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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한국 기업가정신의 실상과 리부팅 과제

입력 2021-11-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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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장/국민대 겸임교수

◇ 우리나라 기업가정신의 세계 순위는 9위? 27위?

한국 기업가정신 지수는 세계 9위인가 아니면 29위인가? 기업가정신이란 무엇이며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해 시급한 현안과 과제는 무엇인가?

2021년 5월 6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기업가에게 위기는 기회, 한국 기업가정신 지수 세계 9위로 껑충’ 이란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여기에서 중기부는 글로벌 기업가정신 연구협회(GERA)의 발표자료를 인용하여 2020년도 한국의 기업가정신 지수는 조사에 참여한 44개 국가 중 9위로 전년 대비 6계단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약 2개월 후인 7월 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2019년도 한국 기업가정신 지수는 OECD 37개 회원국 중에 27위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9위와 27위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이처럼 동일 사안에 대해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첫째,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기업가인가, 기업가정신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말하는 이마다 다르다.

또 다른 이유는 조사기관마다 기업가정신의 다른 측면을 다른 방식으로 평가하면서 그 결과를 같은 이름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중기부가 인용한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는 ‘창업 생태계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결과’에 더 가깝다.

한국의 사례로 좀 더 설명하면 GEM 조사 방식은 이러하다. 설문조사는 전문가(71명)와 일반인(2000명)을 구분하여 진행한다. 전문가에게는 창업 지원정책의 적절성, 기업가정신 교육·훈련의 적절성, 세금과 정부규제의 적절성 등 창업 생태계 관해 70개 문항을 조사한다. 일반인에게는 창업에 대한 인식·태도, 창업 활동·효과에 관해 100여개 문항을 조사, 평가한다.

참고로 한국에서 GEM 조사는 민간기관이 아니라 중기부 산하의 창업진흥원이 담당한다. 이렇게 조사했더니 올해 인도네시아가 1위로 가장 높고 대만 3위, 인도 4위, 그리고 한국이 9위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전경련 기업가정신 지수는 투입 2 부문(인식·태도, 제도 환경)과 산출 1 부문(기업 활력)을 합해 총 3개 부문 6개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기업가에 대한 인식·태도에서는 기업가 사회평판과 기업가 직업 선호의 두 지표를 평가하고, 제도 환경에서는 각국의 제도와 법의 지배 관련 두 지표를 평가한다.

산출부문의 기업 활력은 인구 10만 명당 사업체 수와 대기업의 비중으로 측정한다. 그리고 6개 지표는 전경련이 직접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GEM, WEF 등이 조사한 자료와 정부 통계를 기반으로 측정, 평가한다.

따라서 위 둘 중에 어느 지수가 각 나라의 기업가정신 실상을 더 잘 대변하는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두 지수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기업가정신을 서로 다른 관점, 다른 단계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학의 기업가정신 이론에서 보면 두 지수 모두다 기업가정신의 전모 또는 진면목을 대변하기에는 많이 미흡하고 한계가 있음도 사실이다.

경제학에서의 기업가정신 연구는 기업가정신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슘페터 이론, 나이트 이론, 커즈너 이론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슘페터는 혁신(innovation), 나이트는 불확실성이 연루된 판단·결정(judgemental decision-making), 그리고 오스트리아 학파의 커즈너는 기회 발견의 기민성(alertness)을 기업가정신의 요체로 강조한다.

◇ 한국 기업가정신의 리부팅을 위한 방향과 과제

만약에 기업가정신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믿는다면 그래서 기업가정신 리부팅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 기업가정신 지수와 지수를 구성하는 지표 값이 아니라 기본 이론에서부터 실마리를 찾는 게 나을 것이다. 경제학 이론에 기초하여 기업가정신 리부팅의 걸림돌과 과제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슘페터의 혁신은 창조적 파괴를 수반한다.

따라서 크고 작은 창조적 파괴에 반대하는 이익집단에 포획된 사회, 기득권에 편향된 포퓰리즘이 만연하는 정치적 환경에서는 슘페터 기업가정신이 충분하게 발현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불확실성이 연루된 나이트의 판단·결정은 한국에서는 걸면 걸리는 배임죄로 조사 및 피소될 위험이 매우 높다. 올 7월에 미국 국무부는 ‘2021 투자환경 보고서’에서 ‘한국지사의 CEO는 회사의 모든 행위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하며, 때로는 회사의 법규 위반에 대해 체포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영향으로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일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보다 더 위험한 행위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환언하면 한국은 미국에 비해 나이트 기업가정신의 발현에 불리한 환경이다.

셋째, 커즈너 기업가정신은 미지의 기회를 기민하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한국의 규제 시스템은 ‘원칙 금지-예외 허용’하는 열거방식이기 때문에 ‘원칙 허용-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한 경쟁국보다 불리한 환경이다. 특히 지금처럼 과거와 불연속적인 혁신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열거방식의 비교열위 문제가 더 심각하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만에 하나 선각의 혜안이 출중한 공직자가 미래의 기회를 법령에 반영한다고 해도 법령에 열거한 기회는 이미 미지의 기회가 아니다. 따라서 커즈너 기업가정신을 리부팅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은 규제 시스템의 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장/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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