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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 않아"…임태강 여의도 새마을금고 이사장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여의도 새마을금고 이사장 임태강

입력 2018-01-29 07:00 | 신문게재 2018-01-2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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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가 목전에 다가왔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기대수명은 82.4세다. 2016년 기준 60세라면 남성은 22.5년, 여성은 27.2년 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전이라면 은퇴했을 나이에도 수십 년의 여정이 더 남아있다는 얘기다.

사회 초년생의 첫 커리어 설계만큼이나 ‘인생 이모작’ 준비가 중요한 시대, 여든을 목전에 둔 나이에도 청년들 못지않게 큰 열정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봤다. 4년 임기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인 임태강(79) 여의도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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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강 여의도 새마을금고 이사장. (사진제공=여의도 새마을금고)

 

◇‘거제도 촌놈’이 해외 누비는 사업가로

임 이사장은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엔 드넓은 바다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펼치는 사업가였다. 해외 여행도 정부 허가가 없으면 불가능하던 시절, 본인 표현을 빌리면 ‘거제도 촌놈’인 임 이사장이 세계를 무대로 경험을 쌓을 수 있던 비결은 ‘열정’이었다. 가업인 농사를 이어받으라는 집안 권유를 뿌리치고 쌀 두 말과 한 학기 등록금만 걸머지고 부산 수산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임 이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집안에서는 가업인 농사를 이어받으라고 했다. 대학교에 가겠다고 우겨 6개월 수험생활 끝에 부산 수산대학교에 합격했고, 졸업 후 마침 원양어업이 유행인지라 무역상사에 입사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 생활을 통해 ‘글로벌 마인드’를 길렀다. 해외 왕래가 자유롭지 않던 시절 세계 곳곳의 바다를 무대로 장사를 할 수 있는 상사 생활은 매력적이었다. 그는 “상사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은 1967년 가나에 주재원으로 발령받았다. 공식 대사관도 없던 곳에서 나 스스로가 나라를 대표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다른 나라 상사원들과 교류를 했고 때로는 북한 동포들과 비공식적으로 접촉할 일도 있었다”고 경험을 털어놨다.

해외 체류 생활은 본인 사업을 꾸리고 싶다는 열정으로 다시 이어졌다. 임 이사장은 “3년 해외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니 내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원양어선 8척을 운용하며 해외 어장에서 참치를 잡아 일본 상사에 파는 회사를 차렸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시작한 사업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원양어업 붐이 가라앉을 무렵엔 태평양 어장에서 조업을 하는 국내외 어선들을 상대로 새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80년대 초반쯤 되니 세계 각국의 원양업 규제가 심해져 어업을 정리하고 다른 사업을 했다”며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섬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국내 정유사의 기름을 국내외 어선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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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강 여의도 새마을금고 이사장. (사진제공=여의도 새마을금고)

 

◇안정 대신 도전을 선택

평생 사업 외길만을 걸어왔던 임 이사장이 어떻게 새마을금고와 연을 맺게 됐을까. 수십 년 여의도에서 살아오며 맺은 이웃들과의 교분이 계기였다는 설명이다.

임 이사장은 “처음 여의도가 개발되던 당시 시범아파트에 입주했으니 사실상 ‘여의도 토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지역에 아는 분들이 많다 보니 금고 감사직을 3년 정도 맡던 도중 이사장에 도전해보라는 제의를 받아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이사장직을 맡으려면 오랜 시간 이어온 사업도 정리해야 했기에 고민도 없지 않았다. 그는 “현지에 수십 년에 걸쳐 쌓아둔 여러 인맥들과 네트워크들이 아쉽기도 하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돼 3개월 가량을 고민했다”며 “그러나 앞으로 내가 활동할 시기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오랜 사업가 생활도 금고 이사장직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사업도 결국 신뢰와 진심이 중요한 만큼 금융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그는 “같은 값이면 신뢰가 있는 사람과 거래를 하는 만큼 신뢰와 진심이 중요하다”며 “해외에서 쌓은 사업 경험이 이사장 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랜 기간 적자로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못하던 여의도 새마을금고는 임 이사장 취임 첫해부터 흑자전환해 매년 배당을 해오고 있다.

안정적 사업 대신 도전을 택한 ‘열정’은 업무 생활 이외의 취미활동에서도 이어졌다. 여의도에 살기 시작한 이후 시작한 조기축구회는 30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가 꼽는 축구의 가장 큰 장점은 시작하기 쉽다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날씨와 장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초심자가 하기에 어렵지 않고, 어느 동네에나 아침에 운동장을 찾아가 보면 축구팀이 있을 정도로 활성화가 되어 있다”며 “생활체육으로 이만한 운동이 없다고 생각돼 지금도 매주 조기축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퇴 이후엔 봉사…“돕는 일 가장 보람”

문득 은퇴 이후 계획이 궁금해졌다. 훗날 은퇴하게 되면 무얼 하고 싶냐는 물음에 대해선 ‘봉사’라는 답을 꺼냈다.

임 이사장은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일하며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보람’”이라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협동조합에서 일하며 봉사도 다닐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임 이사장은 이사장직 수행과 각종 모임으로 바쁜 와중에도 ‘bbb 통역봉사단’ 등을 통해 자원봉사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전화나 앱(app)을 통해 통역을 요청하면 이에 응답해 즉석에서 전화로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그는 “주로 긴급한 경우 이용하는 외국인이 많아 통역 요청이 밤에 자주 오는 편”이라며 “불법체류자로 오해받아 경찰서까지 간 한 외국인 여행자를 도와 오해를 풀어줬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했지만 가장 보람찼던 일은 말 한마디와 웃음 하나를 통해서라도 주변을 돕는 일이었다”며 “앞으로 지역 봉사 등을 통해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준호 기자 MTG100@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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