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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리뷰+나무 한 그루]‘희망’을 내포한 나무를 닮은, 2024년의 ‘사랑스러운’ 고고 신구와 디디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

입력 2024-01-05 18:30 | 신문게재 2024-01-05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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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나무 빼고 다 죽었네.”

디디(블라디미르, 박근형)는 침묵 끝에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고고(에스트라공, 신구)·디디의 그림자와 나무가 꽤 오래 정지된 채 서 있다 극은 막을 내린다. 그렇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Waiting for Godot 2월 18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의 마지막은 그 여운이 유난히 길다.

처음 ‘고도를 기다리며’를 본 건 대학에 입학한 스무살 무렵이었다. 그 정체도 알 수 없고 약속도 지키지 않는 고도라는 존재를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허름한 두 노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노인들에 대한 반항심이 불거졌고 럭키(박정자)를 핍박하는 포조(김학철)에 분기탱천한 기억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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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고고 역의 신구(왼쪽)와 디디 박근형(사진제공=파크컴퍼니)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대표작으로 패트릭 스튜어트, 이안 맥켈런(Ian McKellen),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 스티브 마틴(Steve Martin) 등 유명 배우들이 거쳐간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은 변한 것이 없다.

 

산울림극장에서 임영웅 연출, 그의 아내인 오증자 번역가 역본으로 1969년 초연을 올린 후 이 프로덕션만도 1500회 이상 공연돼 22만여 관객을 만났고 다양한 극단에서 수많은 연출과 배우들이 무대에 올렸던 그 극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출연 배우들이나 연출, 극단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무대가 대부분이었다. 인간의 육체적, 탐욕적인 면을 상징하는 비관적인 고고와 지적이고 철학적이며 고도가 올 거라 믿는 낙천주의자 디디가 국도 옆 앙상한 나무 아래서 올 듯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야기에도 변함이 없다. 

 

두 사람이 고도를 기다리는 여정에 권위적이고 멋 부리기 좋아하는 포조와 그의 짐꾼이자 노예 럭키, 고도의 심부름꾼 소년(김리안)이 함께 하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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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고고 역의 신구(왼쪽)와 디디 박근형(사진제공=파크컴퍼니)

 

그렇게 극 자체는 변함이 없고 그저 세월이 흘렀을 뿐인데 ‘고도를 기다리며’는 완전히 다른 극으로 다가온다. 그 흐른 세월만큼 내면에 쌓인, 보는 이들이 가진 삶의 궤적과 신구·박근형 그리고 박정자, 김학철이라는 배우들이 가진 묵직함이 내는 시너지일지도 모른다.

 

특히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의 달인 경지에 다다른, 사실은 그 경지를 넘어 ‘사랑스러운’ 지경에 이른 고고 신구와 디디 박근형은 존재 그 자체로 ‘고도를 기다리며’의 완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고고와 디디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연기와 더불어 꽤 오래 정지화면처럼 나무 곁에 선 두 사람의 마지막은 이 극의 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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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택 연출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나무에 대해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사진=허미선 기자)

 

이 나무에 대해 오경택 연출은 “2막의 나무는 1막과 달리 약간의 잎이 피어나 있다”며 “이 잎들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나무 옆에 고고와 디디 두 인물이 함께 서있는 것 또한 오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을 함께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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