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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제 '짝'과 함께 소박하고 청량한 ‘스페인’ 들려드릴게요!”

[人더컬처]

입력 2024-01-31 18:30 | 신문게재 2024-02-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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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시 돌아왔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연이라고 느꼈죠.”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는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2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이하 국립심포니)와 협연할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Concierto de Aranjuez)을 “인연”이라고 표현했다.

1년여 전 즈음 그도 이 곡의 협연 아티스트 후보 목록에 있었지만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몬테네그로의 밀로시 카라다글리치(Milos Karadaglic)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밀로시 카라다글리치가 내한공연을 채 1주일도 남기지 않은 때에 부상을 입으면서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박규희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 곡은 기타 그 자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주체성이 뚜렷한, 스페니시의 정석이죠. 클래식 기타 연주를 못들어보신 분들도 듣자마자 ‘스페인스럽다’ 혹은 ‘이게 기타지’ 싶으실 거예요. 기타를 가장 납득시키기 쉬운 곡이랄까요.”

 

3_연주_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2년부터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다비트 라일란트(David Reiland)가 이끄는 국립심포니의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작곡가에게 무한한 영감이 되는 나라 스페인의 음악을 소개하는 무대다.

샤브리에의 ‘에스파냐’, 드뷔시의 ‘관현악을 위한 영상’ 중 ‘이베리아’, 라벨의 ‘볼레로’ 등과 더불어 박규희와 협연하는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을 만날 수 있다.

“특히 1, 2악장은 스페인의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스페인과 기타는 떼려야 뗄 수 없죠. 스페인은 현재 클래식 기타의 원형이 태어난 곳이고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 작곡가도 워낙 많거든요. 귀족이 아닌 집시 음악으로 스페인 국민들의 일상 곳곳에 존재했던 악기이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그 집시스러운 멋을 살릴 수 있는, 아주 적합한 곡이죠.”


◇스페인을 닮은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 포스터(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다행히 이곡을 작년 11월에 일본에서 공연했어요. 몇 달에 걸쳐 준비했던 걸 단 4일만에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밤낮으로 연습 중이죠.”

이번 협연에서 박규희가 연주할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어려서 디프테리아를 앓아 시력을 잃은 피아니스트 로드리고가 스페인 마드리드 남부의 아랑후에스 궁전 정원에서 영감받아 작곡한 곡이다.

“스페인 느낌의 정원은 정말 건조하고 밝아요. 진짜 밝고 화려하고 정말 딱 알기 쉬운 느낌이죠. 특히 1악장이 밝고 맑고 건조하고 탁 트인 청량한 느낌이죠. 로드리고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눈이 안보이니 공기와 바람부터 느껴진다고 했거든요. 2악장은 딸을 유산한 아픔을 담은, 생사를 표현했어요. 메이저가 됐다가 마이너가 되죠.”

트레몰로 주법이 돋보이는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Recuerdos de la Alhambra)과 더불어 클래식 기타를 대표하는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박규희의 표현처럼 “피아니스트가 작곡하다 보니 기타리스트적으로 쓰이지 않은, 운지법도 그렇고 기타리스트가 연주하기에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곡”이다

“지금까지 30번 정도를 연주했지만 여전히 연습도, 준비도 많이 해야 하는 어려운 곡이에요. 게다가 국립심포니랑은 첫 협연이잖아요. 국립심포니는 사운드가 너무너무 풍부해요. 그 두께감이 남다르죠. 반면 클래식 기타는 소리 자체가 소박하고 크질 않아요. 국립심포니의 그 두꺼운 사운드를 뚫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염려가 되면서도 기대도 크죠.”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그에게 트라우마이자 영광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는 “2015년인가 2016년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NHK교향악단과 이 곡을 연주했다”며 “연주 자체도 영광이었고 신기했지만 한국의 제 스승님들 3분을 보은의 의미로 모셔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이 곡에 대한 최악의 순간은 2011년 교토 교향학단과의 첫 무대예요. 이틀 연속 두 번의 공연에서 협연했는데 경험이 없다 보니 너무 긴장해 리허설을 완전 망쳐 버렸죠. 혼자 연습했던 템포와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타이밍도 어긋나고 템포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고…너무 창피했죠. 가모가와 강에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 크게 우울했던 시기였고 이 곡에 대한 트라우마가 꽤 오래 갔어요. 20번쯤 연주하고서야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곡은 떨려요.”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운명적으로 만난 ‘짝’ 클래식 기타

 

“저에게 기타는 공기처럼 너무 당연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온 5세, 기억이 나는 첫 순간부터 저는 이미 간단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거든요.”

일찌감치 벨기에 프렝탕 기타 콩쿠르, 스페인 알함브라 기타 콩쿠르 등을 석권한 그에게 기타는 운명적으로 만나 한눈 팔 새도 없이 늘 함께 해온 “짝”이다.

한국 인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아기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기억도 나지 않는 만 3세부터 클래식 기타에 매료돼 연주를 시작했다.

“엄마가 비틀즈를 좋아해 통기타를 배우러 학원에 갔는데 클래식 기타만 가르치는 곳이었어요. 그렇게 엄마를 따라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이 쥐어주신 작은 기타를 연주하며 놀았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엄마한테 계속 기타를 하고 싶다는 제 의지를 얘기했어요. 항상 선생님을 빨리 찾아달라고 조르곤 했죠.”

클래식 기타의 위상이 지금보다도 더 척박했던 90년대 그는 어렵사리 이은철, 리여석 기타 오케스트라 창단자의 제자가 됐다. 매일 국어 교사였던 스승의 학원에서 말과 언어의 특성, 그를 통한 프레이즈, 연주기법, 예의범절까지를 배웠다.

