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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경제 신간(新刊) 베껴읽기] <셀트리오니즘> 전예진

'바이오시밀러 시대'를 연 서정진과 셀트리온의 무모한 도전기

입력 2020-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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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경제지 기자인 저자가 바이오시밀러의 선두기업인 셀트리온과 그 창업자 서정진 회장을 세밀하게 조망한 책이다. 온갖 어려움과 박해와 오해, 멸시 속에서 셀트리온이 맨 땅에 헤딩하며 만든 성과는 예사롭지 않다. 셀트리온이 연 길을 삼성이 이어받아 이제 한국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세계 1등 국가로 도약했다. 불과 10년만이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시밀러 회사 셀트리온, 세계 최다 바이오시밀러 보유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한민국 산업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그 역사를 만든 서정진 회장의 굴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승부사 기질과 인내심, 그리고 죽기 살기로 서정진을 믿고 따랐던 셀트리온 직원들의 피와 땀이 오롯이 이 책에 담겨있다.  

 

 

 

* ‘코스트 리더십’ 선두주자를 꿈꾸는 셀트리온 - 2020년 1월 15일 서정진 회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 마지막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쟁사보다 값싼 약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품) 개발을 시작한 것도 약값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말했다. ‘코스트 리더십’ 부문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서 회장은 인류를 질병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포부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었다고 말한다, 단지 환자들이 바라는 것이 터무니없는 고가의 신약이 아니라 더 나은 값싼 치료제라는 것을 중요시했다. 약값 때문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자가 전 세계에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 서 회장의 꿈이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 - 셀트리온은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을 일으킨 주역이다. 덕분에 K-바이오라는 말이 생겼다. 가격을 20~30% 낮춘 바이오시밀러 하나로 세계시장을 평정했다. 최초의 바이오시밀러인 램시마(자가면역질환 치료제)와 허쥬마(유방암 치료제), 트룩시마(혈액암 치료제)는 전 세계 50만 명의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다. 램시마는 유럽에서 오리지널 제품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다. 임상시험에서 불필요한 단계를 없애 시간과 비용을 단축하는 등 철저한 비용 절감과 함께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낮춤으로써 이익을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내에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있다. 그 대신 깜짝 놀랄 정도로 임직원들에게 보상하는 문화가 있다. 현재는 바이오시밀러보다 개발 난도가 높은 바이오베터(개량 신약) 항체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서정진은 2015년 3월 두 명의 창업 동지에게 대표자리를 넘겨주고 셀트리온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셀트리온헬스케어 유럽 담당 BD(사업개발)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얻었다.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를 해외에 판매하는 역할이다.

 

* 서정진의 스카우트 인생 - 서 회장은 셀트리온 창업 전에 삼성전기, 한국생산성본부, 대우자동차 등 3곳의 회사를 다녔다. 두 차례 이직은 모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였다. 삼성전기에서 그를 눈 여겨 본 손병두 이사가 1985년 생산성본부로 옮기면서 함께 가자고 제안해 옮겼고, 이곳에서 대우그룹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하다 그의 탁월한 실력을 알아본 김우중 회장이 1991년 대우차 기획재무부문 고문으로 전격 영입했다. 대우그룹이 분식회계 사태로 공중분해된 후 당시 대우차 기획조정실에서 함께 일했던 기우성 현 셀트리온 대표이사 부회장, 유헌영 셀트리온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 문광영 셀트리온스킨큐어 사장, 이근경 셀트리온헬스케어 고문,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대표이사 부회장과 의기투합했다. 대우차 기조실 5인방이 ‘넥솔’을 거쳐 셀트리온 창업의 공신들이 되었다. 

 

* 혼자 똑똑하기 보다는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우선 - 서정진은 ‘혼자 사는 천재’보다 ‘더불어 사는 바보’가 되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일부러 아이들을 해외유학 보내지 않았다. 외국물을 먹으면 바람만 들어서 안된다는 고집이었다. 동료 직원들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가르쳤다. 재계 후계자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게 했고 수입차도 타지 못하게 했다. 그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을 인재로 여겼다. 원칙 준수, 창의성, 도전 정신, 세계제일주의 등 4가지를 셀트리온의 인재상으로 제시하면서도 ‘원칙 준수’를 다른 세 가지 덕목을 아우르는 최고의 가치로 평가한다. 

