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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 “열린 예술 오페라, 박물관 볼거리 아닌 현실로 치환”

입력 2023-10-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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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제가 오페라 연출을 시작하던 1996년부터 유럽의 오페라들은 파격적인 실험을 해왔어요. (인형극, 연극,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등을 연출하던) 그래서 저 역시 오페라 연출을 시작할 수 있게 됐죠. 그렇게 오페라를 비롯해 많은 것을 배우며 여러 상도 받은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인 오페라 ‘노르마’(Norma, 10월 26~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알렉스 오예(Alex Olle) 연출은 “전통적인 오페라의 형식을 깨부수는, 현대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를 오페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의도입니다. 관객이 참여하지 않고 오페라를 느낄 수 없다면 전통적인 오페라는 현대사회에서 사라지고 말 거예요. 오페라는 박물관에 두고 보는 게 아닙니다. 현실 문제를 다루며 관객과 소통해야죠. ‘노르마’ 역시 1831년에 쓰여졌고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이야기를 현실로 치환해 현대화한 작품입니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The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가 2009년 ‘피가로의 결혼’ 이후 14년만에 제작해 초연한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작품이다.

로마 지배 하에 있는 갈리아(Gallia 로마 제국이 멸망 이전까지 지배했던 현재의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서부, 라인강 서쪽의 독일 등을 포함하는 지방)에 터를 잡은 드루이드족의 여사제 노르마의 사랑과 질투, 복수, 용서, 희생 등에 대한 이야기다.

“극 중 사제의 복장은 상상에서 끌어낸 게 아닙니다. 실제로 스페인에 존재했고 오래 전부터 가져온 전통적인 가톨릭 문화를 바탕으로 조합해 현실화한 것들이죠. 당시 스페인은 40여년 간의 독재정치가 지속됐고 그때 이뤄졌던 모든 사실들 그리고 가톨릭의 보수적인 성향을 다 녹여냈습니다. 노르마는 그 가톨릭 교황의 지혜를 대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죠.”

3500여개 십자가의 중첩, TV와 총의 등장, 현대적 영상, 바지정장을 입은 여사제 등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받은 극 중 로마 점령군의 수장인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은 노르마는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금기시했던 남자와의 사랑, 출산 등이 죄가 됐던 시대의 상징이다.

“3500여개의 십자가는 야외와 실내를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무대적 장치입니다. 굉장히 사적인 노르마만의 공간인 동시에 수많은 신도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죠.”

오페라 노르마
3500여개의 십자가를 중첩한 장면들이 인상적인 오페라 ‘노르마’(사진제공=예술의전당)

 

