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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규제의 극치… 결과는 희극 또는 비극

입력 2017-09-2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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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7년여 전인 2001년 6월 30일의 일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형마트나 백화점의 셔틀버스가 다니지 못하게 됐다. 이에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백화점 셔틀버스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이 중고 버스들은 지금도 몽골이나 베트남 도로를 달리며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법 개정은 국회의원들이 앞장섰다. 그 배후에 이해당사자들의 재촉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유통 대기업의 셔틀버스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택시, 노선버스 사업자와 영세 상인들이다. 셔틀버스를 돌려 동네 손님들을 싹쓸이 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막자는 취지다. 그로부터 한달 뒤 기자는 백화점과 할인점 매출에 영향이 있는지 알아봤다. 그해 7월 한달동안 대형 소매점들의 매출은 오히려 늘어났다. 업태별 대표주자인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백화점의 매출은 7월 한달간 전년 같은기간 대비 10∽20%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매출을 밀어올린 1등 공신은 바로 객단가였다. 객단가란 고객 1인당 구매액을 뜻한다. 객단가가 왜 늘어난 것일까. 자가용이 늘어난 때문이다. 자가용이 늘어나면 쇼핑객의 구매용량은 두 손에서 자동차 트렁크 크기로 변한다. 한꺼번에 많이 산다는 뜻이다. 셔틀버스 운행이 금지되면서 대형 점포에는 자가용, 객단가, 매출 세가지가 느는 대신 버스운영비가 절감되는 ‘3증1감’ 현상이 생겼다. 영세한 사업자들의 영업을 돕기위해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서 대형 점포에 규제를 가한 게 오히려 유통 대기업들을 도와주는 결과를 낳았다. 희극의 주인공은 역시 정치권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치권과 정부가 유통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 정치권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겨냥한 가맹사업법 개정안 30여개를 쏟아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가맹본부 50군데로부터 원가공개 자료제출을 강제한데 이어 고용노동부는 지난 21일 파리바게뜨 가맹점에서 일하는 5378명의 제빵기사들을 본사가 직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행정 규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고용노동부의 명령대로 제빵기사들을 본사가 직고용한다고 해서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파견이 허용된 32개 업종에 제과제빵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사 직원수보다 더 많은 5378명을 일시에 채용하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이들에 대한 인건비가 연간 600억원 정도 들어간다는 게 본사의 계산이다. 이는 지난해 파리바게뜨의 연간 영업이익(660억원)에 버금가는 액수다. 기업을 하지말라는 것과 다름없는 조치다.

제과제빵 프랜차이즈 브랜드 180여개의 경우도 인력계약구도가 파리바게뜨와 별반 다르지않다. CJ푸드빌이 운영하는 뚜레쥬르 전직 임원은 “가맹점에서 일하는 제빵기사들을 모두 본사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가정아래 인건비와 4대 보험, 퇴직적립금, 복리후생비 등을 계산해보니 현행 방식보다 본사 부담이 너무 커 포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파리바게뜨는 행정소송을 제기, 정부와 법적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해외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K-프랜차이즈 가치를 높이고 있는 파리바게뜨도 정작 국내에선 박수를 받기는커녕 온갖 규제에 발목을 잡혀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가맹본부-가맹점-제빵기사-인력도급업체 등 당사자 모두에게 상처를 줄 지도 모를 규제의 칼날이 어지럽게 춤을 추는 형국이다. 한국만의 비극이다.  

 

강창동 유통전문 大기자·경제학박사 cdkang198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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