 

* 회사와 한 몸 같은 주주들 - JP모건이 셀트리온의 목표가를 하향한 리포트를 냈다. 그러자 1만 5000명의 주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셀트리온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기사에는 항의 댓글로 도배하는 것은 물론 항의 메일과 항의 전화도 불사한다. 셀트리온이 개발 중인 독감 치료제의 임상시험을 돕겠다며 불법으로 환자를 모집한 적도 있다. 스스로 임상시험의 대상자가 되겠다며 나선 주주들도 줄을 섰다고 한다. 그래서 ‘셀트리온은 열혈 주주들의 지지와 성원으로 성장한 회사’라는 얘기를 듣는다. 

 

* “우리 경쟁자는 화이자” - 2019년 5월에 서정진은 ‘셀트리온그룹 비전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헬스케어 사업에 4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 핵심이었다. 2018년에 1조 매출을 달성한 회사가 무슨 수로 40조원을 조달할 것인가 의문이 제기됐다. 그는 40조원 가운데 10조원을 글로벌 투자기관에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말부터 1조원 이상 매출이 가능한 20개 제품을 출시하고 2030년부터는 연 매출 30조원에 영업이익 10조원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가 1500조원 규모이고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가 공략하는 항체의약품 시장이 250조원인데, 이 가운데 10%만 차지해도 25조원이라는 계산이다. 서 회장은 이날 경쟁 상대로 글로벌 1위 제약사 화이자를 처음 언급했다. 화이자의 2018년 매출이 55조원, 이익이 16조원이라며 “2030년이면 이익 면에서 셀트리온이 화이자에 근접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를 위해 화이자가 판매를 맡았음에도 지지부진한 미국 판매시장에서 직판 체제를 갖추기 위해 서 회장이 직접 뛰고 있다. 직판 체제가 갖춰지면 국산 제약사 제품의 수출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수수료율을 30% 이상 낮춰 글로벌 진출을 돕겠다는 것이다.

 

* 국내 최고의 연구개발 투자로 승부수 - 셀트리온은 매년 영업이익의 40%를 연구개발에 투입해 왔다. 2019년에는 3000억원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비율은 2019년에 26.9%로 국내 최고였다, 화이자나 노바티스 로슈 등이 20% 수준이다. 서정진은 이들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 보다 많은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로 지금의 셀트리온이 만들어졌다며 앞으로도 투자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다. 바이오의약품 사업에 25조원, 합성의약품 사업에 5조원, 원격의료와 빅데티어 구축 등 U헬스케어 사업에 1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인촌 송도에 20만 리터 규모의 3공장을 짓고 장기적으로 해외공장도 지어 국내외에 연간 100만 리터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기지를 구축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이다.

 

* 의약품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를 꿈꾸다 - 셀트리온은 2020년 새해에 비밀 병기를 선보였다. 정맥주사제를 자가 주사제로 바꾼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SC 였다, 바이오시밀러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바이오베터, 즉 부작용을 줄이거나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리거나 제형을 변경한 개량 신약이다. 서 회장이 의약품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자신하는 품목이다. 램시마의 오리지널 ‘레미케아드’를 만든 존슨앤존슨도 아직 이 제형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원조회사도 못 만드는 것을 셀트리온이 만든 것이다. 서 회장은 램시마SC로 연 매출 10조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 직원에게 보다 많은 보상을 - 셀트리온은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후한 인센티브를 주기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열심히 일해 회사 가치가 상승했으니 보상은 당연하다는 게 서 회장 생각이다. 셀트리온이 2015년부터 5년 동안 직원들에게 부여한 스톡옵션 물량은 약 200만주다. 전체 유통주식 1억2500만 주의 1.6% 수준이다. 2017년부터는 매년 약 50만주를 부여하고 있다. 셀트리온에서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서 회장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 사람이 10명도 넘는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스톡옵션을 받을 수 있는 팀장이 되려면 근무 경력이 14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스톡옵션을 받는 날로부터 3년 후 매년 20% 씩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모두 행사하려면 5년이 걸리므로 총 8년 동안 직원을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이런  일확천금을 얻고도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출근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여기보다 더 좋은 회사를 못 찾아서” 혹은 “회사가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아서” 란다.

 

* “혁신기술을 이길 방법은 스피드 뿐” -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들었지만 서정진도 한국에서 바이오기업이 스스로 힘으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혁신 기술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뛰어넘어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스피드’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경쟁사보다 좋고 싼 제품을 더 빨리 내놓아야 시장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셀트리온은 아시아 최초이자 최대의 동물세포 배양 공장을 가진 덕분에 제품 개발과 생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의사결정 속도와 일 처리 속도도 해외 의료진과 파트너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일본이 지난 해 8월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을 때 셀트리온 구매 담당자는 이미 서 회장의 지시로 일본으로 날아가 바이러스 필터 재고 물량을 싹쓸이해 문제를 바로 해결했다. 서 회장은 이메일도 카카오톡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대신 일이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보고받고 즉시 지시한다. 

