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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23번째 ‘홍보가’ 완창 나선 명창 김정민 “우리 조상들의 풍부한 재료로 맛깔나게!”

입력 2024-0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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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판소리는 1인 모노드라마가 가능해요. 1인 오페라와 같아서 그 음의 높낮이, 다양한 음색 등도 혼자 표현할 수 있죠. 저 아래 음부터 고음까지를 혼자서 소화할 수 있다는 데 저는 빠져들었어요. 외국인 관객들 또한 그 점에 열광하는 것 같아요. 음악은 그렇잖아요. 못알아듣더라도 좋은 음악은 좋다고 느끼죠.”

10년 새 벌써 23번째 완창이다. 2013년부터 ‘홍보가’ ‘적벽가’ 완창 22번,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까지 선보인 명창 김정민이 ‘박록주제 박송희류 홍보가’(1월 20일 서울동화문국악당) 23번째 완창에 나선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재료가 너무 풍부하고 확실해요. 이 재료들을 가지고 뭐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만든 무대를 사람들이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등의 확신이 들었어요. 조상들의 힘이죠. 그 힘을 알리고 전승하려 이 시대에도 누군가는 노력해야하는데 그걸 제가 한번 해보자 했어요. 무너져도 해보자, 그렇게 하나 하나 하다보니 사람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죠.” 

 

국내 흥보가공연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강원도 원주 출신의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인 그의 무대는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열기만 하면 매진사례를 이룰 정도로 열광하는 공연이다. 이번 ‘박록주제 박송희류 홍보가’ 완창무대 역시 일찌감치 매진됐다.

故박록주 명창의 손제자이자 박송희 명창의 제자로 소리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판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반대로 가야금을 먼저 시작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소리로 전향해 아버지의 눈을 피해 연탄광에서 연습을 하는 등 소리에 정진했다.

키워주겠다는 스승에 “스승님에 기대 성공하고 싶지 않다”며 마다하고 국악인이라면 모두가 입단을 갈망하는 국립창극단에 합격을 하고도 기어이 ‘포기서’를 쓰는가 하면 그 길로 국악고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청소년의 변성기, 남녀 성대의 모양, 소리를 내는 원리 등을 연구했다. 그 시절 제자의 원서접수로 2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휘모리’에 출연하며 제3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여자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어쩌면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음악을 만들었을까 싶었어요. 악보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걸 만들었을까, 대단한 분들이네…그게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슬프면 ‘춘향가’의 이별대목을 부르고 즐거우면 ‘흥보가’의 박타는 대목을 하고 화가 나면 ‘적벽가’의 한 대목을 불러요.”

이에 김정민 명창은 “왜 이 훌륭한 음악을 모르는지 너무 알려주고 싶어서” 한국을 비롯한 해외 무대에 부분은 물론 완창 판소리를 올리는 데 온힘을 다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집까지 걸어가면서 사설을 하고 지하철에서도 소리를 했어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죠. 그런데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 판소리가 진짜 좋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죠.”

“타고 나는 것 3, 노력이 7”이라는 그의 노력은 2021년 그의 이탈리아 공연에서 판소리를 처음 접하고 매혹돼 다큐멘터리리 영화 ‘오페라 솔로, 김정민’(가제) 촬영을 위해 동행 중인 레오나르도 치니에리 롬브로조 감독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출품을 비롯해 넷플리스 등에서도 서비스될 예정이다.

“지금도 매일 새벽 5시 광장동 집부터 구리까지 뛰면서 노래를 해요. 날씨가 추워지면서는 런닝머신이나 줄넘기를 하면서 소리를 하기도 하죠. 모래사장을 뛰거나 계단 100개를 오르내리며 노래를 하기도 해요. 호흡을 길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거든요. 이탈리아로 공연을 갈 땐 미리 새벽 3시 30분(현지 공연시간)에 인형들을 관객처럼 늘어놓고 소리를 해요.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시차적응 필요 없이 소리를 할 수 있도록요.”

