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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ESG 관련 주주제안과 그 효력

입력 2023-08-2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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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ESG 요소는 기업의 주요한 경쟁적 요인을 넘어 필수 요인으로 수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주제안의 한 형태로도 ESG 관련 요소들의 대상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 국내에서는 행동주의펀드 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법률상 허용된 주주제안 이외에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 사례가 제시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구체적으로는 2023년 1월, 경제개혁연대는 국내 11개 상위 대기업집단의 대표회사에 2023년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을 허용하는 조문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요청한 바 있었다. 그러면서 경제개혁연대는 상법상의 주주제안 제도를 활성화하고, 경영진의 사회적 책임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권고적 주주제안을 회사가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주주제안이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의제 또는 의안을 직접 제시할 수 있는 상법상의 제도인데, 문제는 상법의 해석상으로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주주제안의 효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하나는 구속적 주주제안이고, 다른 하나는 권고적 주주제안이다.

구속적 주주제안이란 일반적인 주주총회 승인사항과 마찬가지로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주주제안은 반드시 그대로 효력이 발생하여 경영진이 이를 따라야 하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말한다. 반면에 권고적 주주제안이란 주주총회에서 가결되더라도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경영진도 해당 결과에 구속되지 않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현행 상법은 첫 번째 형태의 구속적 주주제안만을 인정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서도 법률상 주주제안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뿐이다.

그 동안 주주제안은 주주 활동에 최소한의 실효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기능적 이점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주주제안의 실질적인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또는 환경 등의 이슈를 기업시장에서도 부각시키고 주주제안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권고적 주주제안의 실효성을 인정하거나 또는 이를 명문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된 것이었다. 이른바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론이다.

도입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주주활동의 대상이나 목적은 주주총회 권한 사항과 같이 그 효과나 결과를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둘째, 주주이익이나 재무적인 기업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사회ㆍ환경 관련 이슈는 주주제안이 권고적인 효력을 가질 때, 오히려 다른 주주들에 대한 설득 가능성도 높아지며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권고적인 효력만 있다 하더라도, 가결된 주주제안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회사로서도 부담이라는 점에서, 주주의 역할 증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1월에는 이러한 취지에 근거해 더불어민주당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었다.

일단 권고적 주주제안은 현행 상법의 해석상 허용되기 힘들다. 주주총회의 권한은 상법 및 정관에 규정된 사항에 한정되므로(상법 제361조), 그 밖의 사항에 관한 총회 결의를 하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이 원칙이고, 주주제안 역시 주주총회의 목적사항, 즉 결의의 대상이 될 것에 대해 행해져야 하므로, 총회의 권한에 속한 사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법률이나 정관에 명문의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ESG 관련 이슈들을 주주총회의 결의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권고적 주주제안이 우리법상 도입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우선, 주주제안권 남용 문제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이 거론된 사례를 보면, 회사 측의 제안권 상정 반대의 근거는 모두 주주제안의 남용 문제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주주제안에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하면서도, 제안권 남용을 우려하여 회사의 주주제안 거부사유를 광범위하게 정해두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은 법령상 정한 몇 가지 거부사유 이외에 제안권 남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해석론상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아울러, 권고적 주주제안이 가결되는 경우, 해당 제안을 회사가 실제로 ‘권고적으로만’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환경적인 문제 또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주주제안이 가결되었음에도 회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스튜어드십 코드 등에서 회사ㆍ주주와의 대화 항목에 반할 소지가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상장회사 공시 항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는 이것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하는 경우 회사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ESG 요소에 대한 상장회사의 공시강화 기조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의 형태로도 ESG 요소를 별도 지표로 추가 제도화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이중삼중의 규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는 회사의 비용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BlackRock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은 회사들의 주주총회에서 ESG 안건에 반대표를 제시하였다. BlackRock은 “향후 주주총회에 올라오는 기후 관련 안건 대부분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총회 안건으로 올라오는 정책 상당수는 경영진을 구속할뿐더러 지나치게 규범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회사를 지나치게 꼼꼼히 관리하려(micromanage) 하거나 주주가치를 증진시키지 않는 제안”을 반대표 행사 대상으로 명시하였다.

요컨대,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 역시 주주의 이익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ESG 요소의 함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ESG 가치와 회사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만약 ESG 가치가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본다면, 영리단체인 회사에 효율성이 아닌 도덕률을 강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해야 할 것이다.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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