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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뷰] 사투리 대사에 연기 '안 하는'것만 같은 생생한 배우들, '괴인'이 나타났다!

그저 '중년의 플러팅'이라고 하기엔 기괴하고 슴슴한 영화

입력 2023-11-0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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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인1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넷팩상, KBS독립영화상, 크리틱b상 및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 영화평론가상을 석권한 영화 ‘괴인’의 포스터.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2002년 월드컵 직접 봤어요?”

영화 ‘괴인’의 카센타 주인은 말한다. 그냥 16강에 멈췄어야 했다고. 그때의 짜릿함과 희망을 접한 젊은이들이 ‘꿈은 이뤄진다’고 믿는 탓에 사회가 이모양이라는 노골적인 대사가 귀에 콕 받힌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가 국제 대회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영화는 말로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사회의 민낯을 까발린다.

그렇다고 거창한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다. 남자는 흔히 ‘노가다’라 치부하는 목수다. 그의 말대로 “디자인도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게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것도 당연하다. 가구를 만드는 목수는 뭔가 있어보이지만 그의 직업은 모든 공사 현장를 아우르는 일이다. 아버지뻘 인부에게 반말을 해야 만만해 보이지 않고, 집주인의 친구에게까지 메이드를 해야 남는게 있는 장사다.

고등학교 동창에게는 자신의 하루 일당이 40만 원이고 이래저래 뒤로 남기는게 많은 자영업자임을 과시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영화 ‘괴인’은 지방에서 올라와 나름의 직업을 가지고 수도권 어딘가의 타운 하우스에 세들어 사는 남자 기홍(박기홍)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의 입은 거칠고 기본적으로 반말이다. 무뚝뚝하고 부모님에게도 살갑지 않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괴인’은 실제 어디선가 살고 있을 법한 사람들을 내세워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일을 스크린에 담는다. 자세히 보면 보일 인간 군상이지만 결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독립영화의 대들보’로 활약중인 이정홍 감독은 첫 장편작인 이번 영화에서 일상의 작은 균력 속에서 ‘혼자인듯 하지만 모두가 같이 살아가는 삶’을 집중도 높게 그려낸다.  

 

영화 괴인
모호한 화면 만큼이나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할 엔딩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극중 CCTV의 한 장면. (사진제공=㈜영화사 진진)

 

기홍은 얼마전 맡게 된 피아노 학원 리모델링 공사 중 기가 막힌 일을 당한다. 현장 마무리 작업이 늦을까봐 새벽에 몰래 그 곳에 들어가 잠을 청한게 화근이었다. 블랙박스 영상을 보니 누군가 자신의 차 지붕에 점프를 하는 바람에 움푹 꺼지는 사고를 당한것. 성공한 사업가로 남아도는 돈을 주체못하는 집주인 형은 범인 물색에 나서자고 부추기고, 그런 둘을 바라보는 형수의 한심한 눈빛이 ‘괴인’의 후반부를 이끈다.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잡았지만 수리비를 받아내기가 영 마땅치 않다. 알고보니 쉼터를 나와 마땅한 거처 없이 이곳저곳에서 쪽잠을 자는 여성이었다.

20대 초반의 이 여성은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더니 부모님 직업과 나이를 물어보더라”며 그들을 자신이 자주 가는 술집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고 말한다. 일명 ‘총총이’라 구분되는 기성세대를 비꼬지만, 정작 자신과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같은 나이임을 모르는것 같다. 그들은 자신은 절대 총총이가 아니란듯 행동하지만 나이도 직업도 가진것도 모두 다른 집주인 부부와 기홍은 과연 좋은 어른일까.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목 부분에 거미를 문신할 만큼 세 보이기 원하는 사회적 약자의 넋두리가 훈훈하게 마무리 될 즈음 ‘괴인’은 중년의 플러팅(flirting)으로 끝을 맺는다. 약간의 알콜은 평소 무시하고 적대시했던 관계도 남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마법으로 작용하는 법이다. 정확히는 집주인형의 아내와 기홍은 문 닫은 편의점을 뒤로 한채 어딘가로 향한다. 그게 동네 술집일지, 아니면 29금 어른들의 세계일지는 관객들의 몫이다. 다만 ‘괴인’은 산뜻한 새벽의 새소리로 끝을 맺는다. ‘그래서, 뭐?’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내내 생각나게 만드는 괴이함이 가득한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136분.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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