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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1년에 단 한편,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는? '소년들' 정지영 감독

[人더컬처] 영화 '소년들', 실화가 거장을 만나면 생기는 일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이 어떤 윤리로 돌아가는 줄 되물을 줄 알아야한다"

입력 2023-10-30 18:30 | 신문게재 2023-10-3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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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감독한 그는 이후 사회적 화두를 지닌 명작들을 탄생시키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중이다. (사진제공=CJ ENM)

 

이 영화의 가제는 ‘고발’이었다. 하지만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새 모두가 ‘소년들’로  불렸다. 대중들에게는 ‘삼례나라슈퍼 3인조 강도사건’으로 각인된 이 비극은 이후 진범이 증언하고 재심으로 이어지는 17년간, 평범하고 무고했던 3명의 남자를 살인자로 몰았고 가족들을 파탄냈다.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세명의 청년들은 분명 현장에서 겁먹고 있었다. 

누가 봐도 경찰의 강압수사가 의심되는 사건 재현 현장이었지만 그들은 각각 3년에서 6년의 형을 받아 복였했다. 출소 후 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들은 사회적 차별과 더불어 옆 동네 할머니를 패물 몇 개가 탐나 죽인 패륜아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야 했다. 당시 촬영된 비디오를 본 정지영 감독은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들이 보였다. 정확히 이 영화는 공권력에 대한 ‘고발’이니 가제가 강렬하긴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를 되묻게 만들고 싶었다”며 영화가 ‘소년들’이 된 과정을 세세히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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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은 “가장으로서 이기적인 결심이 자신을 줄곧 감독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제공=CJ ENM)

 

“엔딩에도 나오지만 재심이 청구되고 진범도 잡혔지만 거기에 연루된 검찰과 경찰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죠.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어떤 윤리로 돌아가는지 정도는 우리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실 지금도 그런 묵인하에 살고 있다는 걸 ‘소년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지영 감독은 늘 주류에 가려진 비주류의 삶,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대중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희생되는지를 영화로 말해왔다.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 ‘블랙머니’(2019) 등을 통해 줄곧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고들어왔다. 

그는 “살면서 비극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다. 적극적으로 살지 않고 소극적으로 사는 자세에 익숙하다”면서 “늘 사회와 인간을 관통하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그리고 다른 감독들이 잘 안 하는 주제 아닌가”라면서 자신의 반골기질을 설명했다.

“감독으로서 당시 그 상황이 주는 고통의 끝을 화면에 연출해 내는 것이 제몫이라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되려 관객들을 괴롭히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소년들’에서는 일부러 잔인한 장면을 최대한 줄였어요. 얼마전 ‘남부군’을 우연히 재방송으로 봤는데 내가 얼마나 못된 감독인지를 깨닫게 된 것도 한몫했죠. 겨울 눈밭에서 배우들 고생이 얼마나 많았을지가 이제야 보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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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적 상상력과 필터링을 거쳤지만 실화가 가진 묵직함을 간과하지 않은 ‘소년들’의 공식포스터. (사진제공=CJ ENM)

 

문학전집에 빠져 살았던 10대 시절, 가치가 전복된 삶을 주제로 한 디스토피아적 작품에 유독 심취했다는 그는 “여행을 가도 내가 어느 시대적 위치에 있고 어떤 역사를 거친 곳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편”이라고 소년 같은 미소를 지었다. 정지영 감독은 휴대폰을 꺼내 며칠 전 전주 사사회장에서 받은 꽃바구니 사진을 보내주며 울컥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피해자 중 한 분이 보내준 겁니다. 지금은 다들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뒤 몇번 만나고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살가운 관계로 발전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원래는 2년 전 개봉했어야 할 영화였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시기적으로 미뤄지니까 미안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소년들’을 보고 너무 좋아하니까 감동을 넘어 안쓰러움이 밀려들더라고요. 그분들에게는 뭔가 초월한 지점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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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사진제공=CJ ENM)

사건이 일어난 지 9일만에 동네에 살던 3명의 어리숙한 3인조가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마무리된 후 관련자들은 모두 특진과 함께 성공가도를 달린다. 1980년대 대대적으로 벌였던 ‘범죄와의 전쟁’에 적합한 모범적인 수사종결로 보이지만 황 반장(설경구)은 본능적으로 수상함을 느낀다. 결정적인 현장 녹화본은 폐기됐고 글을 쓸 줄 모르는 피해자 한명이 또박또박(?) 그린 진술서와 피해자 가족의 증언 번복이 영 마음에 걸린다.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졌지만 전작을 통해 정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유준상, 허성태, 조진웅이 보여주는 연기적 에너지는 실화가 가진 힘을 더욱 공고히 한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과하지 않게 당시 직업군이 가졌을 법한 비열함과 치열함을 스크린에 토해낸다.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들의 합’이 영화 ‘소년들’에 응축돼 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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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배우들을 먼저 캐스팅한 후 성인 배우들을 골랐다는 정지영 감독. “주조연 구분없이 모두가 영화가 가진 힘을 믿고 따라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사진제공=CJ ENM)

 

“필름을 찍던 시절부터 단련돼 있어선지 요즘 스태프들이 그래요. ‘너무 빨리 찍으신다’고요.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시간이 곧 돈이었기 때문에 이미 머리 속에 모든 편집을 끝내놓고 액션을 외치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이미 배우들이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여러 번 갈 필요도 없이 스태프들과 한 몸이 돼 있더라고요. 차기작으로는 제주 4.3 사건과 김구 암살 직후의 한반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필모그래피에서 그 시절만 없으니 한번 만들어봐야하지 않겠어요?(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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