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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연극 ‘러브레터’와 ‘러브레터’ 그리고 브론테家…중복과 다양한 변주의 아슬아슬한 경계

[허미선의 키워드+] 같은 소재 공연,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22-10-20 18:30 | 신문게재 2022-10-2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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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테家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브론테'(왼쪽)와 '웨이스티드'(사진제공=네버엔딩플레이, 연극열전)

 

“창작의 고통 혹은 어느 분야에서 최고가 된 이들의 이야기가 창작 뮤지컬의 소재로 사용된 건 꽤 오래된 경향 같습니다.”

한 공연 관계자의 말처럼 창작의 고통이나 한 분야의 최고가 된 이들의 이야기는 꾸준히 무대화돼 왔다. 현재 공연 중인 작품들 중 저마다의 소릿길을 찾는 소리꾼들의 여정을 담은 ‘서편제’(10월 23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가 그렇고 ‘안나, 차이코프스키’(10월 30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가 그렇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아그네스 그레이’ 등의 명작들을 남긴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는 ‘브론테’(11월 13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의 이야기 ‘랭보’(2023년 1월 1일까지 대학로 TOM 1관), 천재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던 변동림이자 김향안을 변주한 ‘라흐헤스트’(11월 13일까지 드림아트센터 2관) 등도 동시에 공연 중이기도 하다. 

꽤 오래 지속된 트렌드다 보니 같은 소재로 다수의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차르트!’와 ‘모차르트 오브 록’,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와 내년 초연 예정인 ‘베토벤’, ‘빈센트 반 고흐’와 내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아르토, 고흐’가 그렇다.


[이미지] 연극열전9_4th_웨이스티드_캐스팅공개
브론테家 남매의 이야기를 다큐 형식으로 풀어낸 뮤지컬 ‘웨이스티드’(사진제공=연극열전)
◇같은 소재 다른 극, 같은 대본의 중복

 

샬럿·에밀리·앤 브론테 자매를 소재로 초연 중인 창작뮤지컬 ‘브론테’가 막바지로 내달리는 가운데 연극열전은 브론테 남매 이야기를 다룬 라이선스 뮤지컬 ‘웨이스티드’(Wasted, 12월 13~2023년 2월 26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론칭을 알렸다. 

 

‘브론테’는 성재현 작가, 조민영 연출, 양지해 작곡·음악감독의 창작뮤지컬이고 ‘웨이스티드’는 ‘타조소년들’의 작가 칼 밀러(Carl Miller)와 작곡가 크리스토퍼 애쉬(Christopher Ash)가 꾸린 록 뮤지컬이다.


두 작품은 샬롯 브론테가 화자로 어린시절부터 죽음까지, 실패와 좌절, 고통 속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는 예술가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분명한 차별점도 존재한다. 

‘브론테’의 조민영 연출은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브론테’와 ‘웨이스티드’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웨이스티드’를 아직 관람하지 못해 조심스럽지만 해외 공연 티저 영상과 사진만으로도 ‘브론테’와 많이 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무대 위에 마이크를 노출하고 세트 또한 사실적인 디자인과 거리가 있습니다. ‘브론테’ 무대가 목사관 실내와 요크셔 황야를 구현하며 브론테 자매들의 생활로 관객들을 리얼하게 끌어당긴다면 ‘웨이스티드’는 이곳이 ‘무대 위’라는 전제 하에 펜 대신 마이크를 쥐고 글을 써내려가는 행위로 관객을 압도하죠. 이미 기본 바탕을 다르게 전개했기 때문에 오히려 ‘같은 소재로 이렇게 다른 공연이 나오다니!’ 하며 보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웨이스티드’는 논레플리카 라이선스로 계약된 상태라 한국화 과정에서 또 다른 변주가 예상되기도 한다. 조민영 연출은 “뮤지컬 ‘웨이스티드’에는 브론테가(家)의 자매들 뿐 아니라 남자 형제인 브란웰도 등장하기 때문에 극화된 에피소드 또한 다르리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일 수 없듯 브론테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기대 중”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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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론테’(사진제공=네버엔딩플레이)

연극열전은 같은 소재의 창작뮤지컬 ‘브론테’와의 차별점에 대해 “공연으로는 드물게 다큐멘터리적인 구성과 형식을 띠는 작품”이라며 “실존인물의 삶이나 사건을 다루는 공연의 상당수가 사실에 근거하되 작가의 극적 상상력, 즉 허구를 가미한 플롯으로 구성된다. 반면 ‘웨이스티드’는 1800년대 초·중반을 살아낸 브론테 남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조명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이룬 문학적 성취나 업적보다는 그들의 삶 자체를 꼼꼼히 담아낸 작품입니다. ‘일종의 전기 같은데, 재미가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시절을 견딘 브론테 남매의 삶 자체가 드라마가 되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또 다른 강점으로 ‘넘버’를 꼽았다. 연극열전은 “인물의 감정과 상태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날 것의 가사와 ‘록’을 기반으로 한 넘버로 채워져 있다”며 “주어진 현실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브론테들의 삶과 정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곡들로 150여분이 꽉 채워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해외 유명 작가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을 준비 중이던 한 제작사가 유명 창작진들이 참여한 동명 작품 개막으로 제작 자체를 포기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더불어 브론테家를 소재로 한 ‘브론테’ ‘웨이스티드’와는 다르게 같은 대본이 동시에 무대에 오른 경우도 있다. 최근의 대표적인 예가 연극 ‘러브레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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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본으로 동시 공연 중인 연극 '러브레터'(사진제공=파크컴퍼니, 수컴퍼니)

