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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승의 무비가즘] '브이아이피' 김광일에게 보내는 연서?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말기를…"

입력 2017-09-0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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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디에서나 VIP였던 김광일에게. 첫 등장이 어찌나 매혹적인지. 스산한 북한의 들판. 먼지마저 건조한 그곳에서 원서를 읽고 이어폰으로 클래식을 듣는 모습은 한마디로 ‘만찢남’이었어. 불량스럽고 느물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네 외모는 누군가의 죄라도 덮어버릴 만큼 선량한 모습 그 자체였달까. 북한 최상류층조차 동경하는 0.2%의 로열 패밀리인 너를 표현하는 문장은 ‘그 누군가에게도 머리를 굽혀 본적 없는’이었지. 


영화 ‘브이아이피’의 내용은 한국 영화사상 전례없는 소재야. 대한민국 경찰, 미국CIA, 국정원부터 북한에서도 최고 혈통만이 간다는 보안성 요원까지 각자가 속한 사회에서 남다른 위치에 선 네 남자들의 직업군만 봐도 화려해. 한민족이면서도 같은 편이 아니고 같은 조직이면서도 서로를 밟아야 하고 동맹관계이면서도 서로 쓰레기(?)를 미루기 바쁜 관계가 뒤엉켜 있지. 

 

영화 'VIP'이종석
한국 영화사상 가장 악랄하고 사이코패스적인 기획기순자 김광일 역할의 이종석.(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 교집합인 너의 존재는 아마도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가진 비극에서 시작된 거겠지. 너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잔인한 DNA는 이미 전작에서 증명된 바야.

 

각본을 맡은 ‘악마를 보았다’의 인육을 먹는 장면이나 ‘신세계’에서 보여준 핏빛 작렬하는 엘리베이터 신, ‘부당거래’의 과도한 폭행신들을 보노라면 ‘브이아이피’ 속 고문과 살해는 ‘범죄는 진화한다’는 이론을 여실히 증명하는 듯 보여.

영화에서는 연쇄살인범으로 나오지만 정확히 너의 취향은 명확하지. 성욕보다는 잔혹함. 사디즘적인 가학은 여성을 넘어 너가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인간에게 뻗어있어. 

 

영화 초반 네가 너의 집안에서 개로 키워진 똘마니들과 함께 전 가족을 몰살하고 그걸 촬영해 가장 마지막에 남은 소녀에게 보여주며 하는 행위는 아마도 최근 개봉 한국영화 중 가장 가혹한 장면이지 싶어.

그 장면을 열연한 배우의 트라우마가 걱정될 정도로 세세한 묘사는 아마도 네가 가진 추악한 욕망과 삐뚤어진 성향을 대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차마 볼 수 없더라. 사운드마저 기억에 남을까 귀를 막아버릴 정도였어. 워낙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을 못 보는 내 성향 탓이기도 하지만 ‘브이아이피’의 범죄는 정말이지 구역질나고 불쾌해.

너란 인간은 아버지에 의해 최고로 군림하게 키워졌고 그 내면에는 제대로 된 모성에 기댄적 없는 불쌍한 어린아이가 있었을거야. 태어나자마자 모두가 고개를 숙이는 상황에서 너에게 결핍의 경험에서 오는 예의나 배려를 운운하는 건 의미가 없겠지. 제대로 된 자아나 인성을 기대하지 않더라도 너는 영화적으로 가장 악랄하고 사이코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웠어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를 연기한 배우 이종석의 존재감은 단연코 빛나. 도도하지만 유아적인 미소와 쾌락을 탐닉하는 눈빛, 훤칠한 키에서 오는 우월함, 유창한 외국어 발음까지. 테스토스테론에 반하는 그의 외모는 김광일을 완성하는 신의 한수였어. 아무도 대체할 배우가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어서 너의 그 살기와 사이코패스적인 광기를 캐릭터로서 오롯이 인정할 수 있겠더라.

‘기획귀순자’인 너의 존재가 좀 특별하다 싶지만 분명 어딘가에 있을 법 해서 영화 ‘브이아이피’의 탄생이 반갑지만 간절히 빌었어. 현실에선 만나지 않기를, 더불어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존재하지는 말기를….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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