 

* 제품도 없는 데 무턱대고 공장부터 짓다 - 서정진은 신약 개발에 성공할 확률이 0.02%에 불과하고 최소 2조원에 기간도 10~15년이나 걸린다는 사실을 안다. 결국 제조업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을 제약업계에 도입하는 방안을 궁리하게 된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이런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을 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라고 불렀다. 시장조사 결과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위한 대량배양시설을 갖춘 나라는 미국 독일 스위스 스웨덴 정도였다. 그리고는 미국의 메리건 교수에게서 소개받은 백신전문개발회사 ‘벡스젠’이 구상하던 에이즈 백신 공장의 청사진을 한국에서 펼치는 꿈을 꾸게 된다. 당시 개펄이던 인천 송도가 눈에 들어왔고 무작정 “송도에 해외 바이오 기업을 데려올테니 공장 지을 땅을 마련해 달라”고 최기선 인천시장을 물고 늘어졌다. 마침 해외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던 인천시는 개펄을 매워 벡스젠에 5만평의 땅을 무상 임대해 주겠다는 파격 제안을 한다. 이후 서 회장은 일면식도 없던 한국담배인삼공사 곽주영 사장을 찾아가 2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역사적인 일보를 내딛게 된다. 당시 별도의 송도 공장 부지를 2만 8000여평 매입한 셀트리온은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값 덕분에 자산가치까지 한껏 올릴 수 있었다. 

 

* 청천벽력 같은 벡스젠의 실패 “이젠 자립 밖에” - 셀트리온 출범 후 꼭 1년이 되던 2003년 2월 25일에 백스젠의 에이즈 백신 ‘에이즈백스’의 3상 임상이 실패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백인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진국에서 비싸게 팔아 아프리카나 동남아 저소득국가에서 싸게 팔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큰 타격을 입은 벡스젠은 결국 2004년 8월 나스닥에서 퇴출되었고 셀트리온 공동대표직도 내려 놓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셀트리온은 중대한 교훈을 얻었다.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하나에 올인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자립을 위해선 연구개발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 R&D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R&D센터를 조용히 관철시켰고, 훗날 이곳은 바이오시밀리 개발의 중심축이 된다. 내친 김에 4년 뒤인 2007년 바이오 리액터 8개짜리 공장을 더 지어 세계 최대 규모인 15만 리터까지 생산시설을 확대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운다. 벡스젠에게선 동물배양세포 배양과 관련한 임상자료를 넘겨받았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과 신약 개발 노하우를 넝쿨째 얻은 것이다. 이어 2005년 6월 오렌시아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계약을 맺음으로써 본격적인 재기에 나서게 된다.

 

* ‘슈퍼 액티브’ 셀트리온 컬쳐 - 골드만삭스가 전문성과 주도성을 근간으로 ‘프로액티브’ 정신을 강조한다면, 셀트리온 직원들은 ‘슈퍼프로액티브’한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정진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가장 좋은 수면제는 졸릴 때까지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셀트리온에는 이런 워커홀릭이 즐비하다. 김형기 셀트리온헬스케어 부회장은 50대 초반에 치아 전체를 임플란트로 교체할 만큼 이를 악물고 밤낮으로 뛰었다. 셀트리온의 최연소 여성 임원인 박재휘 허가 담당장(이사)은 애를 낳으러 분만실 침대에 누웠다가 벌떡 일어나 업무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그 밖의 직원들도 나이가 어려 경험은 부족하지만 업무 능력만큼은 월드 클래스라고 자부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럽 전역에 비상이 걸렸을 때 회사에서 전원 귀국을 지시했는데도 다들 남겠다고 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한다.

 

