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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전히 유효한 현실, 오페라 ‘노르마’

[Culture Board]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 오페라 ‘노르마’

입력 2023-10-25 18:00 | 신문게재 2023-10-2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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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마
오페라 ‘노르마’(사진제공=예술의전당)

 

남자와의 사랑, 출산 등이 금기시되고 죄가 됐던 시대, 그런 시대의 엄격한 규범 안에서 역할을 강요받으며 자란 여사제 노르마, 그런 그를 둘러싼 신도들과 아주 사적인 노르마만의 공간을 표현한 3500여개 십자가의 중첩, TV와 총의 등장, 현대적 영상과 여성의 바지정장….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인 오페라 ‘노르마’(Norma, 10월 26~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는 알렉스 오예(Alex Olle) 연출의 설명처럼 “전통적인 오페라의 형식을 깨부수는, 현대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며 “실제로 스페인에 존재했고 오래 전부터 가져온 전통적인 가톨릭 문화를 바탕으로 조합해 현실화한 작품”이다.

 

노르마
오페라 ‘노르마’(사진제공=예술의전당)

 

‘노르마’는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가 ‘피가로의 결혼’(2009) 이후 14년만에 제작·초연한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오페라로 로마 지배 하에 있는 갈리아(Gallia 로마 제국이 멸망 이전까지 지배했던 현재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라인강 서쪽의 독일 등을 포함하는 지방)에 터를 잡은 드루이드족 여사제 노르마의 이야기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은 원수인 로마 점령군 수장이자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두 아이를 낳은 노르마가 겪는 사랑과 질투, 배신과 복수, 용서와 희생 등에 대한 이야기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주어진 역할을 강요받는 삶, 극과 극의 갈등, 엄격하기만 한 규범과 극단으로 치닫는 믿음의 폭력성, 사랑에 대한 배신, 금기시된 것과 그를 깨는 이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 그로 인한 혼란과 감정들 등은 지금 시대로 치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노르마
오페라 ‘노르마’(사진제공=예술의전당)

 

당시 40여년간 이어지던 스페인의 독재정치, 가톨릭의 극단적인 보수 성향 등의 환경 속에서 노르마의 삶은 폭풍전야와도 같다. 로마와의 전쟁을 종용하는 드루이드 신도들 사이에서 평화를 지키고자 분투하는가 하면 연인이자 아이들의 아빠인 폴리오네는 아끼는 여사제 아달지사와 또 다른 사랑에 빠져 버린다. 

 

한국인 소프라노로 이번 ‘노르마’ 무대에 오르는 여지원이 “아침 드라마”라고 비유한, 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노르마와 폴리오네는 끝내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높은 지위의 사제이자 한 남자의 연인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종교적 의무, 그로 인한 죄의식과 고뇌, 배신과 증오, 질투 등 복잡한 극한의 감정들이 충돌하고 융합되는 인물 노르마는 한국의 소프라노 여지원과 데시레 랑카토레(Desiree Rancatore)가 연기한다.

 

노르마
오페라 ‘노르마’(사진제공=예술의전당)

 

노르마의 연인이자 로마 점령군의 수장 폴리오네는 마시모 조르다노(Massimo Giordano)와 이라클리 카히제(Irakli Kakhidze), 노르마가 아끼는 여사제이자 폴리오네의 새로운 연인 아달지사는 테레사 이에르볼리노(Teresa Iervolino)와 김정미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로마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를 ‘광기’로 정의한 오예 연출의 말처럼 높은 지위의 중요한 사회인사이자 아내이며 엄마인 여성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 여성들을 향한 편견과 의무, 누군가를 비극으로 내모는 집단 ‘광기’, 비틀린 종교 혹은 믿음 등은 여전히 사회의 난제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렇게 ‘광기’ 어린 로마시대 이야기 ‘노르마’는 지금의 문제와 맞닿으며 2023년의 현실이 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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