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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비워내는 만큼 채워지는 기쁨!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정리에서 오는 희열, 버릴수록 미니멀해 지는 삶

입력 2022-06-02 18:30 | 신문게재 2022-06-03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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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라이프
정리 DNA라고는 1도 없는 남편의 책상. 치워도 치워도 다시 원점. 그나마 보이는 상자는 내가 정리해 준 나름의 흔적(?)이다. (사진=이희승 기자)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였냐?’고 물어 봤을 때 내 대답을 들은 열의 아홉은 빵 터진다. 처음엔 왜 웃는지 몰라 상처도 받았는데 그렇다고 대충 둘러대진 않는다. 내 꿈은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도 찬란하고 고귀한 전업주부. 하루종일 살림만 하며 살고 싶다고 하면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다. 

내 로망은 소소하다. 그저 집에서 오롯이 다림질 하고 청소한 뒤 밥을 차려먹는다. 물에 말아 후루룩 먹는 건 금물. 목가적인 삶의 대명사 타샤 튜터가 말했듯 가장 좋은 그릇을 꺼내 정성스럽게 요리해 소중한 옷을 입고 한끼를 충실히 때우는 게 중요하다. 

날씨가 좋다면 이불을 햇볕에 넌다. 여기서 핵심은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생활은 되어야 하니 돈을 버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저녁밥을 짓는다. 문화센터도, 마트도 가지 않는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클릭 한번이면 배달도 되는데!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해가 길다면 집앞 산책 정도는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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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Before 사진은 없다. 쓰는 그릇만 모아놓은 싱크대 상부장.(사진=이희승 기자)

 

그러고 보니 대학 4학년 때부터 인턴을 거쳐 직장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이직을 위해 한 6개월 정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시간도 있었는데 그나마도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녔다. 결혼 6년 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딩크족으로 살았기에 일은 필수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외벌이로는 내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긴 후 육아휴직 중에는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당시 국가에서 나오는 수당은 한달에 60만원 정도였고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뭔가를 사는 게 그렇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렇다. 나는 ‘내돈내산’이 익숙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성향을 바꾸거나 소비를 줄이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쉽지 않았다. 그나마 운이 좋게 경력 단절이 되지 않은 것은 살림을 도맡아 해준 시댁 덕분이다. 분명 아이는 낳지 않는다 미리 말씀드리고 결혼했건만 ‘낳기만 하면 키워준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비록 내가 버는 돈의 대부분을 드릴지언정(생활비는 시세에 맞춰 달라고 하셨기에) 그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

혹자는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데 ‘의외로 나는 살림에 소질(?)있다’고 자부한다. 일단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걸 견디지 못한다. 연애 7년만에 결혼한 직후 남편이 내 정리벽을 보고 “낯선 여자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할 정도였다. 동시에 나는 이렇게 사람이 지저분 할 수 있는지를 처음 알았지만 티내지는 않았다. 단정한 성격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집에서는 수건 하나 개질 않고 그저 펼쳐 놓는 스타일이었다. 

택배박스 하나 버리질 못하는 성격이라 신혼 초부터 불같이 싸워댔다. 구 남친이자 현 남편은 “당신은 군대에 갔어야 했다”며 칼각을 잡아 빨래를 개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쓰레기 봉투를 왜 접어놔야 하는지, 장을 본 재료들은 그냥 냉장고에 넣으면 안돼고 손질해 넣어야 하는지, 세면대를 쓰고 물기를 제거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해 긴 시간 토론했지만 결국 정리는 나의 몫이었다.

사실 집안이 정리되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남편은 요리는 잘하지만 설거지는 미뤄둔다. 그나마 잘 하지 못하는 타입이었고 나는 그 시간을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둘 다 일을 해야했기에 자연스럽게 집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 됐다. 나 역시 살림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출산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합가 하고서는 짐이 배로 늘었다. 남편의 정리 DNA가 없는 게 집안 내력임을 아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아버님은 다행히 너저분한 건 뭐든 버리자 주의신데 그 이상으로 밖에서 뭘 주워오셨다. 시어머님 역시 우리시대 평범한 엄마들처럼 냉동실에 검은 봉지를 가득 채우고는 몇 년 뒤 “어머, 이게 여기 있었네. 얼렸으니 괜찮아”라고 다시 집어넣는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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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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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사재낀 정리함이 곳곳에 보이지만 그나마 선전한 나의 냉장고와 팬트리 내부 모습. (사진=이희승 기자)

 

나 역시 해외출장 중 기회만 되면 그릇이며 각종 살림살이를 쟁여오는 타입이라 집은 곧 쉬는 곳이 아닌, 물건을 쌓아두는 곳으로 전락했다. 이사 후 5년이 지나도록 풀지 않았던 박스가 있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사실 그 박스는 이사오기 전에도 풀지 않았던 짐이었다. 더 넓은 집으로 가면 정리가 될 줄 알았지만 그건 그저 계획일 뿐이었다. 

