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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하도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人더컬처]

입력 2024-04-15 18:30 | 신문게재 2024-04-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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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

 

“피에르 넘버 중 ‘Dust and Ashes’라는 곡의 가사들이 너무 좋아요. ‘돌아본다. 좋은 사람으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그 가사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을 관객한테 전달하고 싶어요.”

하도권은 출연 중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 6월 16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그리고 자신이 연기하는 피에르(케이윌·김주택·하도권, 이하 시즌 합류·가나다 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피에르 대본을 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서사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하면 관객분들이 알아봐주실까를 고민했고 굉장히 심플하게 생각했죠. 그럼에도 전달이 어려운 게 저희 작품의 구조 같아요.” 

 

그레이트 코멧 하도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

 

더불어 ‘Dust and Ashes’ 중 ‘오늘이 나의 끝이라면 난 잠든 채 죽네’ ‘사랑하기 전엔 우린 잿더미 속 잠든 아이, 사랑에 빠지면 깨어나’에서 느껴지는 피에르의 깊은 쓸쓸함들, 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다시 깨어난다는 희망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 가사들을 통해 피에르는 말하죠. 죽고 싶지 않고 다시 살고 싶다고. 다시 산다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누군가한테 위로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 당신들도 이런 희망을 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 힘들고 어려워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마! 그렇게요. 그래서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 중 ‘다시 뛰네 새로운 삶 향해’라는 마지막 가사를 노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를 위한 피, 땀, 눈물

그레이트 코멧 하도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
“악단장이자 복잡한 피에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갈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제가 얻은 답은 ‘각 신의 감정에 충실하자’였어요. 그 신에 쓰이는 에너지만큼, 쌓인 만큼의 감정을 고스란히 그냥 전달하자 했죠.”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하도권이 2016년 ‘왕의 나라’ 이후 8년 만에 “운명처럼 놓여진” 무대복귀작 ‘그레이트 코멧’은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의 ‘전쟁과 평화’(Война и мир)를 바탕으로 한 성스루(노래로만 꾸린) 뮤지컬이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불안한 1812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하도권은 삶에 회의적이고 무기력한 귀족 피에르를 연기한다.

“피에르가 1막에서는 무력해요. 굉장히 자조적이죠. 그런데 2막에서는 변해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의미가 없었는데 나타샤를 바라보면서 내가 누군가한테는 위로를 줄 수 있다 데 희망을 보는 거죠. 가사가 굉장히 직관적이에요. 나타샤를 보면서 사랑과 연민을 느낀다거나 눈물을 애써 참고라는 가사가 있거든요.”

그의 설명처럼 피에르는 마냥 무기력하고 회의적인, 극 중 인물소개 넘버 가사처럼 “혼란스럽고 어정쩡한” “돈은 많은데 안 행복한 유부남”이다. 자신의 친구이자 헤픈 아내의 동생이기도 한 매력적인 젊은 군인 아나톨(고은성·셔누·정택운)에 빠져들어 상처입은 나타샤(박수빈·유연정·이지수)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의 유일한 희망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 인물이다.

극 내내 객석과 무대를 오가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즐기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무대 중앙의 악단석에 붙박이처럼 존재하는 악단장이자 삶에 대한 회의감에 침잠하는 무기력한 귀족이다.

그레이트 코멧 하도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

 

20년 전 데뷔작인 ‘미녀와 야수’의 팀장이었던 지금의 쇼노트 대표, 부대표와의 인연으로 “운명처럼 작품에 놓이게 된” 하도권의 복병은 아코디언이었다. 그는 극 등장부터 마지막까지 연주하는 아코디언에 대해 “피아노를 좀 칠 수 있으면 연주에 별 문제가 없겠다 저도 생각했는데 아예 별개의 악기”라고 토로했다.

“악보를 받아봤더니 사기였어요. 너무 어려운 작품이더라고요. 피아노도 너무 어렵고 아코디언은 더 어려웠어요. 피아노처럼 생겼지만 아코디언은 풍금처럼 바람이 들어가야 소리가 나요. 왼손으로는 코드랑 베이스를 쳐줘야하고 오른손으론 건반을 치는데 거리감, 감각으로 연주해야 하죠. 시선이 가는 순간 이미 틀린 거예요. 제가 그동안 했던 모든 뮤지컬의 연습 과정, 노력과 땀을 다 합친 것보다 ‘그레이트 코멧’이 요구하는 땀과 노력은 더 컸어요.”