* 기술과 평판으로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뚫다 - 전 세계적으로 동물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는 시설이 많지 않았기에 서정진은 이런 공급자 우위시장에서 대량생산 설비를 갖춘 셀트리온이 충분히 겨뤄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대신 위탁생산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지 않고, 고객사와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공동개발 방식을 택했다. 의약품 개발에 성공하면 특허와 판권을 셀트리온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파트너 사 가운데 한 두 곳만 성공해도 전 세계 시장에서 의약품 독점 생산과 판매가 가능해 큰 수익을 벌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패해도 연구개발 경험과 노하우가 남을 곳이라는 두둑한 배짱도 있었다. 다행이 셀트리온은 짧은 기간에 백신과 항암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 다양한 분야의 해외 파트너사를 확보해 최신 바이오 트렌드와 약물 개발 과정을 배울 수 있었다. 공동개발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큰 재미를 보진 못했으나 셀트리온은 갈 길이 먼 신약개발 대신 바이오시밀러에 올 인 해야겠다 마음을 굳히게 된다. 2008년 1월 바이오시밀러 도전을 본격 선언하기 이전인 2006년부터 차근차근 준비 했다. 자칫 글로벌 제약사들이 자신의 제품을 복제하려는 회사에 생산을 맡길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 빅파마의 견제와 공격을 이겨내다 -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선언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빅파마들은 일찌감치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존슨앤존슨이 “항체의약품은 복제약이 나올 수 없다. 특허를 하나도 침해하지 않고는 만들 방법이 없다”는 보고서를 낸 탓이다. 하지만 셀트리온은 언제가 특허가 풀리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선발사들은 후발주자 진입을 원천봉쇄하려 똘똘 뭉쳤다. 규제기관으로 하여금 바이오시밀러에 관한 규정을 만드는 작업을 지연시키는 일까지 자행했다. 안전성과 효능에 문제가 있을 것이란 음해 공작이 기승을 부려 초기 사업 정착에 셀트리온은 고전해야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성공한 블록버스터 항체의약품을 복제한 바이오시밀러에 도전하기로 한 셀트리온의 선택은 옳았다. ‘바이오업계의 삼성전자가 되겠다’는 서 회장의 꿈도 실현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그 삼성이었다.

 

* 삼성의 셀트리온 인수 추진과 적대적 M&A 대비 - 미래 수종사업의 하나로 바이오를 점 찍었던 삼성은 꽤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셀트리온 인수를 추진했었다. 과거 기아차 인수 계획이 사전에 터져 비난받았던 삼성은 2008년 말 조용히 셀트리온 주주들을 움직여 인수합병 의사를 타진한 바 있다. 서정진이 협상을 거절해 합작회사 삼성셀트리온은 탄생하지 못했다. 서정진은 부랴부랴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한 조치에 나선다. 이사 해임할 때 출석 주주 의결권의 통상 90% 이상 찬성을 받도록 한 초다수 의결제가 대표적이다. 대표이사가 임기 전에 물러나야 할 상황에 대비해 저가 스톡옵션을 보장해 주는 황금낙하산 제도도 2010년에 도입했다. 서 회장이 임기 중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실직하면 통상적인 퇴직금 외에 200억원을 더 지급하는 조항도 정관에 추가했다. 결국 삼성은 당시 국내 최초 항체 치료제 개발기업으로 평가받던 이수앱지스와 제넥신, 프로셀제약과 컨소시업을 구성해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 20년 앞으로 내다보고 ‘꼼수’ 비판도 참아 - 셀트리온은 코디너스라는 회사를 통해 은밀하게 중소 제약사인 한서제약의 지분을 150억원에 인수해 셀트리온제약으로 탈바꿈 시킨다. 이어 10위권 정도 되는 중소 제약사 2,3곳을 공개적으로 추가 인수하겠다고 밝힌다. 한미 FTA를 계기로 국내 기존 제약사들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셀트리온이 껍데기뿐인 코디너스를 배후에서 조종해 한서제약까지 품에 안음으로써 코스닥 상장사와 중소 제약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사실을 삐딱하게 보았다. 한 동안 “손 안대고 코 풀기”, “꼼수의 대가”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정진은 20년 앞으로 내다보고 5단계 계획을 짜고 있었다. 1단계는 생산공장 건립, 2단계는 연구개발 기술력 확보, 3단계는 의약품 유통회사 설립, 4단계는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 구축, 5단계는 종합 신약 개발회사였다. 그가 제약사를 인수한 것은 5단계 계획에는 없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보유한 의약품 영업망과 판매 네트워크를 본 것이다. 한서제약은 간질환 치료제 ‘고덱스’라는 캐시카우가 있었기에 금상첨화였다. 이후 그는 리베이트 근절 등을 계기로 여기에 들어갈 돈을 모조리 R&D에 투입했고, 고덱스는 대웅제약 우루사를 제치고 국내 간장약 매출 1위에 오른다.

