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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걸어서 숲이 되는 세상으로

입력 2021-01-11 14:05 | 신문게재 2021-01-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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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12월의 마지막 며칠을 제주의 맑은 공기와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보냈다. 한라산 정상에 쌓인 눈이 하늘의 구름에 맞닿아 버섯 모양의 장관을 연출해냈다. 신풍해변가의 너른 귤껍질밭은 시큼하고 상큼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동백이 떨어진 산책로 끝 억새정원에는 커플들의 사진찍기가 한창이었다. 송악산의 좌측으로 마라도와 가파도가 형제섬과 함께 수평선 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사소한 일로 안달복달했던 처지를 추스리고 있다. 일년을 되돌아보니 희비의 쌍곡선이다. 뜻하지 않게 하고 싶던 일을 후배로부터 제안을 받아 평생의 업으로 삼으리라 신발끈을 동여 매었지만 무리를 한 탓에 후배의 건강이 나빠져 하던 일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인연을 계기로 우리나라 광고의 총본산인 한국광고총연합회에서 작지만 의미있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누구나 오르막 내리막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산을 오르면 다시 내려와야 하듯이 앞으로의 인생에도 그만큼의 굴곡이 지나갈 것이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한점의 시간(spots of time)’이란 말로 자연의 치유력에 대해 예찬했다. 자연을 맞이한 순간은 마음의 상처가 이완되고 인생의 기력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살아있는 자연이 변치 않고 그 곳에서 그 모습 그대로 숨쉬며 여전한 모습을 지켜가는 것을 목도한 순간 자신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보잘 것 없어지고 새로운 앞날이 펼쳐짐을 예감한다. 바람이 부니 살아야겠다는 시인의 결의가 바로 그것이다.

두 다리를 움직여 자연 속을 배회할 때, 움직일 때 함께 얻는 또 다른 이로움이 있다. 두 다리를 움직이면 머리는 생각을 반죽하기 시작한다. 방치해 놓은 잡념이 이리저리 돌고돌아 매끈하게 다듬고 합쳐서 더 높은 수준의 생각을 만든다. 루소나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이 산책에서 얻었다는 양질의 사고력도 그것이다.

하나 더 말해보자.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서 마지막 순간 터진다는 울음은 무엇일까? 자긍과 안도만은 아닌 듯하다. 완주했던 직장 상사는 걷는 동안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와 회한이 반복된다고 고백했다. 목적지에 이르면 그동안 쌓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눈물로 분출되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고 했다.

도대체 걷는 것이 깨달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묵묵히 걷는 자는 명상과 무념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밖으로 향한 관심을 내 안으로 돌려놓는 시간이다. 내가 머문 애월의 바닷가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심경은 그 때마다 달랐다. 일이 잘 풀리는 날은 파도 소리가 경쾌했는데 앞이 막혀 보이지 않을 때는 거칠고 사나웠다.

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다. 우리는 걸으며 마주치는 자연 속에서 객관화된 주관을 얻는다. 그런 깨달음의 과정이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순간으로 이끄는 듯하다. 다 몰라도 이것만은 기억하자. 정강이와 허벅지가 탄탄해야 오장육부가 튼튼하게 유지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해에도 부지런히 걸어보자. 자연의 진면목을 만끽하며 내면의 소리를 들으려면 속도를 늦추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야 한다. 마침내 서로에게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새해를 소망한다.

 

김시래 동국대 겸임교수, 한국광고총연합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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