◇아코디언과의 고군분투 “저를 피에르화시켰죠”

하도권 배우 프로필_제공 앤드마크 (1)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
“피아노 4마디를 외워서 치게끔 손으로 익히는 데 8시간이 지나도 안 되더라고요. 틀림없이 열심히 하는데 안되니까 미칠 노릇이었죠. 그 시간이 되게 고통스러웠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연습을 하면서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저를 피에르화시켜줬던 것 같아요. 혼자서 감당해야하는 그 외로움과 쓸쓸함, 두려움들이 피에르에 묻어나게끔 되더라고요.”

집 앞에 연습실을 대여해 “잠을 줄여가며 거의 밤새도록 연습했던” 그는 “보통 2시간을 연습하면 성취할 수 있는 성과물이 있는데 아코디언은 그게 안됐다”고 털어놓았다.

“피에르라는 역의 특성이 아무리 익숙해도 극장에 가는 순간부터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실수가 나올 수 있거든요. 온 세포를 다 깨우고 임하다 보니 뭘 다른 걸 하거나 애드리브 등은 꿈도 못꾸죠.”

그렇게 어렵게 연주할 수 있게 된 아코디언이지만 무대 위의 그는 여전히 누구든 마지막까지 건드려서는 안되는(?) 피에르다. 그는 “모든 출연진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관객들과 소통할 때도 피에르는 무대에서 어떤 누구와도 눈 마주치는 일 없이 존재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있다”며 “마지막 커튼콜에서까지 퇴장음악을 솔로로 연주해야하다보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전했다.

“피에르의 넘버가 많지는 않지만 정말 섬세해야하고 연기적으로도 그래요. 기량이나 테크닉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넘버들이 아니거든요. 섬세하게 켜켜히 쌓아가지 않으면 그 넘버가 표현이 안돼요. 특히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은 잔잔한 호수에 돌 하나를 탁 던지고 그 울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 전에 뭔가가 놓이면 그 흐름이 깨지거든요. 조심스럽게 밟아가야 하는 넘버들이라서 성악적인 테크닉이나 기량 보다는 연기적 집중력이 더 필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아서!

그레이트 코멧 하도권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피에르 역의 하도권(사진제공=쇼노트)

 

“마지막 넘버 ‘The Great Comet of 1812’에서는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저 혜성들이 나는 두렵지 않다’고도 하죠. 그 혜성에 대한 의미는 각자의 몫인 것 같아요.”

그 혜성이 “누군가에게는 내게 닥친 고난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와 있는 행복일 수도 있다. 그게 때로는 두려울 수도, 버거울 수도, 환희로 가득 찰 수도 있다” 전한 하도권은 “하지만 피에르는 새로운 삶을 향해서 가겠다고 말한다”고 털어놓았다.
 

하도권 배우 프로필_제공 앤드마크 (1)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

“힘들어 주저앉거나 망가지고 조각 나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었어요. 절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조각나 있는 상태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슬퍼하는 상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야 회복할 수 있다고. 그래야 새로운 삶을 맞이할 수 있다고요.”

 

그렇게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에르를 연기하는 하도권의 ‘그레이트 코멧’은 “동료 배우들”이다.

“연습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지막 넘버를 할 때 무대를 한 바퀴 돌면서 나오거든요. 그때 동료들이 아카펠라로 합창을 해줘요. 그때 저를 바라보면서 노래해주는 그들이 저한테는 그레이트 코멧이에요. 그 사람들한테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받고 기쁘거든요.”

이어 피에르로서의 크레이트 코멧에 대해서는 “여전히 찾아가는 중”이라며 “단편적으로 보면 나타샤가 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고 부연했다.

“피에르가 나타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하게 연인으로서만은 아니거든요. 어떨 때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도,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서 주고 싶은 조언들도,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리곤 “원작에서는 피에르랑 나타샤가 결혼하지만 저희 작품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그럼에도 나타샤를 이성적인 감정으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피에르가 1막부터 2막 엔딩까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그레이트 코멧이 아닐까 생각해요. 금방 사라지는, 굉장히 찰나인 그 순간이 사람을 변화시키잖아요. 그런 터닝 포인트, 저마다의 그레이트 코멧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전혀 다른 나타샤와 아나톨들

나타샤 아나톨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출연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나타샤 역의 박수빈·유연정·이지수, 아나톨 셔누·정택운·고은성

 

“배우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저는 기술적인 연기를 하지 않아요. 할 줄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으니까요. 음정, 박자, 가사 등 약속은 정해져 있지만 저마다가 던져주는 에너지가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매번 기대가 돼요. 오늘은 저 친구가 어떤 호흡을 나에게 던져줄까를 열어놓고 기다렸다가 그에 맞춰 나가요. 살아 있는 것처럼 매 공연이 다르죠.”

