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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전력 시장,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는 언제쯤…

입력 2023-07-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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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시장’ 규제가 가장 강한 산업 분야는 무엇일까? 소비자, 특히 우리 같은 일반 국민이 아예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전력 시장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공급자, 가격, 에너지원 등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는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전력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고지서에서 이번 달 전기료가 얼마인가를 확인할 뿐이다.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떤 에너지원을 활용해서 생산되었고, 생산 단가가 얼마이고, 대기오염물질은 얼마나 배출했는지 알 수도 없고, 전력 공급자를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좀처럼 공감을 얻거나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전력 산업 관계자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소비자가 선택을 할 수도 있어?’라는 반응이다.

언젠가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한 모임에서 다양한 정책 수단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청중이 에너지에 관해서는 상당히 전향적인터라 전력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 즉 소매시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소매시장을 개방해서 에너지원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생산자-소비자 간 전력거래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 나아가 개인간 거래(P2P)와 같은 다양한 시장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냐며 여러 해외 사례를 소개하였다.

공감과 대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평은 ‘우리가 아직 거기까지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등이었다.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이라는 크고 민감한 문제를 전제로 하는 주장이니 불편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전력 시장의 구조는 크게 발전, 송전, 배전, 소매 시장으로 구분된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주로 공공 전력회사가 이를 모두 소유·운용하는 전통적 독점구조에서 점진적인 시장 구조 개편을 통해 발전 시장부터 송·배전망, 소매 시장까지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시장자유화·탈규제화 모델로의 이행을 이루어왔다. 소매 시장이 독점구조로 운영되는 곳은 이스라엘과 한국 뿐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3단계에 걸친 전력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추진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발전 시장의 개방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약 10년 전 전력 공급 부족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자 부랴부랴 대기업을 발전 시장에 진출하도록 독려했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초창기에 전력 시장이 국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된 것은 민간의 산업 역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민간 부문의 자본이나 기술이 진보한 것은 물론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업자가 대기 중이다.

한국은 여전히 전력거래소에서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있는데, 영국, 독일, 일본 등의 경우처럼 송전망을 분리독립하여 소매시장에 다양한 사업자가 진출하여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력 시장 ‘개방’에 대한 의제가 등장하면 일단 전력 수급 불균형, 전력 요금 상승, 대기업 독과점의 문제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여 심화된 논의로 이어나갈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합리적인 것인가는 의문이다.

전력 공급이 수요 예측을 넘어 가격이 떨어지자 발전 사업자들이 정부에 가격을 보전해달라고 하거나, 또는 어느 지역의 태양광 초과 발전으로 전력 계통에 과부하가 왔다며 사업자에 대한 특혜·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송·배전, 소매시장까지 개방한 국가들에서 전력 요금이 급격히 상승해서 산업이 위축되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우리도 발전 시장을 개방하면 민간 독점 때문에 전기료가 올라서 여름에 에어컨도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반대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별문제가 없다. 오히려 발전시장에 소규모 사업자가 대규모 참여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10만개 정도 존재한다고 한다.

‘국민과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국민에게는 전력원 선택의 자유를, 사업자에게는 시장 진출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전력 산업의 성장을 정부가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업은 시장에서 진퇴를 겪으며 경쟁력을 키워가야 하고, 소비자는 기존에 ‘공공재’처럼 주어지던 전력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력 시장이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편익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정부가 최전방 주전으로 뛸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다양한 기술이 활용될 수 있도록 지능형 마이크로 그리드(Smart Micro Grid) 같은 인프라를 보충하고, 전력 시장에서 공정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구상하는 역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력 사업자나 소비자를 보호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이다.

 

박선주 경북대 행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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