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위치 : > 비바100 > Leisure(여가) > 영화연극

[Pair Play 인터뷰] 뮤지컬 ‘루드윅’의 정의욱·김현진…드잡이하던 아빠와 아들, 서로가 되다

‘인터뷰’ ‘스모크’ 등의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곡가의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정의욱, 김현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루드윅과 청년으로 호흡, 김주호·이주광, 박준휘·강찬, 김소향·김려원·김지유, 강수영 피아니스트 출연
추천넘버 '외로운 피아노'와 '에그몬트 서곡'으로 이어지는 '운명', 루드윅과 청년의 지휘 콜라보까지

입력 2018-11-28 18:30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인스타그램
  • 밴드
  • 프린트
JungKim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왼쪽)과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전작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랑 ‘루드윅’은 발성이나 창법이 달라서 좀 힘들었어요.”

뮤지컬 ‘루드윅: 더 베토벤’(2018년 1월 27일까지 JTN아트홀 1관, 이하 루드윅)의 루드윅 정의욱 그리고 젊은 루드윅와 조카 카를을 연기하는 청년 역의 김현진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전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아빠 버드와 아들 마이클로 호흡을 맞췄던 정의욱과 김현진은 ‘루드윅’에서 서로를 연기하기에 이르렀다.


◇부자에서 서로가 되다! 2년 이상을 함께
 

[브릿지포토] 정의욱 인터뷰1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팝, 컨트리에 가까운 음악이었다면 ‘루드윅’은 베토벤을 다루다 보니 굉장히 무거워요. 베토벤 음악에 허수현 작곡가가 만든 선율이 얹힌 곡들인데 샤우팅이 많죠. 내용 자체도 베토벤의 삶이 열정으로 넘치다 보니 지르는 곡들이 많아요.”

전작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공연과 ‘루드윅’ 연습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한동안은 목소리가 갈라져 난리도 아니었다”는 정의욱처럼 김현진 역시 소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마이클은 어린 역할인데다 팝적인 넘버여서 제가 가진 소리를 쓰면 됐는데 ‘루드윅’은 낮은 소리, 무게감 있는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어요. 안쓰던 근육을 자꾸 쓰다 보니 부담이 좀 되더라고요.”

게다가 김현진이 연기하는 ‘청년’은 루드윅의 젊은 시절과 베토벤의 조카 카를, 두 사람을 연기해야 한다. 자주 쓰지 않는 창법구사를 비롯해 두 사람을 구분할 소리 표현까지 김현진에게 ‘루드윅’은 소리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던 작품이다.

“두 캐릭터가 정말 달라요. 외모, 의상 등 외적인 것들도 다르지만 소리적으로도 다르게 써야하다보니 고민이 많아졌어요. 정반대 캐릭터지만 둘 다 강해요. 청년 루드윅과 카를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만 나오기 때문에 절규가 많죠.”

뮤지컬 ‘루드윅’은 ‘악성’이자 천재 음악가로서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 루드윅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인터뷰’ ‘스모크’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으로 호흡을 맞춘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곡가·김병진 안무가의 의기투합작이다. 루드윅 역에는 정의욱을 비롯해 김주호·이주광, 청년 역에는 김현진과 박준휘·강찬, 마리 역에는 김소향·김려원·김지유, 피아니스트 역에는 강수영이 출연한다.

김현진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말하는 목소리는 전혀 달리 하지만 노래하는 목소리까지 다르게 내기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뉘앙스를 바꾸거나 호흡을 길게 빼는 등 소리적 습관, 스타일에 변화를 주려고 노력했죠. 예를 들면 청년 루드윅은 끝음을 길게 끌고 어린 카를은 짧게 처리하는 식이에요.”

그렇게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아빠와 아들이었던 정의욱과 김현진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연습부터 ‘루드윅’의 공연이 끝날 때까지 1년 중 3분의 2를 함께 한 것도 모자랐는지 “다음 작품도 함께 합니다. 이번엔 원수”라며 웃는다.


◇고독한 베토벤, 그래서 슬픈 예술가
 

루드윅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사진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겉보기엔 굉장히 고약하고 독선적이고 불친절한 사람이에요. 베토벤은. 그렇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반감을 사죠. 그가 음악들을 내놓을 때야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기 시작해요.”