로마와의 전쟁을 종용하는 드루이드 신도들과 평화를 지키려는 노르마, 자신이 아끼는 여사제 아달지사와 또 다른 사랑에 빠진 폴리오네, 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노르마와 폴리오네는 끝내 죽음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로마시대의 중요한 키워드는 항상 ‘광기’입니다. 극한의 감정, 폭발적인 충동 그리고 그 안에서의 사랑, 시기, 질투, 증오 등이 융합돼 있어요. 이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캐릭터가 높은 지위의 사제이자 한 남자의 애인,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했던 노르마죠. 종교의 의무 중 일부인 죄의식과 고뇌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지는 종교의 사회적 위치, 사제의 역할 등 굉장히 복합적인 요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페라 노르마
3500여개의 십자가 중첩으로 꾸린 오페라 ‘노르마’의 무대는 노르만의 개인 공간과 신도들에 둘러싸인 상황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한 연출이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어 오예 연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따뜻한 종교가 아니라 굉장히 광기와 집착적인 종교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종교가 나쁘다, 종교가 사람을 나쁘게 만든다 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 종교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종교의 상징이었고 리더였던 노르마가 살아 있는 채로 화형이 되기까지, 그녀의 아버지까지 동참하는 그 과정을 설명하기가 힘들었어요. 애인이 있기 때문인가, 아이를 낳아서 인가…도대체 이 사람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산채로 화형에 처해지는가 고민이 많았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광기’입니다.”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현재 높은 지위의 중요한 사회인사이자 아내이며 엄마인 여성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 여성들을 향한 편견과 의무도, 보수적인 성향도, 누군가를 비극으로 내모는 집단 ‘광기’도, 비틀린 종교 혹은 믿음도 여전히 사회의 큰 문제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광기’ 어린 로마시대 이야기는 지금의 문제와 맞닿으며 2023년의 현실이 된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알렉스 오예는 1979년 모이아에서 창립된 카탈로니아의 극단 라 푸라 델스 바우스 예술감독 중 한명으로 인형극으로 공연계에 발 디딘 연출가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연출로 급부상해 ‘F@ust 3.0’ ‘XXX’, 카프카의 ‘메타모포시스’, 사무엘 베켓 ‘첫사랑’ 등 연극, 인형극, 마임, 무용 등을 주로 작업하던 그는 스페인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의 ‘아틀란티스’(L‘Atlantida. 1996)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순교’(Martyre de Saint Sebastien, 1997)로 오페라계에 입문해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헥터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파우스트의 저주‘(La Damnation de Faust)를 통해 본격 오페라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 라 스칼라 극장, 파리 국립오페라, 브뤼셀 왕립극장, 마드리드 왕립극장, 리옹 국립오페라, 도쿄 신 국립극장 등에서 ‘마호가니의 도시의 부흥과 몰락’ ‘파우스트’ ‘콰르텟’ ‘프리지오네로’ ‘기대’ ‘트리스탄과 이졸데’ ‘메피스토펠레’ ‘아리아드네와 파르브르블’ ‘투란도트’ ‘카르멘’ 등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전통을 전통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현실로 치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노르마’의 경우 스페인의 주교인 가톨릭 문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죠. 이에 스페인 사람들이라면 무대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종교적 의식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어 “전통적인 오페라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오페라가 발전해야 하고 더 많은 관객들이 찾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현실의 걱정거리, 오늘날의 문제점을 오페라에 녹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관객을 오페라로 끌어들이는 길이자 현대화죠. 젊은 관객 층이 많이 와서 보고 느껴야 해요. 오페라 문화권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아이들부터 부모까지 오페라를 즐기는 게 일반화돼 있어요. 하지만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공연하다 보면 확연히 다르죠. 어린 친구들이 별로 없거든요.”

라 칼라스 신작으로 바쁜 일정에도 ‘노르마’ 내한 공연의 디렉팅에 직접 나선 데 대해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캐릭터성을 배우들에게 직접 알려주고 싶었다”며 “한국 방문이 처음이지만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에 빠져들었고 황정민 배우의 굉장한 팬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알렉스 오예 연출(사진제공=예술의전당)

 

“그렇게 간접적으로나마 한국 문화를 접해오다가 한국에 오게 돼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지금의 오페라는 영화적 요소들이 많이 반영되고 있어요. 조명, 연출, 영상 등 최근 20년 동안 오페라는 현실에 근접하게 발전했죠. 오페라 배우들도 이제는 노래만 잘해서는 안돼요. 노래를 기본으로 연기를 비롯한 다양한 능력이 필요하죠.”

 

이어 “오페라가 전형적인 틀을 깨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분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예술’이 됐으니 한국의 영화감독님들도 오페라 연출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실제로 한국의 몇몇 감독님께 ‘오페라 연출을 한번 해보시라’고 말씀 드리기도 했다. ‘올드보이’는 굉장히 장엄한데 오페라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라고 부연했다.

“이번 ‘노르마’ 한국 공연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오페라라는 장르가 좀 더 대중화되기를 바랍니다. 관객들의 취향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노르마’가 재미없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주 일부라도 재밌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라도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고 즐기는 방향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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