 

‘적벽가’ 완창에 앞서 각 인물들의 감정과 캐릭터 분석을 위해 ‘삼국지’를 50여번 완독하거나 지금도 집안에 한평 남짓의 방음실을 만들어두고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소리 연습을 하는 등 “무대 위에서 조금이라도 흔들림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는 매일을 무대 위에 선 듯 살아가고 있다.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예전에는 병풍과 돗자리면 소리가 가능했어요. 소리꾼이 앉으면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곳이 곧 무대였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무대가 이만해졌는데 그걸 놔두고 돗자리 위에서만 소리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렇게 반문한 김정민 명창은 “시대도, 사람들도 변하고 있다. 현란한 춤을 춰도 안보는 경우가 있는데 옛날 소리를 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요구”라며 “두 스승님(박록주, 박송희)이 돌아가시면서 우리 소리를 널리 알려달라고 늘 당부하셨다. 더불어 판소리가 고루한 옛날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내용물은 충실해요. 전통은 지키면서 그 외의 것에 변화를 주는 거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다양하게 해보고 있는데 정말 기가 막혀요. 병풍 대신 애니메이션 영상을 써요. 그 영상도 매번 달라요. 지난번에 전래동화풍으로 꾸렸는데 이번엔 놀보 아내도, 흥보 아내도 예뻐요. 놀보도 심술궂지만 잘 생겼어요. 그런 인물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새로 제작했죠. 영상이 책을 넘기듯 연출되고 제가 그 앞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에요.”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이어 “병풍 하나에 돗자리에 앉아 부채만 접었다 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3~5시간 남짓을 보라고는 할 수 없는, 소리만으로는 시선을 끌 수 없는 시대”라며 “의상, 무대 소품, 고무신 하나까지 매 공연 공을 들여 다르게 연출한다”고 덧붙였다.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캐릭터 역시 재창조해 선보이곤 한다.

“흥보의 여러 자녀 중 몇몇을 짱구 등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빗대 목소리 연기를 해요. 흥보 아들, 흥보와 놀보 마누라, 번수들 등 10명 정도 저만의 인물 설정을 해서 들려드리면 그렇게들 좋아하세요. ‘적벽가’는 1부는 제갈공명, 2부는 조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요. 최근에는 트로트 ‘101송이 장미’에 빠져서 그걸 부르기도, 트로트 음반을 내기도 했어요.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리를 계속 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 없다 보니 소리길을 포기하거나 트로트로 전향하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그는 몸소 보여주며 “다른 일 혹은 트로트를 하면서 소리도 해. 미리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곤 한다. 그가 화장품 익슬리(ILXLI) 회사 CEO로 나서고 악기공방을 만들어 저렴한 가격으로 국악기를 공급하고 전국은 물론 전세계를 돌며 무대에 서는 것 역시 판소리를 전세계에 알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명창 김정민(사진제공=맛있는 국악)

 

“후배들이 힘들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옛 것이라고 치부되기에는 너무 아까운 우리 판소리가 사장돼 박물관에서만 보게 되지 않기를 바라요. 그래서 우리 후배들이 이 길을 가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판소리 5바탕 전부를 한 일주일에 걸쳐 완창을 해보고 싶어요. 어디서 봤는데 ‘영화 오래보기’ 대회도 있더라고요. 그걸 응용해 ‘판소리 완창 오래 보기’ 등의 대회도 한번 해볼까, 잠잘 때 듣는 힐링 판소리 앨범을 만들거나 완창 시 5명의 고수를 투입해볼까 싶기도 해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꾀하는 데는 후학들의 기댈 어깨, 비빌 언덕이 되고픈 마음이 깔려 있다. 김정민 명창은 “정말 잘하는 아이들이 기댈 언덕이 돼주고 싶다”며 “그렇게 저라도 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맘껏 펼칠 수 있게 언덕이 된다면 아이들이 환경 때문에 다른 데로 가지 않고 더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도전은 저도 무섭죠. 하지만 무섭다고 가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잖아요. 죽더라도 가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럴 수 있는 건 자기확신 때문이죠. 어릴 때부터 거울을 보면서 상상을 했어요. 제가 꾸는 꿈 속에 제가 있는 상상이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완창을 할 거에요.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넌 참 멋진 사람이야’ ‘남들이 아니라고 해도 뭐든 할 수 있어’ 그렇게 마인드 콘트롤을 했어요. 밤에 잘 때도 그 꿈을 꿔요. 그 꿈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이뤄졌죠. 그런 자기 암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여기 있잖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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