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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정유미가 쓴 18년의 히스토리… 영화 '잠'에서 터.졌.다

[人더컬처] 영화 '잠' 정유미
"밥보다 잠 택하는 스타일, 불면증 겪으며 연기했던 시기도 있어"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렉션 준 '봉준호 키드' 감독님께 감사"

입력 2023-09-11 18:30 | 신문게재 2023-09-12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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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공식 초청작인 ‘잠’은 스크리닝 당시부터 강렬한 몰입감과 서스펜스로 영화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솔직히 ‘앗, 드디어 나에게도 시나리오를 주시려나?’하고 받았더니 ‘봉준호 키드’라 불리는 입봉 감독님을 부탁하는 전화였어요.”


영화 ‘잠’의 시작은 정유미의 휴대폰에 ‘ㅂ’이 뜨면서부터였다. 상대방에 대해 잘 알기 전까지는 모든 이름을 다 저장하지 않는 그에게 초성으로 등록된 부류(?)는 대부분 함께 작업하지 않는 감독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의 일상에 닥친 수면중 이상 행동을 소재로 하고 있다.

남편이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모습은 치료로도 해결되지 않는 비밀이 드러나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국내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의 초청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개봉 직후 할리우드 화제작 ‘오펜하이머’를 누르고 1위에 안착해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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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는 봉준호 감독의 찬사를 받은 영화 ‘잠’ 포스터.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이에 정유미는 “봉 감독님의 후광 덕분인지 한번에 읽혔던 작품”이라면서 “시나리오가 독특했고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러브스토리’라는 관객들의 반응이 특히 기쁘다”고 말했다.

극 중 만삭의 아내이자 무명 배우인 남편을 끝까지 지지하는 수진은 소소한 행복으로 충만한 인물이다. 반려견 후추가 짖는다며 늘 시비를 걸던 아래층 할아버지가 이사 간 뒤에는 새벽마다 쿵쿵거리는 통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는 이웃의 하소연을 받는다.

그 즈음 남편의 코골이가 심해지는가 싶더니 잠결에 온 몸을 피가 나도록 긁는다. 갑자기 냉장고 문을 열고 폭식을 하고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까지 하는데 다음날 기억을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친정 엄마는 부적을 사들고 와 굿을 해야 한다며 딸의 불안함에 기름을 붓는다. 남편이 램수면 상태에서 후추를 냉동고에 넣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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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혈된 눈빛 하나로 스크린을 압도해서일까. 개봉 직후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낸 정유미.(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캐릭터에 접근하면 되려 방해가 될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이)선균 오빠와는 이번이 무려 4번째 만남이에요. 그래선지 10년 만에 만났어도 별 다른 이야기 없이도 통하는 지점이 있어서 연기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죠.”


영화 ‘첩첩산중’(2009), ‘옥희의 영화’(2010), ‘우리 선희’(2013) 등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호흡했던 두 사람의 연기는 ‘잠’이 가진 가장 큰 무기다. 

 

당일날 대본을 주며 날 것 그대로의 연기를 뽑아내는 홍 감독의 현장에서 만난 이들이 군더더기 없는 디렉팅을 앞세운 신인감독의 패기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내기 때문. 

 

램수면 장애로 고통받는 가장의 모습, 그와의 사이에서 연민과 모성애를 오가는 아내로서의 고민이 90분이란 짧은 러닝타임에 촘촘하게 엮인다.

정작 무서운 영화를 못 본다는 그는 “칸에서 첫 상영됐을 때 내가 맡은 수진의 광기를 더 보여줬어야 했나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의학적인 치료에도 차도가 없는 현수의 증상이 딸을 위험에 빠트릴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핏줄이 선 눈과 점점 말라가는 얼굴까지 정유미가 연기하는 찌든 일상의 피로도는 관객들의 현실 공포 지수를 수직상승시킨다.

  

“가끔 타로도 보고 점도 보는 편이예에요. 그래서 극 중 무속신앙에 대한 의지와 믿음이 어떤 기분인지 알죠.(웃음) 하지만 그걸 믿었다면 지금 전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잠을 못 자고 내 자신으로 극한으로 내모는 건 연기 초반에 제가 자주 썼던 방법이에요. 뭔가 그렇게 해야 역할에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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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니’를 자신의 데뷔작으로 꼽는 그는 “연출에 대한 꿈은 아예 없다”면서 “늘 나를 선택한 감독님들에게 좋은 쓰임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몸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연기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무조건 잠을 선택한다. 어렸을 때나 가능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평소 모니터를 잘 확인하지 않는 편이지만 ‘잠’만큼은 현장에서 “나도 모르는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미소지었다.

“조금이라도 수면이 부족하면 바로 티가 나서 요즘에는 밥이냐 잠이냐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순탄하게 이 길을 걸어왔나 싶지만 연기를 그만 둬야하나 깊은 고민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솔직히 이것 말고는 할 게 없더라고요. 좋은 게 70% 이상이고 나머지 30%가 너무 힘든데 그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도 제 몫이란 걸 이제는 알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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