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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① “그럼에도 사랑합시다!”

[허미선 기자의 컬처스케이프]

입력 2022-10-14 18:45 | 신문게재 2022-10-1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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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연출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결국 ‘백만송이의 사랑’은 ‘사랑합시다’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딛고 일어서 춤추고 노래하고 사랑하자는 거죠. 사랑이면 돼요. 현대사가 이렇게 어려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았거든요.”

고선웅 연출은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10월 23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의 메시지에 대해 “사랑”을 강조했다. ‘백만송이의 사랑’은 ‘백만송이 장미’를 비롯해 ‘사의 찬미’ ‘님과 함께’ ‘다방의 푸른 꿈’ ‘닐리리 맘보’ ‘빈대떡 신사’ ‘낭랑 18세’ ‘빨간 구두 아가씨’ ‘아파트’ ‘사계’ ‘빙글빙글’ ‘어젯밤 이야기’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과 싸이 ‘챔피언’, 전람회 ‘취중진담’, 아이유 ‘너의 의미’ 등 100년간 한국 대중가요 역사 속에서 사랑받은 곡들을 넘버로 꾸린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역사성’ 보다는 ‘사랑’! 단순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

고선웅 연출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이야기가 어렵거나 플롯이 복잡할 게 없어요. 가장 단순하고 진부한, 그러나 가장 설득력있는 이야기거든요. 진부하지만 템포감을 살리고 이야기에 약간의 감칠맛을 더했죠.‘

고선웅 연출의 말처럼 ‘백만송이의 사랑’은 큰 뜻을 품고 이별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기생, 빨간 구두 여자에 매료된 두 남자, 연인을 두고 군입대한 대학생, 한때는 학생운동을 했던 여공, 바람둥이 훈남, 월드컵 열기로 하나된 연인 등이 잘 알려진 곡들에 실린다.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를 노래와 조명, 배우들의 퀵체인지 등으로 빠르게 진행되는 극에서는 언약만으로 평생을 홀로 기다리는 옛 청춘들의 순정부터 요즘의 ‘썸’까지 시대별 다양한 사랑의 모습들이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군부독재, 노동문제, IMF 경제위기,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시절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현대사를 다루지만 이념색이 없어요. 민초들이 사랑하고 이별했던 이야기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나 군대 가’에요. 그 군대는 사실 미 군정과 소련이 들어와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그걸 아직도 수습 못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제도잖아요.”

역사성을 품고 있지만 ‘사랑’과 ‘이별’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극 중 함순례(강하나)가 “보다 보면 그냥 봐진다”고 했던 것처럼 노래에 깃든 한국 현대사와 주인공들의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고선웅 연출은 “관객들은 전혀 부담없이 흘러가는 대로 보실 수 있도록 연극적 세팅이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한테 ‘탁주 한잔 하시고 풀어요’라면서 막걸리를 따라주고는 ‘30전’이러고 손을 내밀어요.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무슨 좋은 구경났어요?’ 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여자는 내민 그 손을 잡으면서 ‘여보, 현석 아버지. 우리 이렇게 살아요’ 혼자 넋두리를 하다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노래를 부르는 식이죠. 그래서 이 드라마는 궁리하면 할수록 어렵고 스릴 넘치는 일이에요.”


◇주옥같은 우리 노래 100곡에서 건져 올린!

고선웅 연출
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공연하는 사람 누군가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를 한번은 정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명랑한 노래, 정서를 건드리는 독창, 이중창, 떼창 등 노래를 배치하면서 시대순을 거스를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선곡이었어요.”

고선웅 연출은 “주옥 같은 노래들이 너무 많아서 가려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어떤 관객분들은 ‘이 곡이 왜 빠졌지’ 하실 수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백만송이의 사랑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공연장면(사진제공=극공작소 마방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나훈아의 ‘영영’, 박남정, 전영록, DJ DOC, 이문세, 정태춘 등 넣고 싶은데 넣지 못한 곡들이 너무 많아요. 조용필 노래는 겨우 맨 마지막 커튼콜에 넣어서 구색을 맞췄죠. 좋은 곡은 너무 많고 시간은 정해져 있고…노래 하나로 이야기의 종결, 정서적 정리가 돼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면 곡을 더 넣어야 하고 이야기를 또 만들어야 하고…한도 끝도 없어지거든요.” 

 

이에 고 연출은 “일제강점기, 커다란 전쟁, 민주화 운동, 4.19 등 우리 현대사 100년 사이에 민초들이 살아왔던 어떤 순간, 고비 등에서 함께 했던 ‘봄날은 간다’ ‘닐리리 맘보’ ‘신 독립군가’ ‘굳세어라 금순아’ 등과 서사 중심으로 풀어야 했다”고 부연했다.
 

