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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국립발레단 ‘마타하리’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 “자유와 사랑을 선택한, 결국 사람이야기”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장이 주인공으로 분한 1993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마타하리'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0번에 실린 가장 드라마틱한 세계사를 관통한 여자의 이야기
발레리나를 꿈꿨던 마타하리를 둘러싼 마슬로프, 매클라우드, 라두, 칼레, 아스트뤽, 루소 등과 발레 뤼스의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등의 이야기

입력 2018-10-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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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
국립발레단 ‘마타하리’의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사진제공=국립발레단)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국립발레단의 제176회 정기공연 ‘마타하리’(10월 31~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Renato Zanella)는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사람’을 강조했다.

“결과가 아니라 자유를, 사랑을 선택한 사람으로서 마타하리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타하리는 역사의 희생양이거든요. 실화의 스토리텔링이 저에게 의미 깊고 중요한 이유죠. 특히 여자들을 위한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1993년 강수진 현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이자 단장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던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마타하리’의 안무가이기도 하다. 당시 무용수였던 레나토 자넬라의 첫 안무작이기도 했던 ‘마타하리’가 25년여 만에 한국에서 재탄생된다.

그는 “85%가 바뀐, 당시와는 전혀 다른 신작”이라며 “지난해는 마타하리가 처형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해 새로운 문서, 증거 등이 공개되면서 마타하리의 삶과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낼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마타하리
발레리나를 꿈꾸던 무용수의 삶을 재조명하는 ‘마타하리’의 한 장면. 사진은 18일 공개한 리허설 장면(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에 레나토 자넬라의 2018년 신작 ‘마타하리’는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처형당한 비운의 여성이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무용수로서의 삶과 여정을 따른다.

이를 위해 레나토 자넬라 안무가를 비롯해 알레산드로 카메라(Alessandro Camera) 무대디자이너, 카를라 리코티(Carla Ricotti) 의상 디자이너, 자코포 판타니(Jacopo Pantani) 조명 디자이너, 러시안 음악 전문 지휘자 티베리우 소아레(Tiberiu Soare) 등이 의기투합했다.


◇비극적이던 첫 결혼으로 깨달은 자유, 꿈을 갈구하는 ‘사람’ 마타하리

“나는 태양아래 나비처럼 살고 싶었다.”

레나토 자넬라는 “마타하리의 아름다운 말”이라고 소개하며 “20세기 초반을 산, 굉장히 불공정하게 총살당한 마타하리는 자유를 누렸고 자신과 남자들을 사랑했다. 무용수나 안무가로서 마타하리의 예술적 측면을 보면 천재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발레 작품 속에 나비를 잡았다 날리는 듯한 동작들이 있어요. 마타하리의 진술서를 읽으면서 그녀는 남자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여성해방을 외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혁명 이후의 프랑스는 새롭고 특출난 것을 찾는 사회였고 마타하리는 그런 시대에 의해 스타가 되고 파멸했죠.”

그는 이어 마타하리가 누구보다 자유와 사랑, 꿈을 갈망한 데 대해 “비극적인 첫 결혼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어린 나이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와 했던 첫 결혼으로 마타하리는 재정적 안정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님을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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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마타하리’의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번 ‘마타하리’는 비극적인 삶 때문에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데부터 시작한다. 1막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배운 동양의 춤을 선보이며 최고의 댄서이자 아티스트로 성공하는 마타하리(김지영·박슬기·신승원, 이하 공연일 순)의 삶을, 2막은 스파이가 되는 암흑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처형당하는 장면까지 다루는 2막에서는 발레리나를 꿈꿨던 마타하리와 발레 뤼스 이야기까지 담긴다.

 

“마타하리는 마사 그레함이나 이사도라 덩컨처럼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죠. 그녀의 삶과 평행을 이루는 것이 발레 뤼스의 탄생이에요. 마타하리는 발레리나를 꿈꾸며 발레 뤼스에 합류하고자 했지만 디아길레프(송정빈·이영철·이수희)에게 거절당해 좌절되죠.”

