬러로 공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영국의 명물 공중전화 박스와 이층 버스도 모두 레드 컬러다.


◇ 깊고 넓은 컬러 ‘블루(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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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워커 블루라벨

블루는 이성적이고 중립적이며 깊고 넓다. ‘깨진 얼음의 색’으로, 자연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컬러로 여겨졌다. 지금은 유엔과 유럽연합, 유네스코, 나토 등 국제기구를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잡았다. ‘울트라마린’과 ‘코발트 블루’는 특히 고가와 고귀함의 상징이다. 고호는 코발트 블루를 사용해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삼성의 컬러도 블루다. 2005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블루블랙폰’을 시작으로 ‘페블 블루’ 등 제품의 컨셉과 소재에 최적화된 새로운 블루 컬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조니워커는 라벨 컬러에 따라 서로 다른 풍미와 품질, 캐릭터를 갖는다. 블루라벨은 그 중 최고급 프리미엄 라인업으로 맛과 향, 목 넘김 등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다. 유럽에서 블루가 비범함과 월등함을 상징하듯이, 조니워커 블루라벨도 스카치 위스키계의 왕 중의 왕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다양한 에디션 제품으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 스타벅스의 컬러 ‘그린(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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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컬러를 선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스타벅스

 

그린은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대자연의 시작과 끝이 담긴 컬러다. 편안함과 조화, 균형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린이 미의 여신 비너스를 의미했다. 중세에선 부유층의 컬러였다. 20세기 들어선 반 공산주의 녹색당이나 환경운동을 상징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컬러다.


그린 컬러의 세이렌 로고로 유명한 스타벅스는 창사 40주년을 맞은 2011년부터 지금의 디자인 로고와 그린 컬러를 사용 중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그린을 5% 정도 비율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한 동안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다가 ‘페러킷(parakeet)’이라는 원색의 파격적인 그린 컬러를 선택한 이후, 젊고 혁신적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쇄신했다.


◇ 테니스공의 색깔? ‘엘로(YELLOW)’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낙관적이지만 시기와 질투, 탐욕을 의미하기도 하는 컬러다. 1만 7000년 전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말이 노랑으로 채색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다. 고호는 <해바라기> 작품에서 해바라기는 물론 배경의 벽과 테이블까지 모두 채도를 달리 한 옐로로 칠했다. 이마트나 노브랜드, 이케아 등도 친근하고 즐거운 이미지의 옐로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착용하고 있다.

카카오의 옐로도 눈길을 끈다. 블랙에 가까운 다크 브라운과 옐로의 배색이 명시성과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옐로캡’은 뉴욕 맨해튼의 명물이다. 가장 눈에 띄는 옐로 컬러로 차량 색을 통일하고 운전기사에게도 옐로 점포를 입혔다. 테니스공도 옐로다. 100여 년 동안 사용되던 화이트 고무공이 컬러 TV 보급을 계기로 위기를 맞자 국제테니스연맹이 지금의 색깔로 바꾸었다. 이 컬러가 그린이냐 옐로냐는 논쟁이 지금도 뜨겁다. 현재 공식화된 컬러명은 ‘옵틱 옐로(Optic yellow)’이다.


◇ 에르메르가 만든 컬러 ‘오렌지(O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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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을 글로벌 컬러로 만든 에르메스.

 

주황은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가장 상큼한 컬러다. 인도에서는 ‘영성의 컬러’로 통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찰나를 표현해 화가들은 ‘최적의 컬러’라고 평가한다. 높은 가시성 덕분에 구조용 비행기와 구명조끼, 블랙박스 등 위급 상황에도 적극 활용된다. 미국에서는 재소자 의복의 색상이다. 도주 시 눈에 잘 띄기도 하지만 활력과 긍정적인 사고를 고양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에르메스(Hermes)는 오렌지 컬러에 첫 유명세를 안긴 브랜드다.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가 애용했던 ‘켈리백’에 이어 지금은 최상급 악어가죽으로 일주일에 12개만 만든다는 수제 ‘버킨백’으로 오렌지 원색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존재감이 적은 오렌지 컬러를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다. 스페인과 카톨릭에서 독립시켜 준 민족의 영웅 오랑주(orange) 가문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이 됐다. 오렌지를 형용사로 ‘좋다, 훌륭하다’는 최상급으로 사용할 정도다.