자신이 연기하는 루드윅에 대해 “고독하고 외롭고 쓸쓸했던 사람”이라고 표현한 정의욱은 “오죽하면 당시 독일에서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괜찮아 베토벤도 있잖아’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불행의 아이콘과도 같았던 그의 고통, 음악에 대한 열정 등으로 늘 외롭고 고독했던 인간적인 면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작품에서는 베토벤이 조카 카를를 후계자로 키우려다 실패해요. 어려서 아버지한테 학대당했던 베토벤이 카를를 키우면서 열정이 지나쳐 아버지와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이야기죠.”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인 자료를 비롯해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 2006) 등을 참고했다는 정의욱은 “많은 설들이 있지만 베토벤의 임종을 지키본 사람이 딱 두 사람이다. 그 중 하나가 동생의 아내이자 카를의 엄마였다”고 전했다.

“카를의 법적 양육권을 두고 엄청 싸웠음에도 그 여자가 임종을 지킨 게 아이러니했어요. 물론 저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죠. 간성혼수로 날마다 복수를 주사기로 빼내야 했는데도 식사 때마다 와인 한병을 마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자료들을 토대로 상상력을 불어넣었죠.”

정의욱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두 인물에게서 느껴진 건 슬픔이었다”며 “알면 알수록 정말 괴로운 인생”이라고 말을 보탰다.

“모든 풍파를 거쳐 형님들(정의욱·김주호·이주광)이 되다 보니 청년 루드윅은 태풍 한가운데 서 있어요.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이 인물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절망 속에서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노래를 써낼 수 있었던 동기는 뭘까에 집중했죠. 청년은 루드윅을 완성시키기 위한 전 단계라고 생각해서 형님들이 연기하는 루드윅을 많이 봤어요. 보면서 어떻게 해야 청년에서 루드윅으로 자연스레, 이질적이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죠.”

이렇게 전한 김현진은 카를에 대해 “루드윅의 잘못된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대상이자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에 있는 16세 청소년”이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누군가 강요하는 것 사이의 감정 차이를 표현하려 애썼다”고 설명했다.


◇뮤즈 아닌 동지이자 깨달음 마리
 

akflakflak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마리들.(사진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마리와 발터는 가상인물인데 그들로 인해 루드윅이 카를을 가르치려는 의지가 생기죠. 발터에게서 자신의 어린시절과 비슷한 재능과 열정을 보지만 돌려보내요. 그러다 카를에 발터를 이입시켜 집착하게 되죠.”

정의욱의 설명처럼 마리는 뮤즈도, 로맨스 상대도 아니다. 김현진의 귀띔처럼 “부정인 에너지에 싸여 있는 베토벤의 내면에 눌린 것들을 긍정적 에너지로 끌어내는” 모티베이터이자 관객들을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인물이다.

“저는 마리를 딱 세번 만나요. 만나면 무언가를 던져주고 가는, 베토벤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열정과 꿈을 가지고 있어서 동질감을 느끼는 존재죠. 베토벤이 귀가 안들리는 장애를 만난 것처럼 당시대의 여자라는 장애물을 넘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상처받고 고통받아요. 그 모습을 통해 베토벤에게 깨달음을 주고 비난을 하기도 해요. 서로 상처를 주고 못잡아 먹어 안달인 사이죠.”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청년 루드윅과 카를 입장에서 마리는 내면의 깨달음”이라며 “당시에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제약이 많았다. 그 한계 속에서 고민하는 마리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서 한계에 다다른 베토벤은 서로의 한계를 지적하고 열변을 토한다”고 말을 보탰다.

“마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마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공연 전체가 다르게 받여들여지기도 하니까요. 키를 쥔 인물이죠.”


◇여전히 싸우지만, 우리 제법 잘 어울려요

[브릿지포토] 김현진 인터뷰8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여전히 싸워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멱살잡이까지는 아니지만 젊은 루드윅이랑도, 카를과도 소리로, 노래로 싸우죠.”

