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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시작은 ‘아시아의 별’ 보아에서 출발했다

입력 2020-08-2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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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이미지
가수 보아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K팝이란 말조차 없던 시기였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오리콘 차트에서 처음 1위했을 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셨어요.”(2018년 정규 9집 ‘우먼’ 쇼케이스에서)

‘아시아의 별’, 가수 보아(본명 권보아·34)는 1세대 한류 개척 가수로 꼽힌다. 보아 이전에도 H.O.T나 신화처럼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가수들이 있었지만 한국이 아닌 해외에 직접 진출해 시장을 일군 가수는 보아가 최초다.

1998년 초등학교 6학년 때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에게 발탁된 보아는 만 14세이던 2000년 8월25일 데뷔 앨범 ‘아이디 ; 피스 비(ID; Peace B)’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0대 소녀의 가수 데뷔가 드물었던 2000년대 초였다.

보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데뷔 이듬해인 2001년 본격적으로 일본에 진출해 2002년 일본에서 발매한 현지 첫 정규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일간, 주간 앨범차트 1위를 차지했다. 이 앨범은 10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속사 SM의 철저한 현지화전략과 더불어 언어, 노래, 퍼포먼스 등을 갖춘 보아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보아의 노력은 기록이 말해준다. 일본에서 발표한 6장의 정규앨범과 베스트 앨범 등 총 7장의 앨범이 오리콘 주간차트 1위에 랭크됐다. 일본 연말 최대 음악 축제인 NHK ‘홍백가합전’에 2002년부터 2007년까지 6년 연속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시티팝’ 신성으로 꼽히는 일본인 가수 유키카는 “어린 시절 보아를 보며 케이팝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또다른 유의미한 기록을 남긴다. 3월 발표한 미국 대뷔 앨범 ‘보아’(BoA)로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에 127위로 진입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슈퍼엠 등 내로라하는 케이팝 후배들의 기록은 보아의 발자취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는 보아의 미국 진출 전 기자회견에서 “보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SM도 없었다”고 회사가 번창한 공을 돌리기도 했다.

보아는 2018년 정규 9집 앨범 ‘우먼’ 쇼케이스 “케이팝 가수의 해외진출과 관련된 소식에서 내 이름이 먼저 언급되면 감사하고 뿌듯하다. 요즘에는 오리콘 차트 1위나 해외진출 성공사례가 많다보니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여 년을 꾸준히 달려온 보아는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한층 무르익은 모습을 보였다. 2012년 발매한 7집 수록곡 ‘온리원’을 시작으로 8집 ‘‘키스 마이 립스’(2015), 9집 ‘우먼’(2018)까지 작사, 작곡, 프로듀싱에 참여하며 음악적인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우먼’ 쇼케이스 당시 “10대의 보아가 소녀였고 20대의 보아가 당당했다면 30대 보아는 자유로움”이라며 “보아라는 틀에 나를 가두기보다 하고 싶은 음악을 보아답게 소화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연예인 보아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어릴 때는 욕을 많이 먹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성인이 된 후에는 나를 보여주는 것에 두려움과 불편함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SBS TV ’K팝 스타‘ 심사위원, ’보이스 코리아 2020‘ 등을 통해 후배 가수들의 멘토로 활동하는 그는 “10~20대 시절에는 견디는 게 힘들었지만 차근차근 견디니 내공이 쌓이고 성숙해졌다. 연예계는 항상 힘들지만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팬들이 주는 사랑으로 치유받는다”며 선배 가수로서 조언했다.

20살을 맞은 보아는 “이제 막 가수로서 성인이 된 느낌”이라며 SNS에 데뷔 20주년 소회를 전했지만 그의 20년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춤과 노래가 좋았던 10대 소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나갔다. 기획상품이 아닌 아티스트로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이는 케이팝 신의 수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엑소 백현, 볼빨간 사춘기, 레드벨벳 등 가요계 후배들과 보아의 오랜 팬이었던 팝스타 갈란트 등은 보아의 데뷔 20주년 기념 프로젝트 ‘아워 비러브드 보아(Our Beloved BoA)’를 통해 보아에 대한 리스펙트를 표현하기도 했다.

‘아시아의 별’이라는 수식어는 보아를 상징하는 단어다. 실상 이 수식어는 2002년 일본진출 당시 한 신문기자가 썼던 단어다. 보아 역시 ‘아시아의 별’에 대한 애착이 깊다. 

 

“아시아의 아줌마, 중견가수라는 표현은 싫어요. ‘아시아의 별’ 보아로 남고 싶어요.”(2018년 ‘키워드#보아’ 제작발표회에서)

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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