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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점자촉각책으로 신나게 공부… 손끝으로 읽는 세상 전하고파"

[맘 with 베이비] 점자촉각놀이 교구재 만드는 사회적기업 담심포 박귀선 대표

입력 2024-04-09 07:00 | 신문게재 2024-04-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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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선 대표.(사진제공=담심포)

박귀선 대표는 시각장애 아동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점자촉각놀이 교구재와 암유병자들의 질 좋은 삶을 돕는 콘텐츠를 개발·보급하는 사회적기업 ‘담심포’를 창업했다. 공예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사회적 소명을 다하느라 바쁜 박귀선 대표를 만나 우리 시대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박귀선 대표님 간단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촉각그림동화책을 개발한 공예가 박귀선입니다. 시각장애 아동의 점자학습과 사회성 향상을 돕는 점자촉각놀이 교구재와 암유병자들의 질 좋은 삶을 돕는 콘텐츠를 개발·보급하는 사회적기업 담심포의 대표를 맡고 있고요. 2022년부터 암을 경험한 암 환자이기도 합니다.”


- 2004년에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촉각그림동화책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활동한 카페에 시각장애아동이 볼 그림책을 개발할 북아트 작가 모집 글이 올라왔어요. 일본만 해도 시각장애아동을 위한 점자촉각그림책이 5만 권이 넘었지만, 국내엔 단 한 권도 없었어요. 연년생 두 아이의 엄마로서 무척 충격적이었어요. 단 한 권이라도 만들자는 생각에 북아트 작가 모집에 신청했지요. 다음 해에 국내 최초 점자촉각그림동화책 <아기새>를 개발했습니다.”


- 2013년부터 점자촉각놀이 교구재를 만들어 문맹학교에 무상제공했습니다. 품도, 비용도 드는 일인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아기새>를 더 많은 시각장애아동이 보기를 바랐습니다. 책, 책에 필요한 재료, 만들기 방법 등을 정리한 내용을 모두 기증한 뒤에는 두 아이 육아에만 전념했어요. 그런데 2013년에 대량제작이 무산됐고, 보급도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방송으로 접했습니다. 정말 속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당시 방송에 출연해 <아기새>를 소개한 맹학교 선생님이 같은 동네 사는, 제 아이의 친구 아빠였습니다.

제가 <아기새>를 만들었다고 말씀 드리니 그 분이 당장 한 권만 더 만들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전국 맹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촬영하는 2시간 동안만 아이들과 책을 체험했고, 그 후엔 촬영팀에서 도로 가져갔다고 했습니다. 딱 한 권뿐이라 더 구할 수도 없다고 했더랍니다. ‘그래, 딱 한 권만 더 만들자’라고 마음 먹었지. 이미 만든 지 오래됐고, 자료도 전부 기증한 터라 재료도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한 권을 만드는 데도 몇 달이 걸렸습니다.”



- ‘한 권만 만들어 보자’라는 것이 시작이었군요.

“그렇습니다. 당시 전국의 맹학교가 14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학교마다 한 권씩 기증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봉사자를 모집해 점자촉각책보급을 위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모두 17권을 만들어 맹학교와 점자도서관에 기증하는 데 꼬박 1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이후엔 아이들에게 필요한 점자촉각책을 맹학교 선생님과 개발했습니다. 재료비는 제가 출간한 책 인세와 크라우드 펀딩으로 마련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보자고 한걸음씩 걸었습니다. 맹학교 선생님을 만나 점자촉각교구재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게 됐고, 방향도 잡을 수 있었어요. 지칠 때면 전국의 바느질봉사자분들이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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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담심포)

 

- 2020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셨습니다. 함께 봉사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예 양성 프로그램도 진행하셨다 들었습니다.

“점자촉각교구재 봉사활동에 참여해 주신 대부분이 육아를 하는 엄마들이었어요. 경력이 단절된 경력보유여성이었죠. 그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검수 후 재 작업을 해야 하는 심한 불량은 그분들께 도움을 청합니다. 함께 한 시간이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사회적기업 ‘담심포’를 설립하고 정관을 만들 때 경력보유여성들의 자립·교육 지원을 사업의 목적과 비전에 담았습니다. 경력보유여성들을 위한 활동으로 손뜨개공모전과 강사양성, 공예활동 재료지원, 멘토링활동을 무상지원했으며 매거진도 제작 배포했습니다.”