김현진의 말에 정의욱은 김현진과의 호흡에 대해 “전작에서도, ‘루드윅’에서도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어 좋았다”며 “보통 후배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잘 못하고 선배들만 얘기를 하다 보니 시키거나 하달처럼 느껴지는데 현진이는 ‘형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라고 의견을 얘기하곤 한다”고 전했다.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액팅이 나와야 저도 최고의 액팅으로 받을 수 있는데 마냥 제가 원하는 것만 받아주기를 원하면 생기가 사라져버리거든요.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장면들이나 감정들이 쉽게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의욱의 전언에 김현진은 “제가 형한테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 감사하다”라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처음 뵀을 때는 굉장히 무서울 줄 알았는데 편한 형”이라고 털어놓았다.

“특히 ‘루드윅’을 하면서 더 많이 느껴요.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그럼 이렇게 해줄까?’라고 해주시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경력이 많지 않은 저도 동생들이 뭐라고 하면 ‘내가 잘못한 건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형은 매번 ‘현진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어’ ‘그럼 이렇게도 해볼까?’라고 해주시죠.”

그리곤 “연기하면서 제가 어지른 소품은 스스로 챙기고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도무지 해결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며 ‘루드윅’의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JungKim001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왼쪽)과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자살을 하려고 총을 들고 있다가 다음 장면으로 바로 넘어가야하는데 그 총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거예요. 그런데 형이 ‘내가 받아줄까?’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해주시는 형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요.”

 

김현진의 증언(?)에 정의욱은 “무대 위에 선후배는 없다. 동료만 있을 뿐”이라며 “배우로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힘들어지는 건 어린 동료들이 어떤 얘기도 해주기 힘든 존재가 돼간다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무대라는 매체는 제가 못보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모니터링을 할 수 있지만 무대는 오롯이 나를 보는 사람을 통한 간접 모니터만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먹을수록 저한테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아예 얘기를 안해줄텐데…그러면 저는 안주하게 되고 성장할 수 있잖아요. 게다가 전 뭔가를 계속 하는 걸 좋아해요. 현진이의 총을 받으면서 저도 또 뭔가 고민하게 되고 다른 연기를 구상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같이 얘기하는 게 너무 좋아요.”


◇모두가 크리에이터였던 연습실

루드윅 2차_ 04 김현진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청년 김현진.(사진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사실 이번 작업은 전체가 크리에이터였던 거 같아요. 작가이자 연출, 작곡가, 안무가 등이 준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가는 대선배 정의욱과 한참 후배 김현진의 기류는 ‘루드윅’을 준비하는 전과정에 흐르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곡가·김병진 안무가를 중심으로 배우들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자기 의견을 내고 그 자리에서 시도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하는 현장이었다.

“여기 대사는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지 않아, 그럼 동선도 이렇게 해야 더 셀 것 같은데, 그럼 음악은 여기서 그렇게 끝나면 안되지 않을까…그렇게 모두의 의견이 반영됐어요. 반드시 해야하는 건 (추정화) 연출님이 다 챙겨주시고 그걸 안하는 배우들은 없기 때문에 지킬 건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표현을 할 수 있었죠.”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배우들마다 뉘앙스나 순서들의 차이가 있다”며 “뭔가 ‘반드시 해줘야 해’가 아니라 각자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 연습에서 했던 걸 그대로 하기만 하면 정확하게 그 장면들에서 보여줘야 하는 지점과 만나진다”고 말을 보탰다.

Jung002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그런 걸 보면서 너무도 신기하고 우리가 정말 연습을 잘해왔다는 자부심이 들어요. 예를 들어 제가 카를일 때 루드윅을 돌리면서 나가는 장면에서 살짝 동선이 어긋났어요. 그런데 그게 좋다고 연출님이 바꿔주기도 하셨어요. 분명 우리가 약속한 동선에서는 벗어난 건데 정확하게 장면에서 이뤄야하는 것들이 이뤄지더라고요.”

흔치 않은 신기한 경험에 “너무 행복하다”는 김현진은 “루드윅, 청년, 마리가 트리플 캐스팅이고 발터 등의 아역이 더블이니 54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다. 그 모든 게 정답이 되는 게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정답이 많은 게 아니라 정답이 없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모든 게 정답이 될 수 있게 같이 고민했고 맞춰야할 부분은 배우들이 맞췄고 바꿔주실 부분은 창작진들이 맞춰주셨어요. 그것만 밟아간다면 무대 위에서 순간순간 살아있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우리 모두는 예술가, 일맥상통하는 고민들
 

루드윅 2차_ 02 정의욱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 루드윅 정의욱.(사진제공=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저는 천재도 아니고, 피아노도 못치지만 어떤 종류의 예술가든 고민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결은 분명 다르지만 베토벤이 갖고 있는 고민이나 고통이 이해가 가요.”