그게 “무대가 주는 장점이자 재미”라는 그는 “(박)수빈은 굉장히 섬세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나타샤”라고 전했다. 

 

하도권 배우 프로필_제공 앤드마크 (1)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
“이지수 나타샤는 굉장히 강하게 표현할 때가 있어요. 그 폭이 굉장히 크죠. 연기의 그 다이내믹이 너무 재밌어요. (유)연정이 나타샤는 굉장히 딥하게 들어갔다가 또 굉장히 밝게 빠져나와요. 그런 타이밍을 맞추는 재미가 있죠.”

아나톨 중 고은성에 대해서는 “정말 베테랑”이라며 “너무나 안정감이 있는 아나톨이다. 초연을 했던 데서 오는 바이브, 극 전체를 완전히 아우르는 포스가 있다”고 밝혔다.

“셔누는 순수함이 있어요. 아나톨의 그 양아치스러움 안에 갖고 있는 순수함이 있어요.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양아치이고 그 날티를 퓨어하게 표현하니 굉장히 새롭죠. 레오(정택운)는 굉장히 가볍다가 또 갑자기 훅 무거워지는 매력이 있어요.”

하도권은 “저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기술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저와 만나는 부분이 없는 배역은 제가 움직이질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입도 뻥끗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제 안에 있는 경험, 정서와 만나는 작업들을 주로 해오고 있는데 언젠가는 소진이 되겠죠. 하지만 늘 새로운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이 이번엔 어떤 연기, 배역을 할까 기대감을 주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는 “지금까지는 배우가 전부인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피에르를 만나면서 배우가 전부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

“제 삶의 한 부분인 거죠. 그래서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하도권으로서의 삶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누군가한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배우 20년 “지금까지처럼 놓여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

하도권 배우 프로필_제공 앤드마크 (1)
하도권(사진제공=앤드마크)

“노래 가사 같아요. 연습 내내 배우생활을 하면서 쉼 없이 달려왔는데 진짜 좋은 배우로 살았나, 충분히 사랑했나 질문했죠. 명쾌하게 답을 못 줬어요. 자신이 없더라고요.”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남의 나라 말로 노래하며 답답함을 느껴” 뮤지컬 ‘미녀와 야수’ 앙상블로 무대에 올랐던 하도권은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그렇게 뮤지컬 앙상블로 연기를 시작해 ‘햄릿’ ‘아가씨와 건달들’ ‘엘리자벳’ ‘레미제라블’ 등을 비롯해 일본의 유명 극단 ‘사계’ 단원으로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킹’ 등에 출연했던 그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석준, ‘펜트하우스’ 시리즈의 마두기, ‘스토브리그’ 강두기 등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20년차 배우다.

그 20년을 피에르의 “돌아본다”는 가사처럼 스스로를 돌아봤다는 하도권은 “저는 부족함도, 실수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어떤 한 사람에게 살아갈 용기를 줄 수 있게 된 피에르를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었죠. 저도 연기를 통해 혹은 배우가 아닌 삶을 통해 누군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앞날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나간 날을 돌아보면 사실 자신 없어요. 하지만 앞날에서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연습을 하면서, 무대에서도 여전히 되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저를 피에르화시킨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고 배역이죠.”

뮤지컬 무대를 떠나기 직전이던 2014년 마지막 오디션 작품이자 역할이었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를 여전히 꿈꾸고 있는 그는 지난해 여름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섹시동안클럽’(이하 섹동클, 최민철·최수형·문종원·양준모·조순창·김대종·하도권)에 ‘인턴사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너무 많이 사랑해주셔서 올 10월 충무아트센터에서 4일간 ‘섹통클’ 공연을 합니다. 매 회차 다른 콘셉트죠. 색동클도 최선을 다해 재미있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 주세요.”

무대를 “고향 같은 곳”, 매체는 “저를 세상에 알려준 저의 본업”이라고 표현한 하도권은 “그렇지만 병행한다는 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저는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놓여지는 사람이니까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놓여진 그 곳에서 또 최선을 다할 겁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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