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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나쁜 남자, 알면서도 당하는 중독성

달콤한 음료수 외에도 과일청, 원액농축음료, 건조과일 등 소위 건강식품도 예외 아니야

입력 2016-08-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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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

 음식중독에서 가장 흔한 게 바로 ‘설탕중독’, 즉 탄수화물중독이다. 설탕중독은 한마디로 ‘나쁜 남자’로 설명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로운 건 알지만, 어느덧 그에게 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도 모르게 그의 치명적인 매력에 중독되어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가 없으면 쓸쓸하고 허전하기만 하다. 주변에서는 그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너는 그 남자에게 또다시 당하고 싶냐고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그가 없이는 이 세상의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중독의 기본 증상인 ‘갈망과 금단’이 바로 설탕중독과 나쁜 남자의 공통점이다. 단것을 먹지 않아 발생하는 감정 기복 등 정신적 질환을 ‘슈가 블루스(Sugar Blues)’라고 한다. 단 음식을 끊으면 손발이 떨리고 산만해지며 우울과 무기력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데, 마치 담배나 마약을 끊었을 때 나타나는 금단현상과 비슷하다.


중독의 또다른 증상은 바로 내성이다. 실제로 단 음식은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해 필요한 만큼 이상의 음식이 들어오면 포만감 신호를 보내서 그만 먹게 하는 조절기능을 무력화시키고 더 먹게 만든다. 그만큼 설탕중독은 특정한 중독현상이며,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케 하여 마치 마약을 복용할 때 뇌의 변화가 동일하게 나타난다.


비만전문가 박용우는 만성스트레스, 수면부족, 설탕, 트랜스지방, 밀가루 등을 음식중독의 다섯 가지 원인으로 꼽았다. 원인을 살펴보면 인류가 물질적 만족과 편리함을 추구하며 발전해오다보니 결국 휴식과 수면이 부족하게 됐고 가공음식을 서둘러 먹어야 하는 바쁜 라이프스타일로 스스로를 몰아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는 권력과 부를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숙했지만 이를 행복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한국인들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제적·기술적 성취를 이뤘지만, OECD 국가 중 자살률은 1위이다. 행복도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등 저개발 국가들보다 뒤처져 있다.


그렇다면 ‘단것을 먹어야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통념은 그렇다면 잘못된 것일까? 스트레스가 많은 수험생, 야근이 잦은 직장인이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산다. 두뇌활동이 증가하면 뇌가 에너지원으로 혈당을 쓰기 때문에 단것에 대한 욕구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당분에 중독되고 심한 경우 정상적인 뇌 활동이 불가능해지며 오히려 저혈당으로 무기력해지는 결과를 일으킨다.


혈당량을 조절하기 위해 달콤한 음료수만 끊으면 될까? 그렇지 않다. 흔히 건강식품으로 인식되는 제품도 알고 보면 엄청난 설탕 덩어리다. 예컨대 즐겨먹는 과일청은 과일과 설탕을 1대1 비율로 섞는다. 과일 1㎏에 설탕 1㎏인 식이다. 과일청 원료로 쓰는 매실, 오미자, 유자 등은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설탕 없이 먹을 수 없다. 흔히 ‘설탕과 과일을 1대1로 섞어 병에 담아두면 설탕이 발효되면서 건강에 좋은 효소가 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설탕 농도가 워낙 높아 효소로 변질되지 않기 때문이다.


‘홍삼원액’이나 ‘블루베리농축액’이라 부르는 건강음료도 알고 보면 원액추출물 50~70%에 물과 사카린 같은 당분을 첨가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술안주나 아이들 간식거리로 자주 먹는 말린 과일은 보통 생과일에 함유된 천연당보다 5~10배 많은 첨가당이 들어 있다. 나쁜 남자인 줄 모르고 그에게 빠져들 듯이 인스턴트음료는 물론 과일청, 가공한 과일, 원액식품이 몸에 좋다거나 병을 낫게 해주고 먹고 있는 셈이다. 이는 설탕을 숟가락으로 퍼먹는 셈이므로 오히려 해가 된다.


설탕중독으로 인해 국민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자 지난 7월 정부는 처음으로 당류 섭취를 줄이기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영양표시에 당류의 ‘% 영양성분 기준치’를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하며 탄산음료, 사탕에 ‘고열량·저열량’ 문구를 넣는 것을 의무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음식을 선택할 때 나도 모르게 속고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할 것이다.

유은정 좋은클리닉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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