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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자의적 법해석과 대중추수주의가 부른 기업인 사법리스크

입력 2024-01-1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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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반도체 사업의 반등이 확인된다. 삼성전자의 작년 영업이익은 15년 만에 가장 저조했지만, 2분기 이후 세 분기 연속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메모리 출하량 증가와 평균 판매단가 상승 등 반도체 시황 회복으로 반도체 부문 적자가 축소된 데 힘입은 것이다 .

하지만 삼성전자는 ‘반도체 회복’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이재용 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17일, 검찰은 ‘불법승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회장에게 5년을 구형했다. 오는 1월 말에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은 결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반(反)기업정서는 기본이고, 거미줄 같은 규제, 노(勞)에 기운 운동장, 다락 같이 높은 법인세가 그것이다. 흔히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비견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적 안정성’, 구체적으로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실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인이 법을 위반해 마땅히 처벌을 받았다면 이를 ‘사법 리스크’로 부를 하등의 이유는 없다. 하지만 자의적 법 해석과 대중추수주의(大衆追隨主義), 현존하는 권력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면 이는 ‘엄정한 법 집행’일 수 없다. ‘편의적 사법리스크’에 노출된다.



기업합병을 불법 경영승계 단초로 몰아간 억지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불법승계 일환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합병은 순환출자 고리를 줄이고 ‘중간 사업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이재용 승계를 논외로 하더라도 충분히 예측가능한 기업합병이었다. 미국계 투기자본 ‘엘리엇’은 이같은 합병을 예측하고 2015년 1월 삼성물산 주식을 770만주를 매입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5월 26일부터 7월 17일 사이에 이뤄졌다. 삼성물산에 투자한 투기자본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항변한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 시가총액이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이다. 시장은 늘 합리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모회사 할인 퍼즐’(parent company puzzle)로 설명된다.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전자주식은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팔 수 없는 주식이기 때문에 저평가된 것이다.

2003년 SK그룹 지주회사인 SK㈜는 시가총액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SK텔레콤 주식 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소버린자산운용이 이를 알고 SK㈜ 주식을 집중 매수했다. 이를 통해 SK텔레콤 등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넘본 것이다. 소버린 사태도 ‘모회사 퍼즐’의 한 사례이다.

상장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제176조의 5)에 명기되어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나 합병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1개월 종가평균 △1주일 종가평균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다.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이다.

합병비율은 법에 따라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졌고, 삼성물산 주식 13%를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경영승계는 ‘기업의 사적자치’로 정치적 결정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엘리엇은 합병에 불만을 표시했지만 결과적으로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엘리엇은 합병이 종료된 후 2016년 초 통합삼성물산에 물산주식을 매각하고 한국을 떠났다.



정치권의 자충수와 엘리엇의 ‘투자자-국가간 분쟁중개 청구’



엘리엇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통합이 종료된 후 2018년에 투자자로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 (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중재를 청구했다. ‘결정적 빈틈’을 봤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는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 20일 엘리엇 쪽 주장을 일부 인용해 한국 정부에 5359만 달러(약 69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배상총액은 1389억원에 이른다.

당시 우리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합병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은 패소할 수 밖에 구조를 스스로 만들었다. 탄핵 정국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본부장을 직권남용으로 구속했고,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경제공동체를 통한 ‘제 3자 뇌물’, ‘묵시적 청탁’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를 적용해 유죄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엘리엣에 빼도박도 못하는 빌미를 주었다.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 간에 방화벽이 설치되지 않음으로써 국격이 실추되고 국익도 해쳐진 것이다. 모든 것이 기정사실로 정해진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판단하면, 당시의 선택에 대해 아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전에 정해진 목표를 향해 모든 것이 과정이고 수단이었다. 철두철미 진영논리가 적용됐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삼성에 대한 재판은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 감상(感傷)을 벗고 법리와 상식 그리고 경제논리에 의거해 합병과 경영승계를 살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인 사법리스크를 떨쳐낼 수 있다. 기업인 사법리스크는 불확실성 덩어리로 그 자체가 후전적 정치문화이다.

시장경제의 주인은 누구인가. 관료, 사법부, 정치인이 시장경제의 주인일 수 없다. 시장은 실타래처럼 엮인 이해충돌을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기적같이 풀어준다. 법 해석도 경제논리에 닿아야 하고 시장친화적이어야 한다. 시장은 비인격적이기에 가장 합리적이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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