 

* 든든한 글로벌 투자우군을 얻다 - 2010년 4월에 셀트리온은 테마섹홀딩스로부터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유치했다.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테마섹에서 내부 실사를 하러 왔을 때 그들은 서정진 회장이 신고 있던 12년된 구두를 보고 신뢰를 가졌다고 한다. 테마섹은 5년 이상 주식을 보유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계속 투자를 늘려가며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테마섹은 투자금 대비 10배 이상인 2조 6000억원의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에 집중하면서 CMO 위탁사업에서 점차 손을 뗐다. 자체 개발 제품을 생산하기에도 설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JP모건으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게 된다. 2011년 12월 19일 마지막 영상 담판을 하던 날, 김정일 사망이 발표되는 등 난리 속에서도 셀트리온은 JP모건의 사모펀드 OEP에서 2450억원을 투자받게 된다. OEP도 2020년 완전 결별 때까지 총 3000억원을 투자해 8년 만에 7배 수익을 남기게 된다.

 

* 운명의 2013년 5월 31일 - 이날은 램시마의 유럽 허가를 받기 위해 EMA(유럽약물사용자문위원회)를 상대로 대면 미팅(OE, Oral Explanation)이 있던 날이다. 합격 도장을 찍어주기 전 마지막 면접 통과절차였다. 심사위원은 셀리트온 면접을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Unanomous decision, 100% perfect”. 만장일치 통과였다. 당시는 공매도 세력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서정진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주가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고, 때아닌 먹튀 논란과 함께 셀트리온 매각설 등으로 어수선한 시기였다. 서정진은 “램시마는 우리 직원들이 실패하면 죽을 각오로 만든 약입니다. 한국의 바이오 산업이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예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존슨앤존슨과의 지리한 생존전쟁 - 셀트리온이 램시마로 FDA 허가를 받은 것이 2016년 4월 6일이다. 2014년 8월 허가신청 후 2년이나 걸렸다. 유럽의 EMA 허가 시점부터 따지면 2년 8개월 만이다. 미국 제약사들이 힘을 합쳐 씨 말리기 식으로 무자비하게 견제했던 탓이다. 특허로 1차 방어벽을 쌓았고, 오바마 행정부가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가격경쟁이 가능하도록 허가했던 ‘바이오의약품 가격 및 혁신법(BPCIA)’에 대해선 위헌소송까지 제기했다. 존슨앤존슨이 가장 심했다. 램시마가 자사의 레미케이드 상품명과 로고를 베꼈다며 한국 법인인 한국얀센을 통해 2013년에 상표권 침해소송을 냈다 패소했고, 로고가 비슷하다며 특허청에 이의신청을 냈다가 기각되기도 했다. 캐나다와 남아공 필리핀 인도 등지에서도  계속 소송전을 남발했다.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하려면 180일 전에 오리지널 제조사에 고지해야 한다는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법 때문에 6개월이나 늦게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존슨앤존슨은 2016년 11월에는 보험사들을 대상으로 레미케이드에만 보험을 적용토록 하고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상대도 하지 말라고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리베이트가 오갔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화이자의 검은 속내 - 이번에는 셀트리온을 대신해 미국에서 존슨앤존슨과 싸워주던 화이자가 문제를 일으켰다. 화이자는 2017년 9월 램시마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에 존슨앤존슨을 상대로 반독점법 소송을 걸었다. 보험사에 리베이트를 주고 레미케이드를 우선순위에 두도록 한 계약이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돕는다고 믿었던 화이자가 셀트리온의 램시마 출시 3개월만인 2017년 4월에 FDA에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인 ‘익시피’의 허가를 신청했다. 램시마를 미국시장에서 위탁 판매해 주는 기업이 똑같은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FDA는 2017년 12월에 초스피드로 허가를 내준다. 자사 제품이 있는데 셀트리온의 램시마를 화이자가 열심히 팔아줄 리 만무했다. 독을 품은 서정진은 2019년 화이자의 슈퍼 항생제 ‘자이복스’의 복제약 ‘CT-G1’의 허가를 받고 미국 시장에 출시했다. 글로벌 케미칼 프로젝트의 첫 번째 타깃으로 화이자를 겨냥한 것이다. “화이자를 뛰어넘겠다”는 발언이 빈 말이 아니었다.

 

* 서정진의 성공론 - 서정진은 “관 뚜껑이 닫히기 전까지 실패란 없다”고 늘 얘기한다. “단지 아직 성공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불가능하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한다. 남들이 규정한 성공 관념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2019년 1월 그가 은퇴 계획을 전격 발표했을 때 스스로 정한 시한은 2020년 12월 31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초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셀트리온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기업이 되었다. 셀트리온이 코로나 항체 치료제 개발을 시작한 후 그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잔 적이 없다고 한다. 저자는 서정진이 아마도 당분간 더 셀트리온을 위해 일을 할 것 같다고 전망한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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