 

1988년 뉴욕 공립도서관에서 초연된 ‘러브레터’는 미국 극작가 A.R. 거니(A.R. Gurney)의 대표작으로 47년, 17155일, 333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멜리사와 앤디의 이야기다.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멜리사와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추구하는 와스프(WASP) 앤디 역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시고니 위버, 브룩 쉴즈, 멜 깁슨, 제프 다니엘스, 톰 행크스, 알랭 들롱, 제랄드 드파르디유, 츠마부키 사토시 등 각국의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했고 2017년에는 영화 ‘러브스토리’의 두 주인공 알리 맥그로우와 라이언 오닐이 이 작품으로 46년만에 재회해 주목받기도 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두개의 ‘러브레터’가 공연 중이다. 예술의전당과 파크컴퍼니가 공동제작하고 ‘오징어게임’으로 글로벌 이슈몰이 중인 오영수와 베테랑 연극배우 박정자, 배종옥과 장현성이 고정페어를 이룬 ‘러브레터’(11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그리고 하희라·임호, 실제부부인 조선명·유성재, 신의정·이승헌 세대별 페어를 내세운 수컴퍼니의 ‘러브레터’(10월 23일까지 JTN 아트홀 1관)가 동시에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파크컴퍼니의 ‘러브레터’는 원작자 A.R. 거니의 저작권 소유사인 WME(William Morris Endeavor Entertainment, LLC)와 논레플리카 라이선스 체결로, 수컴퍼니의 ‘러브레터’는 해당 작품의 아시아판권 에이전시와의 계약으로 공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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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론테’(사진제공=네버엔딩플레이)

◇중복과 다양한 변주의 경계, 결국 ‘작품’


“초연인 두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지만 사회 전반, 특히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여성 혹은 여성 서사가 주목받는 최근의 흐름을 생각해 볼 때 그저 우연이라고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뮤지컬 ‘웨이스티드’와 ‘브론테’가 연이어 공연되는 데 대해 연극열전은 “특히 제인 오스틴, 샬롯과 에밀리 브론테, 실비아 플라스 등 19세기 여성작가 작품이나 그들의 삶 자체를 다룬 극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많이 공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흐름과 공연이라는 장르적 특징이 만나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분석했다.

‘브론테’의 조민영 연출은 “관객으로서의 저는 공통의 소재나 원작에서 출발하더라도 각 작품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다르다면 오히려 관람할 때의 재미가 배가된다”며 “어떤 공연을 볼 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활용하며 더 깊은 이해와 즐거움에 도달하기도 하는데 같은 소재를 다룬 다른 공연을 볼 경우 이전에 본 공연이 배경 지식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셰익스피어와 안톤 체홉 등 고전명작을 변주한 수많은 연극을 관람할 때도 익숙한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기보다는 현대 관객들과 어떻게 만나고자 했는지를 찾으며 즐거워하는 편이거든요. 같은 소재를 택했다는 것만으로 피로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한 공연 관계자는 “다양한 소재로 창작 뮤지컬의 레퍼토리 확장은 관객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도 있지만 배우 캐스팅에 의존하는 경우들도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더불어 창작이란 테두리 안에 해외 작가나 아티스트의 생애를 다룬 작품들 대부분이 2인 혹은 3인극으로 좌절하고 절규하고 혹은 동성의 사랑이 포함되는 등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되는 경향도 있죠. 이제는 틀을 벗어난 작품들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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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러브레터’(사진제공=예술의전당, 파크컴퍼니)

 

이어 “A.R 거니의 ‘러브레터’의 경우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며 “이 작품이 수많은 국가에서 공연되기는 했지만 동시기에 다른 제작사, 다른 배우들로 공연을 올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고 말을 보탰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지난해 말 연극 ‘더 드레서’에서 송승환 선생님의 ‘리어왕’이 나오고 비슷한 시기에 이순재 선생님의 ‘리어왕’이 공연되고 금년 초 국립창극단 ‘리어’가 공연됐다”며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소재를 다양한 맛으로 관람할 수 있어 재미와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측면도 클 듯하다”고 의견을 전했다.  

 

이어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홍보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이는 기획의 새로움·작품의 완성도가 보장됐을 때 의미가 있다”고 전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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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러브레터'(사진제공=수컴퍼니)

 

“물론 두 작품이 다 흥행하는 윈-윈 효과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작품을 비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작품은 안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 예로 1961년 홍선기 감독,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과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이 비슷한 시기에 제작돼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선택은 냉혹했거든요.”

 

결국 소재나 작품 자체의 중복을 불편해하거나 문제로 받아들이느냐, 다양한 변주로 인식하느냐의 기준은 오롯이 작품이다. 


‘브론테’의 조민영 연출은 “창작자 입장에서는 좀 더 기민하게 움직여야겠다고 생각 중”이라며 “뮤지컬 ‘브론테’를 선보이기 위해 창작진과 1년이 넘는 시간을 개발에 투자했다. 그렇게 공연 라인업을 발표한 후에 ‘웨이스티드’와 전기영화 ‘에밀리’ 제작 소식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국내외 수많은 창작진들이 관심을 둔 소재와 그 시기가 비슷하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마음 한켠에는 다른 작품과 전혀 겹치지 않는, 신선한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죠. 사실 공연계의 소재 중복 보다는 드라마 유형의 중복이 더 아쉽게 느껴집니다. SF나 누아르, 르포 등 비주류 장르 문학이나 코미디 등의 공연화가 더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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