정의욱은 ‘루드윅’을 준비하며 배우로서의 자질에 대해 고민하고 그만 둬야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던 초보 배우시절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무대에서 자유롭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다고 느끼면서 겪었던 고통과 고민들이 떠올랐다”고 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거예요. 예술하는 사람 뿐 아니라 누구나 원하고 바라고 추구하는 게 있지만 그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느끼는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다만 천재가 느끼는 영감을 어떻게 내가 느끼고 표현해야할까는 고민했죠. 천재임에도 모차르트와 늘 비교되며 시달렸던 열등감, 그 사람이 느꼈을 고독과 고통 등을 어떻게 실감나게 상상해볼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던 것 같아요.”

정의욱의 말에 공부 좀 한다는 수재들이 모여있었던 자사고(자율형사립고등학교) 출신의 김현진은 학창시절의 한 친구를 떠올렸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도 안듣고 졸기도 잘하는 친구였는데 시험만 보면 100점인 거예요. 저는 걔가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날인가 그 친구 집에 놀러가 게임을 하다 새벽에 잠들었어요. 새벽 4시엔가 깼는데 그 친구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희랑 노느라 그날 해야했는데 못한 공부를 한거죠.”

‘루드윅’을 준비하면서 “천재는 타고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진다는 걸 느끼게 했던 그 친구를 떠올렸다”는 김현진은 “천재 혹은 재능있는 예술가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고 밝혔다.

“베토벤은 천재고 재능있는 사람이었지만 열등감 때문에 더 노력하는 천재였어요. 저희 작품이 베토벤의 그런 부분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아요.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 귀가 안들리는 가운데서도 할 수 있다는 의지 등을 보면 인간적인 천재 같아요.”

김현진의 말에 정의욱은 “모차르트는 머리 속에 있는 악보를 한번에 써내고 단 한번도 고쳐 쓰지 않을 정도로 천재였지만 베토벤은 악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고치고 덧붙이는 노력형 예술가”라고 부연했다.

[브릿지포토] 김현진 인터뷰7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자료나 영화로 본 베토벤은 굉장히 강한 사람 같지만 그만큼 연약했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연기를 하면 할수록 저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예민하고 거칠고 막무가내고 날카롭고 무례하지만 그 안에 누구보다 여린 마음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어린 루드윅에서 청년 루드윅으로 변하는 장면이 너무너무 아파요. 어른스러운 척 하고 있지만 자라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아이가 그 안에 그대로 있는 것 같거든요.”

이 역시 스스로를 닮았다는 김현진은 “저는 배우로서 재능이 별로 없고 소심하다. 어려서는 너무 소심해서 버스 하차벨도 못눌렀고 패스트푸드 점에서 주문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저는 지금 무대에 서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베토벤과 같은 의지와 열정이 있고 아주 재능이 없는 건 아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롤모델이신 이석준 선배가 ‘열등감만큼 너를 좋은 배우가 되게 하는 건 없다’고 해주신 말씀이 이 공연이랑 맞닿은 것도 같아요. 천재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노력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그렇게 저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관객분들도 베토벤 이면의 의지, 열정, 좌절, 다시 일어서는 희망에 집중하시면 좀 더 재밌을 거예요.”


◇‘환희’ ‘월광소나타’ ‘비창’ 등 베토벤 명곡에 이어지는 넘버들 ‘외로운 피아노’ ‘운명’
 

Jung003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클라이막스에 ‘환희’가 들어가고 ‘월광소나타’는 청년 루드윅과의 갈등 테마예요. 베토벤 임종에서는 ‘비창’이 깔리죠. 굉장히 연극적이고 점프도 많아서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음악의 힘은 위대하더라고요.”

정의욱의 전언처럼 ‘루드윅’ 넘버들은 베토벤의 음악 코드에 허수현 작곡가가 만든 멜로디를 얹는 방식으로 꾸렸다. 그는 가장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넘버로 ‘외로운 피아노’를 꼽았다.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들에 대한 후회들을 해요. 발터를 가르치지 않고 보내버린 것, 자신의 집착들로 카를을 괴롭힌 것 등을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떠나는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예요. 그가 그렇게 집착하고 원하고 꿈꿨던 것들이 마지막에 후회로, 용서로 이어지면서 떠나가는 그 장면이 가슴에 깊이 남아요.”

