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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배움’으로 자유롭고 다채로워진 홍승혜의 해방일지 ‘복선伏線을 넘어서 II’

입력 2023-02-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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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혜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 II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기존 콘셉트에서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기 보다는 그냥 하다 보니 벗어나게 됐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어떤 하나에 멈춰 있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들이 들거든요.”

1997년부터 컴퓨터 윈도 기본 내장 프로그램인 그림판부터 포토샵, 최근의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새로운 툴로 작품을 선보여 온 홍승혜는 꾸준히 배우고 진화하는 작가다. 컴퓨터 픽셀을 기반으로 시공간의 레이어를 담고자 했던 그는 최근 일러스트레이터를 새롭게 배우고 작업의 툴로 활용하면서 또 한번 ‘증식’하고 ‘진화’하는 중이다. 

 

홍승혜
홍승혜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구상적 요소를 비롯해 색감도 그렇죠.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과 흰색, 검정 위주의, 굉장히 기초적인 색과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할 게 많았어요. 픽셀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기하학, 위치, 비율 등을 확실하게 훈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없어지는 게 아니라 보태지는, 레이어가 하나 더 생긴 거죠.” 

 

그래서 전시 제목이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3월 19일까지 국제갤러리 K1, 3)다.

 

2004년 ‘복선을 넘어서’에 이은 20여년만의 후속편으로 ‘오즈의 마법사’ 속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를 차용했고 컬러차트 역시 빨주노초파남보 ‘레인보우’다. 그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해방감, 아마추어 정신, 예측불가능성”을 꼽았다.

“아침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창에 항상 생각나는 대로 적는데 기자간담회를 앞둔 오늘(9일) 아침에 요약해 보니 (해방감, 아마추어 정신, 예측불가능성) 이 3가지더라고요. 이번 전시를 통해 해방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해방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느껴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 듀프레인(팀 로빈스)이 20년만에 감옥을 탈출했는데 저는 포토샵 그리드 속에서 산 지 25년이 됐더라고요.”

 

이를 “격자무늬의, 제가 자초한 감옥”이라고 표현한 그는 “그 감옥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앤디와는 달리 그 안에서 굉장히 편안하게, 안정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안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브룩스(제임스 휘트모어)처럼 감옥이 편한 사람도 있지만 제 경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회상적 방법론, 끊임없이 제 과거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어서 저의 이전 작업들을 보다 보니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죠.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실제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던 시절도 있었어요. 색채도 다양했고 형태도 굉장히 유기적으로 그리던 시절들이죠. (다양한 색채와 형태, 유기적 접근 등) 그게 그리워졌어요. 어떻게 그것들을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벡터 기반의 프로그램을 새로 배웠고 그 형태에서 나오는 여러 형상들로 이번 전시를 꾸렸죠.”

이어 ‘아마추어 정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뭘 배우곤 한다. 배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편”이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이유는 제가 단 한번도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이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걸 인정하니 두려울 게 별로 없다. 현재는 완벽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홍승혜 개인전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중 ‘홍당무’(사진=허미선 기자)

 

“두려움 없는 아마추어 정신이랄까요. 이번 전시의 1관은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면서의 연습장이에요. 이런 저런 것들, 다각형, 별 모양도 그려보고 그림자도 실현해보고 반복 툴 등을 사용해 보고…프로그램을 배우는 과정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그 배움 과정의 결과물이죠. 이게 ‘작업해야겠다’ 할 때 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요. 연습이 가지는 자연스러움이 충분히 결과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곤 2016년 개러지밴드를 만들 때도, 지난해 일민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할 때도 그랬다”며 “이 작업들은 계획적이지 않다. 제가 가진 툴로 이러 저러 하게 하다 보면 뭔가가 나온다. 픽셀(로 작업하던) 시절에도 그랬고 일러스트레이터가 추가되면서도 마찬가지”라고 말을 보탰다.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별자리 중 ‘화가자리/이젤’ 앞에서 설명 중인 홍승혜 작가(사진=허미선 기자)

 

“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놀다가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작업을 하다 보니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물들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흥미로웠죠. 그 결과물들은 결국 제 안에서 옛날부터 있던 형태들이거든요. 구름, 별, 동물, 식물, 미키마우스, 꽃잎 등 자연 속에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대상들이 유기적인 형태들로 실현된 거죠. 이 같은 예측불가능성이 제가 계속 작업하게 만드는 동력이에요. ”

 

그의 표현을 빌자면 “25년을 살아온 사각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모서리를 활용해 5각형, 6각형으로 형상화한 벽면의 1관에는 배움의 과정에서 자유롭고 다채롭게 새로 만들어낸 다양한 형태의 모양과 이를 활용한 가구, 수줍음이 많던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이기도 했던 빛나는 별모양의 눈을 가진 ‘홍당무’, 별자리 중 ‘화가자리/이젤’, 그가 사랑하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에 바치는 오마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홍승혜 개인전 ‘복선伏線을 넘어서 II’(Over The Layers II)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더불어 3관에서는 새로 배운 일러스트레이터로 실현한 7장의 꽃잎, 그가 2010년부터 주력하며 “인간이 등장하면서 할 얘기가 많아졌다. 기하학, 추상적인 것에서 내러티브로 가는 출발점이 된” 픽토그램을 활용한 ‘무용수’, 2016년 만든 개러지밴드의 음악 및 애니메이션 ‘서치라이트’ 등을 동원해 무도회장으로 꾸린 ‘봄이 오면’(When Flowering)도 만날 수 있다. 

 

홍승혜는 “춤추는 남녀, 여여, 남남 커플 등이 세상을 아우르고 7개의 꽃잎은 무지개를 담고 있다”며 “이 공간은 저녁 6시 이후로 180도 변한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조각들은 어둠 속에 묻히고 영상이 주인공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혀 달라지는 ‘봄이 오면’을 위해 국제갤러리는 15일부터 매주 수요일은 오후 8시까지 전시를 연장·운영한다.

“포토샵을 하면서 답답했고, 그래서 갈구했던 것들을 이번에 풀 수 있었어요. 저는 자제가 몸에 많이 배 있는 사람인데 이번엔 자제를 좀 풀었죠. 나이가 들면서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었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는 말도 떠올렸죠. 그런 나이로 가다 보니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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