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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18세기 프랑스가 한국경제에 주는 시사점

입력 2019-11-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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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안재욱(경희대 교수, 경제학)

17세기 후반과 18세기 내내 프랑스는 심각한 경제 문제와 재정 문제에 시달렸다. 많은 국민들이 식료품 부족에 시달렸고, 국가는 끊임없이 파산 일보직전에 내몰렸다. 루이14세 때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과 루이14세 및 그 후계자들의 방만한 재정 지출 탓이었다.

콜베르는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것이 국가에 유리하다는 토마스 먼(Mun)의 ‘무역차액설’을 믿고 수출은 늘리고 수입을 줄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무역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 대해 세세하게 규제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고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자 했다. 그러나 콜베르의 정책은 프랑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루이14세에 이어 루이15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5세였다. 어린 루이15세를 대신해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가 섭정을 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14세의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국가가 파산위기에 처해 있었다. 오를레앙 공은 경제와 재정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존 로를 영입했다.

존 로는 경제와 재정 문제를 통화 부족으로 봤다. 그래서 그는 방크제너랄을 설립했다가 방크로얄로 국유화해 기존의 금화를 배제시키고 불환지폐인 방크로얄의 은행권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인도회사(Compagnie des Indes)를 설립해 정부 채권을 인수하는 대가로 미시시피 지역에서의 배타적인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정부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이 회사의 주식을 발행하며, 방크로얄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인도회사의 주식매입 대금을 대출해주는 편의를 제공했다. 인도회사의 신주 발행 때마다 은행권 발행 한도를 늘렸다. 이런 은행권 남발로 인도회사의 주식가격이 폭등했다가 폭락했다. 이 사건이 바로 그 유명한 ‘미시시피 버블’이다. 은행권의 남발로 인한 결과는 인플레이션이었고 경제 파탄이었다.

루이14세의 경제정책에 대한 초기 비판가들 중의 한 명이 피에르 드 부아길베르(Boisguilbert)였다. 그는 국가는 안전과 정의를 확립하는 역할만 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것(laissez faire la nature)이 국가경제에 이롭다는 주장을 했다. 반세기 후 루이15세 때 부아길베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중농주의자 케네(Quesnay)는 통치자의 생각을 바꿔 놓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루이16세가 왕위에 오른 1774년 튀르고(Turgot)가 재무장관에 임명되었다. 그는 중농주의자의 그룹에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경제정책에 관련해 중농주의자들의 불간섭주의(laissez faire)를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불간섭주의(laissez faire)에 입각해 개혁에 착수했다. 수년 간 괴롭혀 온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곡물 교역을 자유화하고, 많은 산업에 대해 진입을 제한했던 길드를 폐지했다. 강제노동으로 해오던 도로건설을 지주들에 대한 과세를 통해 그 건설비용을 조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수많은 기득권과 충돌했다. 그 반대자들이 루이16세를 움직여 그를 실각시킴에 따라 그의 개혁도 자연스럽게 폐기되었다. 튀르고 실패 이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만일 튀르고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산업혁명이 프랑스에서 먼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의 역사는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 채 통화 발행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경제가 파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프랑스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세기에 영국과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오늘날 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한국경제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로 생계를 잇는 사람이 대폭 증가했다. 설비투자가 줄고,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늘어나는 등, 기업의 경제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으며 해외로 빠져 나가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경제의 활동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개혁은 하지 않은 채 돈을 풀고 재정 투입에만 집착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하한 것은 물론이고, 제로금리 이야기까지 흘리고 있다. 올해 470조원 규모의 슈퍼예산에 이어 내년에 사상 처음으로 513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편성하면서 정부의 지출을 더욱 늘리겠다고 한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돈을 푸는 것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간섭을 줄이고 노동시장 개혁을 비롯한 구조개혁을 단행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경제는 과거 여러 국가들이 경험한 경제 파탄을 겪을 것이다.

 

안재욱(경희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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