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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다시 쓰는 아날로그 '연필의 귀환'

[아날로그에 취하다] 연필

입력 2015-01-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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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뚝하거나 날렵하거나. 역시 연필은 칼로 손수 깎아 놓아야 제 멋이 난다. 자칭 '연필 마니아'인 본지 문화부 기자의 필통을 꽉 채운 연필들이 주인의 손길이 닿은 그대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창의력은 쓰면서 나온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연필이다.”

연필심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종이를 부드럽게 훑어 내려가는 소리는 늘 새로운 생각이나 일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다. 

제목 없음
지우개가 달린 노란 육각 연필을 즐겨 사용하는 박근혜 대통령.

언론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필로 업무 보는 모습이 자주 비춰졌다.

영화 ‘명량’ 덕분에 다시 주목 받은 소설 ‘칼의 노래’ 저자 김훈은 연필로 집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연필은 꾸준히 사랑받는 필기구다. 연필은 ‘무언가를 쓴다’는 인류의 원초적 행위에 가장 부합하는 도구다. 이는 인류의 기술이 우주로 터전을 확장하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미국 나사(NASA)는 무중력상태에서 쓰는 볼펜을 개발한 적이 있다. 중력이 없으면 일반 볼펜은 잉크가 아래로 흘러나오지 않아 글씨를 쓸 수 없다. 오랜 연구 끝에 나사는 100만 달러를 들여 우주용 볼펜을 개발했지만 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냥 연필로 쓰면 되는 일이라며 비웃었다.

디지털 시대에 연필은 과거를 떠올리는 매개체이자 아스라한 그때 그 감촉을 되살리는 추억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대통령 연필애용도 실용주의<YONHAP NO-0201>
이명박 전 대통령은 연필 애용가다. 사진속 연필은 문화연필에서 나온 ‘DEOJON’시리즈다.

 

예전 부모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과 함께 꼭 연필 한 타스(12개)를 선물했다. 필통 속엔 늘 어머니가 직접 깎아 준 연필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돼 있었다.

연필이 주는 추억과 쓰는 촉감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연필이 재조명되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연필을 수집한 김효진(47)씨는 “오늘날 연필은 추억과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필기구”라며 “지금까지 모은 연필만도 100가지가 넘는다. 해외여행을 가면 습관처럼 그 지역 문구점을 찾고 호텔에 비치된 연필도 꼭 기념품처럼 챙겨온다”고 전한다. 그는 이어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글씨를 쓰는 시간이 줄고 글씨체도 엉망이 돼 버렸다. 손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해 아쉬웠다. 그래서 대신 연필을 선물하곤 한다”고 덧붙인다.  

 

SwedenFranceAttacksRally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집회가 열린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 참가자가 대형 연필을 들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연필의 상징성이 전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AP=연합)

짙어진 연필의 추억을 따라 실제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내 대표 학용품 브랜드 모닝글로리 홍보부의 이참솔씨는 “연필과 연필 관련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연필을 학업용도뿐 아니라 선물이나 수집용도로 구입하는 비중이 크다. 그래서 연필을 중심으로 관련 용품(연필 깎이, 연필 그립, 보호캡 등) 매출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한다.

과거엔 값싼 중국산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엔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내 및 해외 유명 브랜드 연필이 주목받고 있다. 연필이 만들어진 역사만큼이나 그 브랜드와 종류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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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연필 중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인기 있는 디자인은 노란 몸채 끝에 지우개가 달린 육각형 그립 모델이다.

노란색이 눈의 피로를 줄이고 지우개가 달려있어 쉽게 쓰고 지울 수 있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나온 제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디자인의 연필을 국내 동아 연필과 문화 연필에서 제작하고 해외에선 독일의 스테들러가 생산한다.

HB, B, 2B 연필심의 강도에도 종류가 있듯 그 품질에도 등급이 있다. 높은 등급 제품일수록 나무의 결이 고르고 연필 심이 종이에 부드럽게 잘 묻어난다.

저렴한 것은 한 자루에 300~500원 하지만 비싼 것은 한 자루에 2000원이 넘기도 한다. 최근엔 연필을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늘어 구하기 힘든 연필일수록 더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한다. 점점 사라져 가는 오래된 문방구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연필 수집꾼들의 발걸음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연필로 세계에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는 독일의 스테들러와 파버 카스텔이다. 두 기업 모두 다양한 필기구를 제작하고 있는데 세계최고 학용품회사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국내 학용품 업체인 모닝글로리는 꾸준히 캐릭터 연필을 제작해 오다 최근 독도 시리즈 학용품(지우개, 연필, 노트)을 제작해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연필의 인기덕에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 관련 용품들이다. 업체들은 몽당 연필 뒤에 꽂는 모나미 볼펜 껍데기 대신 ‘전용 홀더’를 제안한다. 또 한 업체는 연필의 감수성과 실용성에 고급화 전략을 심어 선물용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생각의 시작은 ‘끄적거림’이다. 연필은 우리가 가장 쉽게 끄적거릴 수 있는 필기구다.

키보드 자판이 아무리 빠르고 스마트폰의 터치가 아무리 편해도 연필만이 주는 ‘새로움을 쓰는’ 감성은 절대 대체하지 못한다.

김동민 기자 7000-ja@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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