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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우리 사회의 도덕성 위기

입력 2019-09-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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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화 전남대 교수
정기화(전남대 교수, 경제학)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두려운 생각이 든다. 가족을 죽게 하였다는 피의자나, 가족을 위해 서류를 조작하였다는 피의자나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증거가 있느냐고 따진다. 마치 인기 드라마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 진실이 드러날 때가 되면 당신이 보았냐고 따지는 것 같다. 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였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죄판결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였다는 것일 뿐, 행위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행위의 정당성은 도덕에 기초하며 합법적 행위가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다양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개인들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기본적인 도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소중히 여기면 타인의 생명과 신체, 재산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덕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은 타인을 신뢰하면서 서로 협동하고 사회적 분업을 한다. 도덕률이 지켜지지 않으면 누구나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 그러면 사회적 협동이 어려워지고 사회의 유지가 힘들어진다.

초기 사회에서 도덕률이 유지된 것은 개인적 양심 때문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타인과의 공감이며 타인이 자신에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타인에게 행하지 않는 것이 양심이다. 양심을 지키지 못하면 누구나 타인 앞에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이러한 부끄러움이 도덕률을 유지시킨다. 누구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 누구나 타인의 재산을 훔치면 부끄러워한다. 때로는 사회에서 도덕률을 지키지 않은 개인은 타인과 교류할 수 없도록 배제되기도 한다.

낯선 개인과 살아가는 확장된 사회는 도덕률에만 의존할 수 없다. 부도덕하게 행동하는 개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매일 마주쳐야하는 개인의 재산을 훔치다 들키면 부끄럽다. 하지만 다시는 대면하지 않을 타인의 재산을 훔치는 일은 부끄러움이 덜하다. 그래서 확장된 사회에서 도덕률을 지키지 않는 개인은 증가한다. 모든 개인이 부도덕하게 행동하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사회의 유지를 위해 도덕규범을 강제하는 법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법이 모든 도덕규범을 강제할 수 없다. 사회의 다양한 집단에 다양한 도덕률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도덕률을 강제하는 것이다.

강제력을 집행하는 국가 권력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보편적 도덕률에 어긋나는 법도 강제한다. 보편적 도덕률에 어긋나지만 권력집단에 유리한 법이 강제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도덕한 법은 민주정이 등장하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다. 민주정이 등장하면 입법 여부는 법의 도덕성보다 다수의 지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수가 지지하면 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된 법이 제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소수의 재산을 약탈하여 나누어 갖는 것은 부도덕하다. 하지만 민주정에서는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 약탈을 합법화하는 법이 쉽게 제정된다. 도덕성을 상실한 법은 합법의 탈을 쓴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옛 성현에 따르면 개인의 모든 행위를 법으로 다스리는 사회에서 개인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들은 다만 법을 지켜 처벌을 면하고자 할 뿐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회에서는 도덕이 바로 설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행위의 도덕성은 사라지고 행위의 합법성만 남는다. 도덕률이 사라지고 법만이 지배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나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정의와 공정은 다수의 지지와 무관하다. 타인이 자신의 재산을 빼앗는 것이 불의이면 자신이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것도 불의이다. 타인이 자신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불공정하면 자신이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 것도 불공정하다. 정의는 그 자체로 정의로우며 공정은 그 자체로 공정한 것이다.

부도덕한 행위가 합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사회의 개인은 불행하며 부도덕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유혹을 느낀다. 그렇더라도 개인의 도덕률이 건강한 사회는 무너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법은 인간 행위의 지극히 일부만을 지배할 뿐이다. 그래서 이들 사회의 개인은 여전히 도덕률에 기초하여 행동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유교적 도덕률과 개인주의적 도덕률이 갈등을 겪고 있으며 아직 개인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존중하는 도덕률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 중에 민주화의 진전으로 다수가 지지하면 어떠한 법도 제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조급증은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하라고 재촉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도덕률은 점차 사라지고 도덕성을 상실한 법이 증가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개인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개인이 늘어나면 도덕이 무너지고 법의 도덕성이 사라지면 사회 질서가 무너진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개인이 아직 많다는 것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대해 절망하기 전에 도덕률이 바로 서고 법이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정기화(전남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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