이어 레나토 자넬라는 “마타하리의 삶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며 “유일한 사랑이자 마타하리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그녀를 평범한 여자로 만들어준 러시아 장교 마슬로프(이재우·김기완·박종석)를 비롯해 남편 매클라우드(이영철·송정빈·김희현), 극장장이자 에이전트 아스트뤽(이수희·송정빈), 프랑스 정보국의 라두 대위(박종석·하지석·김기완), 독일 정보국의 칼레(변성완·김희현·정영재), 연인이자 은행가 루소(정영재·박종석·이영철), 마타하리 삶과 평행선을 그린 발레 뤼스의 중요한 인물들인 설립자 디아길레프, 무용수 니진스키(허서명·김명규A·변성완), 카르사비나(박슬기·박예은·정은영) 그리고 마타하리를 잇는 새로운 스타 콜레트(신승원·정은영·한나래)까지 등장한다”고 귀띔했다.


◇감옥 12번방에서 시작해 끝나는 “강렬한 실화, 그럼에도 흩날리는 마타하리의 기억들”
 

마타하리
18일 공개한 ‘마타하리’의 리허설 장면(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 이야기의 시작은 처형 전날밤으로 설정했어요. 감옥의 12번방 문이 닫히는 순간 마타하리는 다음 문이 열리면 처형을 당한다는 걸 직감하죠. 그 암흑 속에서 마타하리가 과거를 회상하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방식이에요. 교향곡에 따라 마타하리의 내면처럼 다섯 개의 문이 있는 방에서 장면이 시작돼요. 프로젝션으로 영상을 활용하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마타하리의 실제 영상을 담기도 하죠.”

그의 설명처럼 영상을 통해 첫 번째 남편과 살았던 자바섬, 에팔탑을 활용한 마타하리의 파리 입성, 기메 박물관에서의 첫 공연, 군대와 지도를 활용한 1차 세계대전, 은행가이자 후원가였던 루소의 침실, 발레 뤼스의 공연 장면 등이 탄생한다.

“이 작품은 동화도, 소설도, 시도 아닌 실화에 기반한 작품이에요. 그 사실을 연출이나 무용수가 춤 추는 과정에서 강조하고 싶었어요. 가벼운 소재감의 천을 원했는데 아무리 상황이나 이야기가 강렬해도 마타하리의 기억이기 때문이죠. 모든 것이 좀 흩날리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거든요.”

그는 “극은 추상적인 엔딩을 맞는다. 프랑스와 독일이 마타하리에게 스파이 누명을 씌우려던 공작들이 직접적이진 않지만 상상 속 재판장면을 통해 암시된다”며 “극 초반 마타하리가 깨달았던 것처럼 감옥 12번방의 닫힌 문이 다시 열리면서 그녀는 총격대를 마주한다”고 설명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10번에 실린 드라마틱한 세계사 “무용수들과 파도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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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마타하리’의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사진제공=국립발레단)

 

“이번 ‘마타하리’에는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교향곡 5번과 10번이 쓰입니다. 이야기와 안무에 맞춰 음악을 고른 게 아니라 음악을 먼저 선택하고 안무와 이야기를 덧입혔죠.”

그렇게 ‘마타하리’는 장면이 아닌 “긴장감 넘치고 콤펙트한” 교향곡의 구조를 따라 펼쳐진다. 그는 “복잡한 음악을 원했다”며 “궁정주의나 암흑의 시기를 거친 마타하리의 삶에 한줄기 빛 같은 음악이었으면 했다. 더불어 마타하리가 성공적인 삶을 누리는 시기에 누군가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탈린, 전쟁의 광기 등을 표현할 군사적인 색채가 강한 음악이 교향곡 5번, 10번이었다”고 선택 이유를 전했다.

“한곡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새로운 모티프와 요소들이 계속 등장하죠. 이야기를 입히기도, 안무가로서는 다루기도 굉장히 어려운 음악이었어요. 감정을 확실히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무용수들이 역할로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관객이 그 상황 자체를 살 수 있도록 안무하는 데 주안점을 뒀죠.”

