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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예산 간접지원보다 월 100만원 아동수당이 효율적"

[브릿지 초대석]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입력 2023-11-28 07:00 | 신문게재 2023-11-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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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초대석]이인실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철준 기자)

 

“젊은이들에게 낳기만 하면 국가와 사회가 키워준다는 확고한 믿음을 줘야 한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한미연) 원장(67)은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한미연 사무실에서 ‘브릿지경제신문’과 만나 “현재 저출산 대책에 들어가는 예산을 재구조화해서 태어나는 아이에 대해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훨씬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 원장은 “프랑스, 독일이 18세, 20세까지 아동수당을 준다”며 “우리도 지방재정교육교부금 등 예산을 재조정하면 아이 한 명당 월 100만원씩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1세대 여성경제학자로 첫 민간출신 통계청장을 지낸 이 원장은 지난해 한미연 초대원장으로 취임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원장을 만나 저출산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은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있다. 올해 합계출산율 0.7명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산업화이전에 각국의 인구동향은 ‘많이 낳고 많이 죽는 다산다사(多産多死)’ 였다. 그러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많이 낳고 적게 죽는 다산소사(多産小死)’로 바뀌며 세계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다 산업화이후 경쟁이 격화되면서 ‘적게 낳고 적게 죽는 소산소사(小産小死)’로 바뀌면서 저출산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이 과정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다 겪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저출산에 시달릴 때에도 합계출산율(여성 1인이 가임기간 동안 낳는 아이의 수)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노인대국으로 유명한 일본 조차도 합계출산율 1.3을 유지하고 있다. 유독 한국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저출산(2023년 2분기 합계출산율 0.71)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한국이 몇 백년에 걸친 서구의 산업화·근대화 과정을 수십년에 걸쳐 압축적으로 겪은 게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경제개발론에서 농업인구 비중이 50%에서 20%로 얼마만큼 기간 동안 줄었느냐 하는 것으로 산업화의 속도를 보는데, 네덜란드의 경우 100년이 걸렸고 유럽 다른 나라들은 대략 50년 정도 걸렸는데, 한국은 불과 19년 걸렸다. 

 

이렇게 빨리 산업국가로 들어서고 급속한 도시화가 이뤄지며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바뀌면서 출산율이 급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지난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한국을 비롯해 17개 선진국 성인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조사했는데, 유일하게 한국인만 ‘물질적 풍요’를 1위로 꼽았다. 나머지 14개국은 국민들은 ‘가족’을 가장 중요한가치로 꼽았으며, 다른 두 나라는 건강과 사회를 꼽았다.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는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도 비용’이기 때문에 저출산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브릿지초대석]이인실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지난 2006년 제1차 저출산 대응 기본계획 수립이후 정부는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약 3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정부 대책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없어, 각 부처가 다 따로 따로 저출산 대책을 펼치고 있는 게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복지부대로 이곳 저곳에 센터가 있고, 교육부는 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지원하고, 여성가족부도 또 아동돌봄센터 등을 지원한다. 이렇게 각 부처에 흩어진 기능과 예산을 모두 모아 컨트롤타워가 일관성 있게 집행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있지만, 위원회 형태로 존재해 조직도, 집행력도, 예산도 부족하다.

 

또 저출산 예산도 너무 간접지원에 치우쳐 있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이 약 51조원인데, 그중 40% 넘는 금액을 국토교통부가 가져가고 있다. 주로 청년과 신혼부부 주택 관련 지원이다. 실제로 아동과 그 가족에 지급되는 영유아 육아수당, 아동수당은 17조원 가량이 전부다. 

 

