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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대학로 빨간 벽돌 그 건물, 기억을 소환하다 ‘기억·공간’

[문화공작소] 아르코미술관, 마로니에공원 그리고 사적·사회적 기억의 교차

입력 2023-04-17 18:00 | 신문게재 2023-04-1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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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공간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교묘한 식민 전략으로 일제에 의해 설립됐지만 반제국주의 운동, 비밀결사 독서회 활동, 독립운동 등이 활발했던 옛 경성제국대학교, 민주화운동의 현장인 서울대 문리대가 자리 잡았었고 1960년 4.19 혁명이 시작된 곳,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끓어오르던 거리, 청년문화의 상징이자 시민들의 쉼터 그리고 한국 무대 예술의 메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공간인 동시에 다양한 사적 기억들이 스민 곳이다. 1979년 개관한 아르코미술관은 일제 강점기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움트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열기로 들끓었던 곳이지만 민주 열사들이 스러져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 왜색 등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해 기묘한 대조를 이루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이 공간을 매개로 형성된 사적·사회적 기억들을 회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운드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기록한 아르코미술관의 주제기획전 ‘기억·공간’(7월 23일까지)이 한창이다.

이 전시를 기획한 전지영 큐레이터의 설명처럼 “여러 시간의 층을 가로지르는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역사성과 장소성을 조망하는 전시”로 “시대에 따른 사회 변화를 목격하고 동시대 미술과 영향을 주고받은 아르코미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다양한 결의 기억을 살펴보는 전시”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아르코미술관과 마로니에 공원에 얽힌 다양한 기억들을 잇고 쌓아 올리고 펼쳐 보이며 과거와 현재, 개인과 사회, 현실과 상상, 예술과 일상 등을 교차시켜 경험하지 않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를 통해 역사 연구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공간의 역사를 사유하고 기록하는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찰하고 예술과 사회의 관계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전시이기도 하다.

1, 2층을 아우르며 미술관 주변 풍경에 대한 기억을 파노라마로 연결하는 김보경의 설치작품 ‘양손의 호흡’ ‘표풍(漂風)하는 걸음’을 비롯해 국내외 작가 9명(팀)의 신작 23점이 전시장과 통창으로 마로니에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카이브라운지, 미술관 출입구 옆에 위치한 프로젝트스페이스, 마로니에공원으로 연결되는 야외로비, 계단, 통로, 화장실 등에 전시된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아르코미술관 건축물, 특히 창문에서 영감을 받은 황원해는 회화작품 ‘슬러리 윌’을, 박민하는 ‘터(군중, 춤, 공터)’ ‘눈’를 선보인다. 더불어 미술관의 역사, 그에 대한 사적인 기억, 건축물의 신체 경험을 재구성해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양승빈의 ‘구니스’ ‘SGS No.1, 2’, 윤향로의 ‘태깅-K’, 문승현의 ‘전시장의 투명한 벽은 시에나 색으로 물든다’ 등도 만날 수 있다.

양승빈의 ‘구니스’ 등은 “유명 건축가들은 의자를 하나씩 디자인했는데 김수근 건축가는 디자인한 의자가 없는 걸로 알고 있어서 그걸 스터디 포인트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수근 건축가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하던 도중 고인이 된 분의 책에서 그가 의자를 한번 만든 적이 있었고 모종의 이유로 파기됐다는 데서 단서를 얻었어요. 김수근 건축가의 인터뷰 중 제작하려던 미발표 테라코타 의자 원작을 복원했고 제 상상을 더해 재해석해 디지털 트랜스포밍한 3개의 의자를 새로 만들었어요.”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관람객들은 이 의자에 앉아서 아르코미술관과 김수근 건축가에 대한 사실, 허구, 상상력 등을 기반으로 촬영한, “김수근이 만들었을 의자를 찾아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통창으로 마로니에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아카이브 라운지에서는 안경수의 파노라마 회화작 ‘전야’를, 마로니에공원과 맞닿은 미술관 1층의 야외 로비에서는 소리로 미술관 안팎을 넘나드는 이현종의 사운드 작 ‘아마데우스 의자’를 만날 수 있다. 

 

이현종은 ‘아마데우스 의자’를 비롯해 미술관 야외 통로, 계단, 화장실 등 미술관 곳곳에 ‘화장실 명언’ ‘신세대 애정표현/장소 안 가린다/이전같이 이러고 저러고’ 등 사운드 작품들로 공간의 벽을 허물고 내부에 침투하는 소리의 경험을 선사한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서로 다른 음악을 믹싱하고 비트를 섞는 DJ처럼 미술관 내외부 야외에서 수집한 일상의 소리, 1990년대 거리 문화의 배경이 됐던 마로니에 공원에 대한 선정적 기사 일부, 서브 컬처 문화와 테크노 일렉트로닉 음악의 장르적 특성을 교차시켜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는 작업니다.

이에 대해 이현종은 “지역 사회에 대한 기사들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은 제가 목격한 부분도 있지만 그 이전의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젊은 문화들이 파종된 공간 등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었다”며 “미술관의 역사 속에서 외면 받고 환대 받지 못한 소리들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
아르코미술관 주제기획전 ‘기억·공간’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미술관 안과 밖 풍경이 펼쳐지는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는 의자와 ‘앉는다’는 행위로 주체와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미술관의 장소성에 대해 사유하는 다이아거날 써츠의 설치작 ‘앉히다: 다리가 자유로워질 때’를 만날 수 있다.

다이아거날 써츠의 김사라 건축가는 “건축이 한국 사회에서는 문화라기보다는 부동산, 소유의 가치 등으로 다뤄지는 데 대해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마로니에공원 쪽과 미술관 벽쪽으로 앉을 때, 조립하기에 따라 그 모양과 풍경이 달라지는 ‘로직 체어’를 통해 김사라 건축가는 “나와 타자를 인식하게 하는 공간의 유형, 신체와 움직임의 관계 등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부분들과 그 부분들을 재인식함으로서 공간성을 재인식하는 경험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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