“일본에서 돌아온 다섯 살부터 다시 일본으로 간 15세까지 양치하는 것처럼 매일 학원을 갔어요. 유년기와 사춘기를 리여석 선생님과 보냈죠. 제2의 부모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예원학교, 일본 도쿄음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교를 거쳐 스페인 알리칸테 음악원 마스터 과정을 수석졸업하고 석사 과정 중인 그는 일본과 유럽, 미국 등 해외에서 더 이름난 기타리스트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저는 2010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했어요. 그 데뷔 리사이틀이 NHK로 전국에 방송되면서 연주기회가 많아졌죠. 당시 한국은 클래식 기타 불모지였기 때문에 연주기회가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였거든요. 그렇다 보니 2014년 초반까지는 거의 일본에서만 연주했죠. 그러다 한국으로 ‘역수입’(?)된 것 같아요. 일본은 음반시장도 여전히 크고 버블경제 때 지은 공연장도 많아요. 한번 투어를 하면 3개월이 걸릴 정도죠.”

 

이어 박규희는 “제 선생님들, 선생님들 세대에 이미 클래식 기타의 위상이 높다. ‘기타’라고 했을 때 클래식 기타라고 알아듣는 분들이 굉장히 많을 정도”라며 지난 24일 한국, 중국, 일본에 동시 론칭한 애플 뮤직 클래시컬(Apple Music Classical)의 협업 아티스트가 “클래식 기타리스트 무라지 카오리일 정도”라고 덧붙였다.

“30년 전부터 교본이 탄탄하게 구축된 일본에서는 전세대를 따라간다면 한국은 제가 ‘최초’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클래식 기타만을 위한 오리지널 레퍼토리가 굉장히 많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연주자들이 많아져야 해요. 평생을 통틀어도 저 혼자서 그 방대한 양을 다 연주할 수는 없거든요. 박지형, 2023년 스페인 베니카심 프란시스코 타레가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대연 등과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요.”

 

◇클래식 기타를 닮은 스페인 “소박하고 따뜻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저는 스페인 음악을 들어도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모호하지 않고 순수하게 표현한다고 할까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감정은 소박함이에요. 소리가 크거나 화려하지 않은, 꾸며내기 보다는 정말 소박하고 따듯하죠. 스페인의 그런 면들이 클래식 기타를 닮았어요.” 


그는 “스페인은 제가 오랫동안 유학했던 비엔나보다 훨씬 사랑하는 나라”라며 “사람들이 너무 순수하고 티 없이 밝고 착하다. 뭔가 속에 걱정이나 꼬여 있는 마음이 전혀 없이 표현하는 그대로”라고 털어놓았다.

박규희는 클래식 기타의 매력 역시 “소박함”으로 꼽았다. 그는 “듣기 되게 편한, 옆에서 연주를 해도 부담되거나 방해되지 않게 공기처럼 있어주는 음악”이라며 “음색, 주법도 진짜 많아서 다양한 소리를 낸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것도 매력”이라고 털어놓았다.

“클래식 기타는 여전히 대중적인 악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요즘 아이유 등 K팝 가수들도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통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로 많이 작업해요. 이병우 선생님을 시작으로 영화음악에도, 오케스트라 협연에도 많이 쓰이죠. 이전보다는 많은 분들이 클래식 기타에 대해 알고 계시니 점점 더 콜라보레이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어요.”

통기타가 스틸 현으로 뚫고 나가는 소리를 낸다면 클래식 기타는 나일론 줄을 손톱과 살로 연주한다 보니 부드럽고 작지만 멀리까지 뻗어가는 소리를 내는 악기다. 손톱과 살이 현악기의 활처럼 쓰이다 보니 연주하는 이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의 소리를 내곤 한다. 연주하는 컨디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삐끗하는 순간 음이탈이 날 만큼 예민한 악기이기도 하다.

“늘 손톱을 기르고 촉촉함을 유지하고 관리를 하는데도 늘 어려움을 겪어요. 시험을 앞두고 손톱이 다 깨져버려서 야쿠르트 병, 탁구공 등을 잘라 붙이고 연주를 하기도 했어요. 연습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손톱이 다 닳아 없어져 버려서 오히려 콩쿠르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연습 할 때는 테이프를 손톱에 붙인다든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오른손은 거의 안써요.”

 

그는 “뭐든 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정성들이 쌓이고 쌓여 좋은 연주가 된다고 믿는다”며 “그래서 어느 순간에도 꾀부리거나 느슨해지는 게 너무 싫다. 그렇게 오른 무대는 관객분들이 정확하게 알아채시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 연습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SihoonKim(사진제공=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르네상스의 류트(Lute)부터 지금까지 기타는 항상 있어 왔어요. 모양만 바뀌어 왔죠. 피아노가 탄생하기 전 다성부 악기는 기타와 하프 뿐이었어요. 피아노의 탄생으로 음량이 큰 악기들이 인기를 끌면서 클래식 기타는 오케스트라에서도, 귀족 사회에서도 뒤로 밀려 버렸죠.”

박규희는 “악기 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필을 하지 못해 역사 속에 묻힌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가늘고 길게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며 “좀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기타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 역시 모양을 바꾸며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이어온 클래식 기타처럼 가늘고 길게 연주하고 싶어요. ‘박규희 기타리스트는 항상 어디선가 뭔가를 하고 있고 좋은 연주를 계속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그런 연주자였으면 좋겠어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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