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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자유민주주의 지키는 ‘여론조작 방화벽’이 시급하다

입력 2023-10-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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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일, 한국과 중국의 8강 축구 대표님 경기를 앞두고 국내 주요 포털 ‘다음’에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이 응원하는 팀을 클릭하도록 했는데, 한국 국민의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내 포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표팀 응원 비율이 91%를 기록한 것이다.

자체 조사 결과 전체 클릭의 약 87%가 해외 IP에서 나왔고, 그중에서도 99.8%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2개의 해외 IP에 의한 클릭으로 밝혀졌다. 더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살펴봐야겠지만, 어쨌든 ‘해외’와 ‘조작’이라는 두 개의 팩트는 확인된 셈이다.

지난 8월에는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 측이 친중 성향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가짜계정 7,700여 개를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메타는 이들 계정의 배후로 중국 정부를 지목했으며,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영향력 자체는 미미했던 것으로 파악됐지만, 특정 국가가 직접 조직을 운영해가며 온라인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밖에 수많은 SNS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론’이란 그 활동 주체들의 생태계와 다름없다. 국민은 여론을 고려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고 지도자를 선택한다. 정부나 정당, 기업 역시 여론을 살피며 방향 및 기조를 정하고 정책,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 뉴스로 다뤄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1~2%p의 격차에 정국이 요동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이나 권위의 정당성 기반이 바로 여론에 있기 때문이다. 여론전에서 지면, 정치적으로는 패배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은 곧 체제의 질서를 혼란과 불신에 밀어 넣는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고 볼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비틀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국가 공동체를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잘못된 여론 분석으로 오판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국민 간 분열을 조장해 사회 분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타국의 여론 조성에 개입하면 사실상 내정간섭이다.

문제는, 이처럼 위험한 여론조작이 자유 진영과 반자유 진영 간 이념 대결 구도에서 반자유 진영 국가들의 긴요한 ‘전략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우리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 공격에 늘 노출돼 있다. 우리 사회에서 횡행했던 각종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북한 당국에 있었음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올해 들어 북한은 ‘대외 인터넷 선전’을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해 사이버 공격 역량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대로 ‘재미’ 좀 보겠다는 신호다.

과연 북한만 해당되는 문제일까?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박근혜정부 당시 ‘사드 보복’에 나섰던 중국 정부도 한국 사회의 여론을 조작할 유인은 차고 넘친다. 서두에 언급한 ‘클릭 응원전’ 조작에 우리가 화들짝 놀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혹시 중국에서?’라는 아찔함이 밀려왔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공식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과연 한국 사회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길 바랄지 그 답은 명확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월 ‘인터넷 국적표시법’을 발의했다. 포털 뉴스 댓글 등을 작성한 사용자의 접속 국가를 공개하자는 제안이다. 특정 국가에서 국내 여론에 개입하기 위해 댓글부대를 동원하고, 추천수 등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 법안의 실효성과 적법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더 이상 온라인 공간을 광범위한 조작 세력에 무방비로 내줄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에 적잖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 특성상, 외국인 출입국을 관리하듯 모든 해외 접속자를 일일이 확인하고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소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여론조작을 단순히 방치, 방관하고 있기에는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 특히, 미·중 갈등의 ‘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국익과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경우, 의도적인 개입에 따라 비틀린 여론이 초래할 피해와 부작용은 막대하다.

AI 발달에 편승해 가짜뉴스의 양과 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초 정도 되는 분량의 영상이 순식간에 수만, 수십만을 속이고 순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철책선을 두르고 상시 경계 근무를 서듯, 국민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온라인 공간을 조작과 왜곡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화벽이 시급하다. 정부와 국회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해외발 여론조작을 차단할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역시 중대한 안보 대책이다.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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