첨부파일1
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포스터(사진제공=극공작소 마방진과 (재)의정부문화재단, (재)군포문화재단, (재)하남문화재단)

“100년 사이에 사랑받은 그 곡들을 모든 넣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많이 들려드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 준비하면서 선곡이 가장 곤란하고 힘들고 난처하며 난감했던 작업이었죠.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녹턴’은 새로 알고 좋아하게 된 곡이에요. 사실 저는 잘 몰랐던 곡인데 만약 이 곡이 없었다면 이야기 정리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백만송이의 사랑’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으로 진행되는 ‘2021년 문예회관과 함께 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 공연콘텐츠 공동제작·배급 프로그램 공모 선정작이다.

 

고선웅 연출이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과 (재)의정부문화재단, (재)군포문화재단, (재)하남문화재단이 공동제작한 작품이다.

“비용부담과 리스트를 분담하고 저작권을 공유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 같아요. 지금까지 지역문화재단은 예산은 없는데 공연장은 있다 보니 서울에서 이미 한 작품을 통으로 사오는 방식으로 운영됐어요. 새 작품 제작비 전체를 부담할 수 있는 지역문화단체는 없거든요.”

 

 그렇게 ‘백만송이의 사랑’은 공동제작에 나선 의정부·군포·하남 지역의 극장에서의 투어와 더불어 지난해 20주년을 맞은 의정부 음악극축제 개막작으로 무대에 오른 후 서울에 입성했다.


“다만 단감이 유명한 지역이니 그걸 소재로 하고 특정 장군을 영웅을 만들어 갑자기 거룩해지는 식으로 보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거나 그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나 소재를 고집하기 보다는 보편성을 확보한 서사여야 하죠. 결국 지역 특화가 아니라 작품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고선웅 연출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그리곤 “인류를 위하고 어느 지역의 사람들이라도 충분히 향유하기 좋은 공연을 잘 개발해 선보이다 보면 어디서든 찾는 콘텐츠가 될 것”이라며 “그런 이야기라면 여러 지역문화단체에서 비용을 분담해 공동제작이 가능해지고 적은 비용으로 완성도는 높이고 저작권도 갖게 된다. 그 방식이 앞으로 지역 문화단체들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아무리 좋은 작품도 잘 알려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려요. 결국 의지의 문제죠. 의지를 가지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계속 계산하면서 할 수 있으니까요.”


◇‘백만송이의 사랑’이 국민뮤지컬이 되기를 꿈꾸며!

고선웅 연출
주크박스뮤지컬 ‘백만송이의 사랑’ 고선웅 연출(사진=이철준 기자)
“저는 작품을 통해 교훈이나 메시지를 줄 생각이 전혀 없어요. 마지막에는 어쩔 수 없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중간에는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는 게 제 룰이죠. 그걸 강요해도 안 돼요. 관객이 저마다의 느낀 바를 가져가야 하는데 배우가 혼자 너무 슬퍼하고 대책없이 격한 감정에 빠져 버리면 그럴 수가 없거든요.”

이어 고선웅 연출은 “제가 배우분들한테 ‘연극은 감정이 아니다. 그냥 형식이자 전달 도구다. 그러면 관객들이 알아서 저마다 감정을 담아갈 것’이라고 늘 얘기한다”며 “연극은 관객들이 스스로 공감하고 감정을 느끼게 아슬아슬한 선을 지켜야 하는 장르”라고 덧붙였다.

무대예술이 “희로애락을 오가며 줄타기를 하는 작업”이라는 그의 말처럼 ‘귀토’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광주’ ‘베르테르’ ‘광화문연가’ ‘아리랑’ ‘홍도’ 등의 작가, 연출, 각색·윤색가로 활동한 고선웅 연출은 비극을 오히려 명랑하고 쾌활하게, 비장하면서도 위트 혹은 냉소 넘치게 풀어내는 창작자다.

“계속 글을 쓰고 연출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자꾸 중심을 잡으려고 하고 공부를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안내려 놓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곤 ‘백만송이의 사랑’을 준비하면서도 “한국 가요사 박물관에도 가보고 책, 도감 등도 읽고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대중가요지만 그 시대 정서가 담긴 노래들이라는 것이었다”며 “그냥 내 어르신들 살았던 시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다음 세대의 삶이 알게 모르게 이어져 각 세대가 나눠갖고 있는 것들”이라고 털어놓았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한곡 한곡의 정서를 느끼실 수 있을 거고 극 중 인물들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개인적인, 터무니 없는 욕심으로는 ‘백만송이의 사랑’이 국민뮤지컬이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정치색, 신념, 세대, 성별 등과 상관없이 한국 국민이라면 봐줘야하는 그런 작품이요. 남녀혐오, 세대간 갈등 등 다 필요없잖아요. 그럼에도 사랑한다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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