“정말 베토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곡”이라는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베토벤이 솔로로 부르는 파트가 어마어마하다. 인생을 담은 곡”이라고 동의를 표했다. 그리곤 ‘운명’을 추천 넘버로 꼽았다.

“청년 베토벤이 절규하다가 정적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어요. 조금씩이라도 들리던 귀가 아예 안들리게 되는 순간이죠. 그 정적 속에서 자신 안의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오히려 안들려서 내 안의 것들을 쏟아내게 되는 장면이에요. 청년 루드윅은 ‘당신 모차르트 같은데’라고 하면 ‘나는 모차르트처럼 신이 불러주는 음악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쓰는 음악’이라고 화를 내곤 했어요. 하지만 그 정적 장면에서는 ‘드디어 신이 나에게 음악을 들려주는구나’ 해요. 말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해요.”

[브릿지포토] 김현진 인터뷰5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월광소나타’에서 ‘에그몬트 서곡’으로 이어지는 이 넘버에 대해 “놀라운 장면”이라던 김현진은 “베토벤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곤 “그 장면을 기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구분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나에게 콤플렉스였고 고난이라고 느꼈던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한다”고 덧붙였다.

“그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너무 아름답고 그 과정에 설득됐어요. 게다가 그 순간에 형님들이 노래를 정말 기가 막히게 하시거든요.”

그리곤 “저는 네 마디 정도 부르면서 숟가락만 얹는다”며 “‘에그몬트 서곡’ 부분에서는 지휘 콜라보레이션을 펼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휘를 안무화시켜 작곡하는 모습과 하나가 되는 무브먼트를 둘이 같이 해요. 그렇게 하나가 돼서 청년을 보내죠. ‘안녕, 내 젊은 날’이라고 인사하면서.”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그 장면은 얘기만 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며 “제가 어린 루드윅을, 루드윅이 저를 보내는 거라 더 감정적으로 오는 것 같다”고 말을 보탰다.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 아내에게 그리고 나에게
 

[브릿지포토] 김현진, 정의욱 인터뷰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의 청년 김현진(왼쪽)과 루드윅 정의욱(사진=최민석 기자 yullire@viva100.com)
“편지를 쓰는 형식을 가져오면서 무대에서 퇴장을 못해요. 문어체로 계속 읽어주니 좀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느낌이어서 처음과 끝을 문어체로 가되 최대한 빨리 편지에서 벗어나자고 절충을 했어요. 애초 대본에서는 시종일관 루드윅이었는데 베토벤의 아버지를 비롯해 다양한 역할로 빠져나오죠.”

정의욱의 말에 김현진은 “연출님이 공연 전체가 하나의 편지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부연했다. 이에 루드윅처럼 마지막 편지를 써야 한다면 누구에게 뭐라고 쓰고 싶냐는 질문에 정의욱은 아내라고, 김현진은 나 자신이라고 답했다.

“마지막 내용은 별로 안변할 것 같아요. 고마웠어, 미안해 등 후회죠. 그 내용을 안쓰기 위해 열심히 잘해야지 생각했어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저하고 싱크로가 높은 작품이었어요. 제 나이도 마흔넷, 아들·딸 나잇대도 버드, 마이클·캐롤린이랑 비슷해요. 그래서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내에게,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말이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생각했어요.”

김현진은 “요즘 이상하게 자꾸 저를 돌아보게 된다”며 “다른 사람들한테 못한 이야기도 많지만 스스로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도 너무 많다. 그래서 마지막 편지에는 내게 해주지 못한 말들 ‘괜찮아’ ‘잘했어’ 같은 얘기를 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뮤지컬 ‘루드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모든 인물들의 진심이 통해요. 그렇게 진심은 언젠가 통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천재도 혹은 천재가 아닌 사람도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있잖아요. 어떤 부분이 뛰어나면 또 어떤 부분은 어리숙하고 어떤 사람은 대부분이 어리숙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이 작품은 틀린 것이 아니니 ‘그래도 괜찮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 퍼가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 인스타그램
  • 프린트

기획시리즈

  • 많이본뉴스
  •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