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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200억대 전세사기' 그녀, 평범한 엄마였다

[이희승의 사적라이프] 집주인도 당한다… '부동산 이중계약 피해' 극복기
이중계약,대리인 동원해 '안심'시키는 수법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이용 직전 범인 잡았지만 받지못해
인생의 수업료라고 하기엔 거금, 의심만이 살길

입력 2022-09-29 18:30 | 신문게재 2022-09-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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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게티이미지)

이사의 계절이 도래했다. 왜 옛 어른들이 가을을 ‘집 옮기기’에 적당하다고 했는지를 이제는 안다. 아무리 전문업체가 있다 한들 여름은 땀이 비오듯 흐르고 당연한 말이지만 겨울은 너무 춥다. 내 결혼시기와 집을 얻은 시기는 꽃피는 5월이었건만 이후 2년 혹은 (운이 좋아) 4년 마다 옮길 때는 항상 12월 아니면 8월이었다.

지금이야 배부른 이야기지만 중학교때 딱 한번 이사하고 평생을 한곳에서 살았다. 지금은 아파트 천지인 서울 강변역 근처가 대부분 단독주택이었던 시기다. 2년 전 친정 부모님이 그 집을 팔기 전까지 내가 기억하는 한 광진구에서 우리집은 마지막 남은 단독주택이었다. 

주변의 이웃들은 모두가 집을 팔고 업자가 그 몇 집을 헐어 빌라를 만들거나 OO지구로 묶어 아파트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혹자는 마당이 있는 서울의 구옥이 도대체 얼마냐며 부러워했지만 주변에 높은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겪은 먼지와 소음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번 사적라이프는 ‘전세사기’에 대한 이야기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제사기로 인해 떼인 돈 받는 업체 이용후기’랄까. 많은 사람들이 세입자의 설움을 말한다. 오죽하면 28일 ‘전세피해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석한 원희룡 장관이 “서민 임차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세사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상시적인 협력체계를 강화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벌하고 피해자는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했을까. 정말 ‘내 생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약 7년 전. 남편의 근무지가 바뀌는 바람에 서울의 집을 정리해 이사를 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었다. 나홀로 아파트로 전철역과의 거리는 걸어서 약 30분, 차로는 대략 5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과감히 5년 무이자에 25년 원금상환으로 이 집을 구매했다. 아이를 키워주시는 시부모님과 합가를 해야 했는데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발품도 팔지 않았고 수압은 어떤지, 학군으로서의 가치는 있는지 따져본 기억은 솔직히 없다. 일단 그 당시에는 관심도 없었거니와 너무 순진(?)했다. 일단 저렴했고 53평에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바로 앞에 P브랜드와 D아파트가 들어서 뷰조차 사라져 버렸지만.

KB 시세로도 전국 집값·전셋값 일제히 하락 전환
사진은 2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및 주택 모습. (연합)

 

당시 거주하던 집을 빼야 했는데 계약이 꼬여서 이 집이 약 6개월간 비워있었던 게 문제였다. 당시 이곳은 인천공항의 제 2터미널 확장과 더불어 서울과 지방에서 엄청난 인구유입이 많았고 은퇴자금을 들고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원룸건물을 지어 건물주가 된 사람들의 매물과 서울에서 갭투자로 여러 채의 아파트를 투자한 사람들이 내 놓은 집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던 시기였다.

집을 중개해준 공인중개사 K는 동네에서 교회 간사로 지내며 인맥이 상당했다. 하필이면 남편이 1년 먼저 이곳에 와 있으면서 알찬 소개와 현실적인 DC가 오가며 친분이 쌓였다. 그 사이에 약간의 돈(서울의 집을 처분한 여유자금)을 고이율로 빌려주며 짭짤한 부가수입을 올린 게 독약임을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100만원을 빌려주면 120만원이 하루만에 통장에 입금됐다. 마침 도배, 장판 교체와 더불어 인테리어 변경을 하면서 다른 곳에 비해 꽤 저렴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당연하게도 K실장이 우리집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업자들이 드나들며 체크해야 할 상황도 꼼꼼히 사진으로 보내줬다. 

그날은 평일이었고 가기로 한 날은 아니었지만 마침 시간이 비었다. 예상보다 공사도 빨리 끝나는 바람에 예산도 굳어서 기분도 좋았기에 미리 전화도 하지 않고 함께 밥이나 먹을 참이었다. 먼저 K실장이 운영하는 G공인중개사사무소를 들릴까 하다가 도배가 궁금해졌다. 

아파트에 들어가니 K의 직원이 반겼다. 앳된 신혼부부가 도배지를 흡사 자기집처럼 만지고 있었다. 그는 “같은 라인에 이사오실 분인데 하필 연락이 안되서 사모님의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며 팔을 끌었다. 그들은 안방에 있었고 나는 거실 팬트리 안에서 지난번 발견했던 하자를 체크 중이었다. ‘다행히 신발은 벗고 들어왔군’하면서.

