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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노크, 휘파람, 웃음…아픔이 축적되는 소리들, 김은성 작가의 ‘썬샤인의 전사들’

입력 2016-09-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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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서툰 휘파람소리, 맑은 웃음소리 그리고 천천히 두번 빠르게 두번 천천히 세번 두드리는 노크소리, 똑똑 똑똑 똑똑똑….

작가가 되고 싶었던 카투사 소년병 나선호(전박찬), 화가를 꿈꾸던 조선족 중공군 강호룡(노기용), 시를 쓰는 인민군 군의관 송시자(정새별). 그리고 그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제주도 동굴의 나명이(심재현), 장진호 협곡에서 만나 나무 상자에 운신했던 눈먼 소녀 김순이(정새별), 만주 위안소 쪽빵의 쪼맹이 지막이(이지혜), 여공 송시춘(우미화)….

‘썬샤인의 전사들’(10월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은 ‘목란언니’, ‘연변 엄마’, ‘시동라사’, ‘함익’ 등의 김은성 작가와 ‘앞집아이’, ‘로풍찬 유랑극단’으로 호흡을 맞췄던 부새롬 연출의 신작이다.

선호의 수첩에 깨알같이도 적혔던, 1940년대부터 7, 80년대를 거쳐 현재까지를 관통했던 이들의 사연을 소설로 전달하는 소설가 한승우(김종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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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전장에서 만난 나선호와 김순이.(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2016년 사고로 딸 봄이(박주영)와 아내 서미연(곽지숙)을 잃고 절필한 승우에게 딸 봄이가 사람들의 피를 빨고 괴롭히는 블랙드락을 무찌르려는 썬샤인공화국의 전사로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3년만의 집필에 나선 그를 찾아와 사연을 전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묻는다.

“왜 울어?”

미군 카투사와 한국전 소년병, 장진호 전투, 제주 4.3사건, 일본군 위안부, 1974년 문인 및 지식인 간첩사건, 1980년대 캠퍼스 내 프락치 활동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2016년의 대한민국.

“불쌍하다고 용서하면 안될 것 같아요…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워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승우의 단편 소설 속 소녀의 말에 이어지는 아내 미연의 “기억해, 포기하지 마”라는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처절한 역사의 전리품처럼 호룡, 시자, 시춘에게까지 전해진 선호의 낡은 수첩에서 승우는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블랙드락을 무찌르는 무기 거울, 하지만 거울로 블랙드락을 무찌른 사람들마저 이빨이 뾰족해지기 시작한다.

“왜 보지 않아?”
 

딸 봄이의 물음에 승우는 거울을 들어 스스로를 보기 시작한다. 괴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연구하기 시작한 썬샤인공화국의 사람들처럼 블랙드락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사연의 중심이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에서 살아서 현실에 발디딘 승우로 옮겨오면서 극은 나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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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처럼 선호의 수첩에 축적된 아픔들을 이야기하는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아직도 살아 있다고?” 군복무 당시의 상사 강종양(이화룡)의 생존 소식에 외치는 승우의 반문은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고 축적해둔 사회에 파동을 일으킨다.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스러져간 아이들의 행렬은 2016년 대한민국에서도,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 속 2019~2020년에도 그렇게 계속된다.

남매의 휘파람소리, 전장에서 만난 노크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아픔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되는 소리들, 그 소리들을 어떻게 들을 것인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교수 시춘이 문학도 한대길에게 했던 말이 짤막한 단어로 공명하며 긴 여운으로 남는다.

“소설은 사람 사는 이야기…시대의 냄새…시대의 진동….”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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