 

결론만 말하면 나는 ‘1일 1 버리기’를 꽤 오랜 기간 동안 실행 중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닥친 우울증을 계기로 비워야 채워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고 과감히 실행 중이다. 당시 상담 중에 약간의 강박을 진단받았고 청소를 하며 치유되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검사결과 물건에 애착이 심한 편이었는데 나보다 더한 남편을 보며 이 증상 또한 상당 부분 나아졌다. 

 

나는 한 시즌에 두 번 이상 신지 않거나 들지 않는 신발과 가방, 옷을 모두 버렸다. 빈 공간은 자주 쓰는 걸로 채워졌다. 때마침 떠난 발리 한달 살기를 하며 “생각보다 적은 수의 물건으로 살 수 있는 삶을 발견했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남길 정도로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은 몇개 되지 않음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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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청하는 코너는 ‘12시에 맛나요’라는 유투버가 진행하는 생활 꿀팁이다. 진정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리와 재활용의 달인이다. (사진=이희승 기자)

  

서두가 길었다. 이 글을 핵심은 이제부터다. 정리를 위해 정리함을 사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공간을 정리하기 위해 다이소에서 구두박스와 옷 정리함에 10만원 가까이를 소비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천원샵으로 유명한 다이소의 가격이 기본 2~3000원이 된 지는 오래. 그래도 10만원 어치를 사려면 끌고 다니는 쇼핑카트를 4개쯤은 채워야 한다. 물론 거기에 개당 5000원 하는 감성캠핑 폴더박스는 제외해야 한다. 물건이 제법 들어가는 이곳에 냉장고 문에 세워두는 곡물통과 요즘 주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공중부양 아이템(말은 거창하지만 벽에 붙이는 찍찍이 테이프가 대부분이다)을 가득 넣으면 채 3만원이 되지 않으니 얼마나 많은 물품을 사댔는지 가늠이 될테다. 

 

벽에다 물건을 걸 수 있는 타공판은 개당 1000원이지만 그 그 크기만큼 채우려면 몇 만원은 기본. 결국 나는 정리를 위한 물건을 사는 데 또다시 소비를 하는 호갱을 자처한 셈이다. 그 모든 원인은 ‘다이소 꿀템’이라고 치면 무수히 뜨는 유튜브 콘텐츠에 있다. 누군가의 집이 정리되는 장면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똑같이 뭔가를 사느라 돈을 쓰고 정작 내 집은 난장판이 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이제는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뭔가를 사는 행위보다 코스트코에 간 김에 튼튼한 박스를 몇 개 더 집어(?)오는 걸로 대신한다. 요리조리 잘 자르고 칸막이를 대면 펜트리의 한쪽은 무난하게 정리된다. 굳이 따지자면 이제는 ‘버리는 물품 다시 보기’ 단계랄까. 무심히 버렸던 잼 유리병, 계란판, 우유통 등을 잘 씻고 말려 서랍에 넣으면 파는 제품 못지 않다. 물론 모든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다. 일찍이 일본을 넘어 미국까지 진출한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가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것이었다. 나는 설레는 게 너무 많아서 결국 버릴 수 없는 타입이었을 뿐. 

 

그러니 국내 공간 활용전문가이자 ’정리왕 썬더‘의 운영자 이지영 대표의 “정리의 기본은 청소”라는 말을 실행에 옮기는 게 차라리 낫다. tvN 예능 ‘신박한 정리’에서 정리 전문가로 활약하며 주목을 받은 그는 방송에 출연하기 전 이미 창업 4년 만에 월 매출 2억원을 달성한 만큼 대중의 욕구를 정확히 짚었다. 그를 비롯한 정리정문가들은 “물건을 적게 소유하면 생활이 단순해지고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행복도가 올라갔다”고 말한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 미니멀 라이프를 이루진 못했다. 단지 확실히 뭔가를 사는 기쁨이 줄어든 상태에 진입했다. 그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풍요로워졌음을 느끼며 오늘도 분리수거날 아파트 분리수거함에 누군가 버린 서울우유 페트병을 매의 눈으로 스캔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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