“근데 집주인이 외국에 있어서 이 집 전세가 이렇게 싼 거예요? 이 평수에 말도 안되네요. 우린 좋지만…”

그들이 나가면서 문이 닫히는 순간 여자가 직원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층간소음을 체크할 때 아래층 여자가 모두 믿고 K에게 계약을 맡긴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도 여러 채를 가지고 있어서 매번 내려올 수 없다는 게 K실장의 말이었다.

3분기 수도권의 집값이 전국에서 가장 크게 하락한 것으로 조사된 28일 서울의 한 부동산 앞에 매물이 붙어 있다.(연합)

 

30분쯤 흘렀을까 의심도 없이 G공인중개사사무소에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까 본 신혼 부부는 불 같이 화를 내고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K를 찾으며 울부짖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출근했다는 그는 리스한 벤틀리를 타고 도주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에게는 월세로 계약했다고 하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전세세입자를 받아 돈을 돌린 아파트가 수백채였다. 매달 집주인에게는 월세를 꼬박꼬박 입금하고 순진한 사람들의 전세금을 챙기는 수법이었다. 양쪽에 계약 전까지만 안 걸리면(?) 최대한 뽑아 먹을 수 있는 알짜수법이었던 것. 

실제로 외국이나 지방에 있는 사람도 많았지만 의심이 많은 세입자에게는 대리인을 써서 계약을 한 건도 있었다. 내가 계약한 집도 빈집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여러 명에게 보여줬고 막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이었다. 알고 보니 나는 예비 세입자들에게 미국에서 결혼생활 중인 상황극의 주인공이었다. 집을 사면서 복사한 내 신분증 사본이 있었고 다른 동의 집주인은 실제로 바빠 대리인 위임장까지 써주었기에 사기 밑밥으로 훌륭했다. 

말 그대로 ‘전세이중사기’인데 중개비를 흔쾌히 깎아주는 건 기본, 어린 딸도 동반해서 학원정보도 알려주며 경계심을 풀게 한 게 신의 한수였다. 한 쪽에서는 ‘집주인이 바빠서 계좌번호를 안 보내고 있으니 집부터 잡게 일단 내 계좌에 입금하라’고 하고 다른 쪽에는 ‘한두번 계약한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계약금을 걸고 입금하겠다’며 양쪽에 거짓말을 하는 수법이다. 참으로 긴 시간 쌓은 친분과 순간적으로 발휘되는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한 수법이다.

다행히 직전에 사건을 알았지만 그날 지구대가 마비될 만큼 사건신고가 집계됐다고 한다. 피해액만 200억원대. 집은 다행히 건졌지만 독한 맘을 먹고 ‘돈 받아드립니다’에 수소문해 연락을 취했다. 돈을 떠나 배신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강력반 형사로 오랜 기간 일하다 퇴직하신 점잖은 남자분이 나와서 오간 문자와 은행 입금내역서, 차용증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최대한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자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래저래 어둠의 경로를 택해야 한다는 것. 되려 역으로 약점이 잡혀 협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받았다. 

그렇게 소개받은 최 실장은 “3일 안에 찾아주겠다. 솔직히 종교와 자녀가 있다면 더 추적이 쉽다”고 말했다. 당시 계약금은 내 한달 월급에 준했고 받을 돈의 40%를 주기로 구두합의했다. 바로 입금이 되지 않자 그는 나에게 “직장 근처인 OOO역 1번 출구에서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내 근무지를 말하지 않았기에 순간적으로 공포감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그는 “이 바닥에서 휴대폰 번호만 알면 직장의료보험인지 아닌지 정도는 금방 나온다. 번호로 추적하니 어디 회사에 다니는지 나오더라”는 답변이 나와 더욱 진땀이 흘렀다. 

그 찰나 피해자 단톡방에 부산에서 K실장이 자수했다는 알람이 떴다.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최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거짓말 같이 결번으로 나왔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통화를 했던 번호였다. 조금 있다가 모르는 번호로 앞으로 이쪽으로 연락하라는 문자가 왔지만 “범인이 잡혀서 경찰쪽에 일임하려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알고 보니 K실장은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다른 사람에게 빌리고 영업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7년형을 받고 청주여자교도소에 복역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고 돈은 여전히 돌려 받지 못했다. 영화 같은 현실이 벌어진 그 해 12월은 유난히 추웠다. 그 후로는 세입자를 받을 때나 집을 팔 때 혹은 모든 계약에서 직접 대면을 원칙으로 한다. 개인사정으로 가족을 보내겠다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물렀다. 좋게 대하면 상대방도 그럴 거란 순진함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비싼 수업료를 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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