출산을 늘리려면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나라가 다 키워준다는 확고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아동수당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프랑스, 독일은 18세, 20세까지 아동수당을 준다. 우리도 지방재정교육교부금 등 예산을 조정하면 아이 한 명당 월 100만원씩 줄 수 있다. 우리나라 한달 출생아 수가 20만명인데 이 아이들에게 아동수당을 100만원씩 줘도 월 2000억원이다. 기존의 저출산 예산에 지방교부금을 조정하면 충분히 여력이 되는데 안할 이유가 없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 지난해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혼인율은 3.7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낮은 혼인율이 거론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결혼적령기 남녀가 결혼을 안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집 등 경제적 이유를 꼽는데 이 문제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해 줘야 한다. 예를 들면 지금 청년주택 지원이 대부분 1인 가구 중심으로 돼 있는데, 10평 이하의 원룸 주택 주면서 결혼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 부모가 결혼자금을 자녀에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대폭 공제해줘야 한다. 20년전만해도 서울에 전세를 구한다면 옛날에는 한 2억원 정도면 작은 아파트 전세를 구했는데, 지금 똑같은 것이 4억원에서 5억원이 됐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는 50대 이상 베이비붐 세대가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부모들이 ‘너 돈 벌어서 결혼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못 한다. 결혼하는 자녀에 대한 증여세 공제는 부자 감세가 아니고 중산층을 위한 정책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과 함께 비혼출산도 적극 보호하고 나아가 장려해야 한다. 

 

비혼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실제로 지난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비혼 출산율은 41.9%에 달하지만,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비혼 출산율은 2.9%에 불과하다. 심지어 가톨릭 국가인 남미의 칠레, 콜롬비아 등도 비혼출산이 70%가 넘는다. 유독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국가들만 결혼을 해야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가 유교적·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혼과 비혼 출산은 전 전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대세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려면 비혼출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비혼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와 함께 살 집도 주고, 아동수당도 주고, 애 키우면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도 알아봐줘야 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브로커’처럼 비혼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베이비 박스에 버리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출산율 늘릴 수 없다.


- 우리나라 출산율은 25년전인 1998년에 1.5명 이하로 떨어졌고, 2019년부터 1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 같은 추세라면 인구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부터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결혼·출산율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인구가 줄어드는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즉 소수의 경제활동 인구가 다수의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구골짜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시골에 가보면 이미 이런 인구 골짜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당장 수확을 하지 않으면 농작물을 다 버릴 판인데도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한철 농사를 망치는 곳도 많다. 

 

이 인구 골짜기를 제대로 지나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이민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그저 외국인 인력 노동 정책이 있었을 뿐, 아직 이민 정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나라다.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다문화사회로 간다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같은 사회보장제도도 그들과 쉐어할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 

 

제대로 된 이민정책을 만들어 외국인들의 이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 초대 한미연 원장을 맡았다. 한미연은 어떤 곳이고 저출산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저출산 문제해결을 위해 민간, 특히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대의 직장인은 자기 인생에서 거의 한 절반을 회사에서 보낸다. 기업을 바꾸고 직장내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대기업에서는 남자가 육아휴직을 하면 아직도 눈치를 봐야 한다. ‘무슨 남자 자식이 육아휴직이야’ 이런 말이 여전히 나온다. 이런 문화를 바꿔야 한다. 반면 중소기업은 생산성이 낮아서 직원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지원해주지 못한다. 돈이 없어서 애를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지원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는 인적 자본 투자 세액 공제해줘야 한다. 애 낳는 것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자는 것이다. 과거 7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가 조세 특례법 만들면서 실제 자본을 투자하는 투자자에게 투자 세액 공제해 주듯이, 지금은 인적 자본이 부족하니까 애 낳는 중소기업 직원에게 인적자본 투자세액 공제해 주자는 것이다. 한미연은 이런 문제를 연구하고 추진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브릿지초대석]이인실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이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브릿지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이인실 한미연 원장은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지질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이후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후 휴스턴대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제12대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와 한국여성경제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국내 1세대 여성경제학자로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면서 학계와 관계, 기업을 어우르며 국민과 소통하는 실물경제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재정·조세 전문가로 관련 수 십편의 저서와 논문을 집필하였으며, 의회경제연구라는 영역을 국내최초로 개발해 서강대에서 의회경제학 석사과정 및 의회정책 단기과정 개설 및 운영하기도 했다. 

 

통계청장 재직시절 인구총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인구 구조와 특성을 파악해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으며, 지난해 출범한 한미연의 초대 원장을 맡게 됐다. 지난 8월에는 양성평등 사회를 위해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국내 첫 ‘인구 전문’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으로 출범한 한미연은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을 비롯해 각계각층 80여명 지도자들이 발기인으로 나섰고, 포스코·매일유업 등 34개 기업이 파트너기관으로 동참했다. 정운찬 전 총리가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형구 기자 scaler@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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