◇ BTS의 상징 색 ‘보라(VIOLET/PUR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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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멤버 ‘뷔’의 바이올렛 컬러 마스크

보라는 변화무쌍한 역동적 가치를 지녔다. 블루에 가까운 바이올렛, 레드에 가까운 퍼플로 나뉜다. 퍼플은 럭셔리를 대변하는 컬러였다. 퍼플 염료 1g 제조에 1만 마리 달팽이가 필요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바이올렛이야 말로 대기의 진정한 색”이라고 극찬했다. 100여 점의 <워털루 다리> 연작을 남겼는데 한결같이 보라 색채다.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는 의상과 액세서리, 화장품, 향수에 이르기까지 퍼플만을 모티브로 삼는다. 그의 퍼플은 특히 수 많은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더욱 빛난다.


최근에 보라는 ‘BTS의 컬러’로 완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2016년 공식 팬 미팅 때 팬들이 응원 봉에 보라색 비닐봉투를 씌워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인 이후 바이올렛 보라는 BTS를 상징하는 컬러가 되었다. BTS는 삼성전자나 아모레퍼시픽과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해당 기업들은 그 때마다 자신들의 색깔을 내려놓고 퍼플을 채용한다.


◇ 마니아를 가진 색 ‘핑크(PINK)’

 

핑크는 마니아 층을 가진 컬러다.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꿈과 낭만의 색이다. 원래 ‘소년의 컬러’로 인식되다가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영부인 마미가 취임식 때 핑크 색 원피스를 입은 이후로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컬러로 바뀌었다. 코코 샤넬이 질투했다는 스키아파렐리는 1938년에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몸매를 본 딴 향수 ‘쇼킹 핑크’로 파장을 일으켰다. 소심하고 차분했던 핑크의 이미지를 파괴적이고 개성 넘치는 컬러로 탈바꿈 시켰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도 왕성하게 펼쳤다.

화가 르누아르는 <잔 사마리의 초상>에서 밝은 옐로에서 핑크로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화법으로 핑크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했다. 핑크 컬러가 주는 진정성과 안정감은 스위스의 페피콘 교도소에도 접목되었다.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교도소 30개 방을 모두 쿨 다운 핑크로 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송파 경찰서 유치장에도 벽면을 핑크와 그린 컬러로 꾸미는 시도가 있었다.


◇ 카리스마 넘치는 ‘블랙(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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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여성의 컬러로 만들러 준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

  

블랙은 어두움과 죽음, 악의 색깔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블랙이 모든 컬러를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 컬러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블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단 번에 바꾼 인물로 코코 샤넬을 든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리틀 블랙 드레스’ 하나로 오늘날 여성의 컬러로 만들어 주었다고 극찬한다. 롤스로이스의 ‘고스트 블랙 배지’는 최고급의 럭셔리한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가장 짙은 블랙을 만들려고 45㎏의 페인트를 투입해 다섯 시간 동안 장인이 손으로 직접 광택을 낸다고 한다.

99.965%의 빛 흡수율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짙은 블랙이 ‘반타블랙(VantaBlack)’이다. 이 신비로운 컬러의 독점권을 사들여 완벽한 어둠과 무를 표현한 이가 인도 출신의 영국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클라우드 게이트’는 거대 조형물을 현존하는 가장 짙고 완벽한 블랙으로 덮어 초현실적 분위기를 창조해 냈다.


◇ 가장 완벽한 색 ‘화이트(WHITE)’


저자는 화이트를 “태초의 색이자 가장 완벽한 색”이라고 말한다. 16세기에 한 때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과부’의 컬러였으나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든 공통적으로 밝음과 빛, 평화와 저항의 상징이다. 흰 리본은 여성폭력 추방운동을 뜻하며, 흰 장미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백장미단 ‘바이세 로제’의 상징이다.

2001년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라이브가 ‘미니멀리즘의 끝판 왕’ 아이팟을 솔리드 화이트 색상으로 선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다양한 컬러로 출시할 것을 원했지만 그가 고집을 부려 화이트 단 하나의 컬러 모델로 내 놓아 대박을 쳤다. 화이트의 백미는 웨딩 드레스다. 1813년 프랑스 패션잡지 <여성과 패션>에서 처음 선보였고,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왕자와 결혼식 때 흰색 공단에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오늘날 화이트 웨딩드레스의 시초가 되었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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