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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이설이니까 믿고 본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人더컬처]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 이설
"유족,귀신,악마등 쉬운 캐릭터 한 번도 없었지만 내 필모그라피 자랑스러워"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밀리언 달러 베이비'같은 미쳐 빠져들 수 있는 역할 해볼것"

입력 2023-10-23 18:30 | 신문게재 2023-10-2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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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이설.(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북한에서는 계급으로 치이고 살기 위해 건너간 중국에서는 이방인으로 설움을 겪었다.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왔지만 여기서도 ‘한민족’이라는 포근함은 없다.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한영은 그렇게 어디서도 소속되지 못한 삶을 산다.

배불리 먹고 평양에서도 안 가본 영화관도 가며 사람답게 살지만 늘 공허함 뿐이다. 번 돈을 모두 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아있는 엄마한테 보내며 살고 있는 한영에게는 유일한 희망인 남동생이 있다. 먼저 탈북했지만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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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늦은 나이에 데뷔한 그는 “무남독녀지만 ‘네 할일은 스스로 해’라는 가풍 덕분에 자유롭게 연기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자신을 감시하는 국정원 남자는 의례적인 전화만 할 뿐이다. 하나원에서 만난 친구 정미(오경화)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는데 그마저도 결혼 후 이민을 가버린다.  

 

“북한말을 배우기 위해 탈북자 선생님을 만났는데 일단 넘어오려면 보통의 용기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영을 연기할 때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접근했습니다. 겉은 유약해 보여도 내면은 고목나무 같은 단단함이 있는 인물로 보였으면 했죠.”

영화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탈북 후 남한으로 귀화해 중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던 한영이 예기치 못한 사건과 이별 그리고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을 맞닥뜨리며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담는다. 

 

그 과정을 담담하게 소화해내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거머쥔 이설은 “3년 전 촬영한 영화라 좀 쑥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탈북민’이라는 설정만 아니면 낯선 서울에서 정착을 꿈꾸는 20대 여성의 도시 생존기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다만 늘 가족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어딘가를 훌훌 털고 떠나는 자유로움에 눈을 뜬 신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탈북자들이 생명을 걸고 넘어 온 한국사회에서도 삶은 고되다. 늘 실적과 싸우는 워킹맘, 사드여파로 여행사 문을 닫게 생긴 사장, 만만한 관광객들에게 시중 판매가보다 단가를 올려 파는 화장품 직원 등 한영이 만난 사람들은 어딘가 있을 법한 평범함 속에 전쟁같은 삶을 산다.

그 안에 기꺼이 섞이고 싶었던 한영의 고난은 결국 믿고 의지했던 주변사람 모두가 한국을 떠나며 원점으로 돌아간다. 유독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해외영화제의 러브콜을 많이 받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사선을 넘어온 자들의 이야기를 사려 깊은 연출과 연기력으로 표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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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가이드가 되려는 목적을 묻는 면접관에게 “돈 많이 버는 것”이란 현실적인 대답을 해 취업에 성공한 한영. 타고난 정직한 성격으로 물품 판매로 얻는 실적은 늘 바닥이다. (사진제공=찬란)

 

이설은 열린 결말로 어딘가로 향해가는 한영에 대해 “일단 북한은 절대 안 갔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짧게나마 남동생이 북한으로 다시 넘어가려다 중국 공안에 잡힌 신이 나오며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결말 해석이 분분함을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제 생각으로는 정미가 있는 베를린이나 제3국으로 갔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는 저에게도 ‘편견과 포용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사실 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잖아요. 나고 자란 지역만 벗어나도, 학교만 달라도 ‘나와 다른 너’가 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라마틱하게 건드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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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으로 드라마 ‘남과 여’를 촬영 중인 이설. 동해와 함께 7년차 커플을 연기한다. (사진제공=저스트엔터테인먼트)

극 중 한영은 유독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 날씨보다 춥게 입은 옷차림이지만 고급 캐시미어 목도리를 둘러 누가 봐도 멋을 아는 20대 여성의 모습이다.

 

이설은 “원래는 굉장히 소박한 의상이 준비됐었다. 하지만 한영이라면 또래다운 멋을 악착같이 따라했을 것”이라면서 자신이 중학교 때 처음 했던 어설픈 화장을 떠올렸다.  

 

그렇게 동묘를 뒤져 빈티지 옷을 사고 감독이 하고 있던 목도리를 즉석 매치해 캐릭터를 완성했다.

 

무엇보다 그는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북한 관련 영화로 따듯한 시선이 담긴 작품이라 애정이 간다. 과거엔 빨갱이라고 부르고 적대시했는데 이제는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라고 미소지었다.

“북한에서 왔어도 외형은 똑같잖아요. 저 역시 수없이 많이 만났을 수도 있지만 모르고 사는 것처럼요. 배우로서 평범한 캐릭터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저사람이 이 사람이었어?’라는 반응은 늘 짜릿합니다. 영화 ‘판소리 복서’의 귀신, ‘방법: 재차의’ 악마, 넷플릭스 ‘D.P’의 유족에 이어 이번 탈북민까지 뭐 하나 쉽지 않은 역할이었지만 애정이 크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설에게 중국어라는 어려운 숙제를 안긴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 화교출신인 대학생 선생님, 그 친구들과 매일 만나서 대화하고 모든 대사를 녹음해 화장실까지 가져가 듣고 또 들었다. 그는 “경상도 출신이라 서울사람이 하는 사투리 연기의 어색함을 너무 잘 아니까”라며 크게 웃은 그는 “중국사람들이 봐도 이해가 될 정만큼 미묘한 억양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내가 가진 편견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리고 제목처럼 나에게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되묻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주변사람들에게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니?’라고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제목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인데 다들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읽는다는 거예요. 그만큼 믿음이 사라진 현실에 익숙한 거 아닐까요?”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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