 


-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윷놀이를 개발했을 때였습니다. 맹학교 선생님께서 어느 날 영상 하나를 보내 주셨어요. 빛을 전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전맹인 아이가 저시력 아이가 윷놀이를 하는데, 평소 학습력이 좋고 똘똘한 아이였는데도 놀이를 하면 주눅이 들어 저시력 친구의 도움을 받는 겁니다. 하지만 아이는 담심포에서 개발한 점자윷놀이를 하며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신나게 놀이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후 점자촉각교구재 개발은 방향을 조금 달리하게 됐습니다.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놀이중심의 점자촉각놀이교구재를 교과서 연계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놀이로 학습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우고 사회성을 키웁니다. 시각장애아동들이 고등교육을 마친 뒤 사회에 나와 가장 힘든 부분이 ‘사회성’이라고 합니다.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지요. 담심포는 시각장애아동들이 작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고 성공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놀이교구재를 개발, 보급하며 인식개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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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담심포에서 제작한 시각장애아동 점자촉각놀이 교구재.(사진제공=담심포)

 

-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시각장애인 아동에게 반응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점을 좋아하나요.

“주체적으로 혼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작은 성공 경험을 자주 해야 자존감과 학습력, 사회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경험입니다. 특히 시각장애아동들은 안전 때문에 거의 모든 일에 도움을 받게 됩니다. 담심포의 교구재는 모두 안전한 패브릭 소재로 만듭니다. 오물이 묻거나 구겨져도 회복력이 좋고 세탁도 가능합니다. 잘 찢어지지 않고 손이 베이지도, 무겁지도 않습니다. 책을 보다가 베개처럼 베고 잘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다칠까 봐 걱정하거나 도와주지 않아도 됩니다.”


- 참여 기업 역시 프로그램을 만족스러워한다고 들었습니다.

“담십포의 기업참여형 프로그램은 많은 기업에서 임직원 만족도 조사 1위를 하고 있습니다. 매년 많은 기업이 재 참여를 합니다. 점자촉각놀이교구재 키트 구성품에는 만들기 재료와 설명서 외에, 교구재의 필요성에 대한 시각장애아동의 부모님 영상 인터뷰와 맹학교 선생님의 편지가 든 워크북이 있습니다. 저희 교구재는 시각장애아동이 맹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 보조교구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싶고 선물하고 싶은 완성도 높은 선물 같은 제품으로 제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봉사 참여자분들도 키트가 만들기도 쉬우면서 불량 없이 완성도가 높고, 디자인과 제품 질이 좋은 ‘선물 같은 교구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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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담심포)

 

- 암 유병자 회복을 위한 콘텐츠도 제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2022년 4월에 암을 만났습니다. 암의 재발 전이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건강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암을 공부하고 좋은 식습관·생활습관을 꾸준히 실천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도 암유병자와 소아아동을 위한 봉사활동을 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암을 만나고부터 매일 일기를 적었습니다.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매일 내 몸의 변화와 음식의 반응, 운동과 수면 그리고 항암부작용에 대한 대응방법의 효과 등을 기록했습니다. 표준치료를 마치고 혼자서 암의 재발과 전이를 예방하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기록을 하고 음식공부 생활습관공부, 면역력 공부 등을 SNS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 기록을 바탕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암유병자들에게 도움이 될 루틴달력, 루틴노트를 제작했습니다.”


- 담심포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2024년의 가장 큰 목표는 시각장애아동의 점자촉각교구재의 필요성과 암 유병자들의 치료와 질 좋은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특히 좋은 암유병자 롤 모델을 찾아 함께 이야기하며 암유병자들이 아픔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현재 저부터 그 좋은 롤 모델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제가 암을 만나고, 시각장애아동들을 위한 점자촉각교구재 개발과 보급 목적과 사명감이 제가 살아야 할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금재 맘스커리어 대표 겸 브릿지경제 객원기자 ceo@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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