그는 인물들의 감정 집중하는 안무가 가능했던 데 대해 “국립발레단원들 덕분”이라고 고마음을 전했다. 지난해 12월부터 국립발레단원들을 지켜보며 2월 최종 캐스팅을 완료했고 8월 중순부터 리허설을 진행한 그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감을 받는다. 레벨을 높이려는 제 요구를 항상 맞춰준다. 안무가로서 원하는 것을 무용수들이 다 이해한다는 건 정말 축복 같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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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의 리허설 장면(사진제공=국립발레단)

 

“극적인 감정들이 작품 내에서 유연하게 이어져요. 우리는 1,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어요.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은 연결돼 있고 대한민국 역시 2차 세계대전의 희생양이죠. 우리 모두는 그렇게 연결돼 있어요. ‘마타하리’는 20세기 초에 시작해 50년간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굉장히 감정적이고 감동적이죠.”

이어 레나토 자넬라는 “제 할머니가 마타하리가 파리에 도착할 즈음에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저와 저의 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 세대 뿐 아니라 자녀 세대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칠,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며 “그래서 책임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무용수들이 얼마나 감정선을 잘 전달하는지 몰라요. 파도를 잘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제가 파도를 만들고 무용수들이 그 파도에 올라 서핑을 하는 게 보여요. 머릿결을 넘겨주는 등 작은 하나하나 디테일은 모두 무용수들이 자연스럽게 찾아낸 것들이에요. 제가 모든 안무를 하는 게 아니라 무용수들의 저마다의 색을 입히고 의지를 담는 거죠. 배우들마다 전혀 다른 마타하리, 인물들이 될 겁니다.”


◇강수진 단장과 함께 했던 1993년작과는 전혀 다른 ‘마타하리’ “지금 저의 아이덴티티에 가장 가까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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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마타하리’의 안무가 레나토 자넬라(사진제공=국립발레단)

“지난 버전(1993년)에서 차용한 몇 안되는 장면 중 하나가 마지막에 마타하리가 파멸하는 모습이에요. 마타하리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고 파멸된 인물이죠. 피날레는 그 사실을 담고 있는 굉장히 감정적인 장면이죠.”

이번 ‘마타하리’는 피날레를 비롯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새로 창작된 작품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키르사비나, 디아길레프 등 발레 뤼스 관련 캐릭터들이 새로 구축됐고 마슬로프는 좀더 입체적인 인물로 변화했다.”

이어 그는 “마타하리의 묘사는 좀더 정확해졌다. 마타하리의 첫 스트립 댄스가 추가되고 당시 실제로 입었던 스타킹 재질의 의상, 가슴을 가린 보석 박힌 브라 등 사실을 충실히 재현했다”고 덧붙였다.

“강수진 단장님과 함께 하며 1993년을 추억하는 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에요. 하지만 1993년 버전은 더 이상 제 작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졌어요. 이를 과거로 접어두고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1993년 ‘마타하리’를 안무할 당시 그 유명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무용수 중 한 사람이었다. 무용수인 동시에 이제 막 데뷔한 안무가였던 그는 25년여년 동안 수많은 발레극 안무가이자 오스트리아 빈국립오페라발레단·그리스국립오페라발레단·이탈리아 아레나디베로나발레단·루마니아국립발레단 등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다.

“처음엔 소품같은 발레작품을 만들었지만 25여년 동안 발레 전막안무, 오페라와 연극 연출 등을 하면서 드라마 트루기가 무엇인지 성찰할 기회가 많았어요.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고 싶은지를 알게 됐죠. ‘마타하리’는 어떤 부분에서는 사실적으로, 어떤 부분에서는 보다 추상적이고 날 것의 언어로 표현해요. 지금 저의 아이덴티티에 가장 가깝게 만들어진 작품이죠.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제 작품은 항상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성장해야하니까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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