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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천안함 트라우마 극복… 다둥이 아빠로 힘을 냅니다"

[맘 with 베이비] 전준영 326호국보훈연구소 부소장

입력 2024-03-26 07:00 | 신문게재 2024-03-26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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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국민들은 ‘천안함 피격·침몰’이라는 참담한 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정부가 북한의 소행으로 특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피격 침몰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등을 놓고 온 나라가 어지럽다. 당시 생존자들은 한동안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전준영 ‘326호국보훈연구소’ 부소장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천안함 피격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어렵게 빠져나왔고, 지금은 당시 산화한 동료들을 기리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제 다둥이 아빠로 화목한 가정을 꾸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를 만나 가족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2010년 3월 26일에 일어났던 천안함 피격 사건의 생존자이자 세 자녀 아빠인 전준영 입니다.”



- ‘326호국보훈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326호국보훈연구소는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십시오.

“천안함 용사들에 대한 예우와 함께 피격 사건을 제대로 알리고자 326호국보훈연구소를 창립했습니다. 연구소명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일어난 날인 3월 26일을 따서 지었습니다. 최원일 당시 함장이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소는 천안함 전상자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연구하고, 천안함 생존 장병과 부상 장병 등 국가를 위해 희생한 청년을 위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천안함 피격 바로 알리기, 천안함 기록 보관 사업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14년 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밑바닥에서 우울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꾸역꾸역 버텨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3월이 되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집니다. 매년 반복되니 사실 짜증도 납니다. 현실이 힘들고 출구가 없어 보여,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 손을 잡아 줄 아내와 세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잡고 일어섭니다.”


- 스물 네 살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에 한 걸음 나갈 수 있게 해 준 부인과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영화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그 해 4월, 아내는 텔레비전에서 환자복을 입은 제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그 때 저를 보고 반했다고 해요(웃음). 그 때부터 이곳 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찾아 매일 응원의 글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저도 아내 미니홈피에 들어갔습니다. 자주 글을 남겨 주어 정말 고마웠거든요. 그 때 처음 아내의 사진을 보게 됐는데, 제 눈엔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연락해서 만나고, 교재를 시작하고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면 아내는 농담처럼 ‘내가 왜 그날 TV를 봐서…’라고 합니다(웃음). 아내는 제가 ‘죽고 싶다’라고 하면 곧바로 달려와 위로해 줬습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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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영 부소장과 세 자녀.


- 결혼 후 세 아이가 생기며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 책임감이 군대에서 생긴 트라우마 증상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저는 심각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었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치료해 주었다기 보다는 잡생각을 없애 준 것 같습니다. 육아가 워낙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잖아요.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사고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북받치고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가 셋이다 보니 혼자 있을 시간도 없었습니다. 늘 바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생각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날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는 저만의 방법이 있습니다. 몸을 혹사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제가 우울할 때마다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옷을 개고 있으면 아내는 제가 뭔가 심란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피해 줍니다. 어쩌면 아내는 속으로 ‘나이스! 집이 깨끗해지겠군’ 할 수도 있겠네요(웃음).”



- 다둥이 부모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까요.

“솔직히 제가 사는 지역에 무슨 지원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관련 정책이 있다면 널리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거주 비용과 교육비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부모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입니다. 수입은 일정한데 많은 부분을 주거비와 교육비로 지출하다 보니, 정작 생활비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들 이로 인해 빠듯하게 살고 있을텐데요. 정부와 지자체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도록 더 많이 지원해 주면 좋겠습니다.”



- 국가가 저출산을 극복하려면 어떤 대책을 마련하면 좋을까요.

“정말 답변하기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저출산을 극복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미 사회 저변에 깔린 출산 후 경력 단절 문제나, 양육의 어려움 등도 문제입니다. 출산한 가정에만 혜택을 주기엔 정부도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현장에서 직접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하며 활동하는 분에게 정책을 고민하고 만들 수 있는 역할을 주면 좋을 듯 합니다. 불필요한 예산 투입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합니다.”



-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예전에 자동차 영업을 7년 동안 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물건보다 사람을 믿고 사게 하는 것이 영업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란 사람과 제 인생이 괜찮다면, 제가 겪은 일에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또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떳떳하게 정말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 부모로서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와의 추억을 가능하면 더 많이 쌓고 싶습니다. 큰 아이가 이제 중학생, 둘째와 막내가 초등학생입니다. 자녀와 교감하며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나중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저와의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 겸 브릿지경제 객원기자 ceo@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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