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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택배 간식 몰래 먹던 범인 잡고 보니… 내 이웃?

[이희승 기자의 사적라이프] 택배 간식 도둑 수색기
빛의 속도로 없어지던 초콜렛과 젤리
사과는 커녕 "단걸 안 먹이는 우리집 아이들 먹고 유혹 당하니, 어른들 간식으로 바꿔달라"당당함 보여
지인들 "분쟁생기니 간식박스 치워라"조언도

입력 2023-07-20 18:00 | 신문게재 2023-07-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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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치면 나오는 이웃들의 다양한 간식들.기회가 되면 택배기사들의 최애 아이템 1, 2, 3위를 따져보고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사진캡처)

 

퇴근 후 잠자리에 누워 결제한 제품이 새벽 배송으로 문 앞에 놓여지는 세상이다. 전세계를 휩쓴 바이러스의 창궐로 외출 등이 어려워지면서 ‘배달의 민족’으로 거듭난 한국은 그야 말로 ‘택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말 발표된 통계청 ‘한국의 사회 동향 2022’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택배량은 45% 상승했다. 10년 전에 비하면 179% 넘게 오른 수치며 1인당 택배 이용 회수는 70회를 훌쩍 넘어섰다. 

택배 종사자들의 피로도는 극에 달했고 배우자를 비롯해 자녀들까지 온가족이 총출동해 배달에 나서는 풍경도 흔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급기야 국가적 차원에서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하기에 이르렀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 택배기사들의 안타까운 과로사 소식들이 뉴스를 장식하는 일이 잦아졌다. 배달량이 늘면 충원을 하는 게 상식이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성’은 여전히 ‘적게 쓰고 많이 일한다’ ‘누군가 그만 두면 남아 있는 사람이 더 일한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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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의 눈을 피해 온라인 쇼핑몰을 몰래 들여다보던 일도 이제는 ‘~라떼’가 됐다. 출퇴근 길에 휴대폰 앱에서 결제를 하면 쓱 배송되는 시기에 ‘배달 대란’으로 몸살을 앓는 뉴스를 보게 됐다. 명절특수는 기본으로 어느 아파트에서는 배달차량을 금지해 단지 입구에 택배박스가 잔뜩 쌓여있는 장면이었다. 새벽배송을 선호하지도, 그렇다고 배달 서비스를 좋아하지도 않는 탓에 남의 이야기라고 느꼈지만 남편은 달랐다.

지금은 마동석을 메인 모델로 쓸 만큼 한국에게도 친근한 알리익스프레스가 막 도래한 10년 전부터 얼리어답터인 남편은 “이게 고작 1달러야. 한국에서는 2만원은 줘야 한다고”를 외치며 그야말로 ‘아름다운 쓰레기’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물이나 쌀 같은 무거운 제품은 비쌀지언정 절대 인터넷 상거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하지만 생필품을 제외하고 구매하는 물품은 늘 차고 넘쳤다. 국내의 다양한 택배 브랜드의 담당 기사님들과 안면을 트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우연히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알아서 우리집 물건을 건네주시곤 했으니까. 오죽하면 몇몇 기사분과는 “요즘 쇼핑몰에서 옷 안 사시네요”라거나 “남편분이 전자제품을 꽤 좋아하시는 군요” 등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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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나왔던 배우 김지석이 준비한 간식 박스. 방송 후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저런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려준 계기가 됐다. (사진제공=MBC)

 

사실 문 앞에 간식을 놓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는 중학생 조카가 학교에서 추천받은 만화 ‘까대기’를 읽은 몇년 전이었다. 이종철 작가가 그리고 쓴 ‘까대기’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의 실상을 다룬 작품이다. ‘일을 하면 하루만에 도망치게 된다’는 전설의 알바를 무려 8년간 하며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종철 작가의 실화에서 출발했다. ‘2018 다양성 만화제작지원사업’의 선정작으로 택배는 사람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그 저변에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다들 아는 척 하지만 정작 몰랐던’ 노동 현장의 민낯을 까발린다.

싱글들의 일상을 따르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김지석이 택배기사들을 위해 간식 박스를 준비하게 된 사연을 소개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사람들이 많았고 실제로 이같은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됐다. 택배기사인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돕고 있는 사연 속 초등학생은 이 방송 후 김지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훈훈한 풍경을 자아내기도 했다. 

택배기사들을 위한 간식박스를 채운 첫 아이템은 삼다수였다. 집에는 항상 생수가 있었고 때는 여름이라 사은품으로 받은 작은 아이스박스 안에 호기롭게 가득 얼려놨다. 뚜껑에는 택배기사들 뿐 아니라 ‘계단청소나 경비분들도 드시라’고 써놨지만 없어지는 물통의 개수는 의외로 적었다. 알고 보니 화장실을 자주 갈 수도 없어서 물이나 액체류는 대략 난감한 호의에 가까웠다. 차라리 에너지 드링크류나 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류가 좋다는 말에 그때부터 박카스나 초코파이 등을 문 앞에 놔두곤 했다. 츄파춥스는 우리 동네를 담당했던 기사님들이 가장 좋아했던 인기 품목이었다. 생일 선물로 두개나 받은 슬림 휠은 빼먹는 맛과 더불어 골라먹는 맛이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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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분들에게 “당 떨어질 때 몇 개씩 가져가기도 하고 담배 생각도 줄일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츄파춥스 휠.플라스틱은 재활용이 가능해 이후에는 리필만 사서 채워 넣었던 인기 상품. (사진제공=농심))

 

문제는 지난해 이사를 간 새 동네에서 시작됐다. 배달되는 물량에 비해 없어지는 사탕의 수가 현저히 많았다. 120개짜리 슬림 휠 제품이 일주일만에 없어졌다. 일주일이면 가장 인기가 적은 콜라 맛과 사과 맛 만이 두어 개 남아있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동네 분위기도 모르기도 했고 스스로 ‘경비, 계단 청소 하시는 분들 마음껏 드시라’고 써놨으니 없어지는 속도를 탓할 게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잘 못 됐다는 생각이 든 건 츄파춥스와 더불어 스키틀즈, 하리보 젤리를 넣어두고부터였다. 오리지널과 신맛 버전을 섞어놨는데 유독 한 제품만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무엇보다 제품 껍질이 문 앞에 지저분하게 버려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먹지 않는 건 남도 주지 않는 주의라 순전히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진 스니커즈, m&m 땅콩 초콜릿 등을 준비한 게 문제인가 싶었다. 이상한 건 함께 준비한 에너지 음료는 집에 온 택배 횟수만큼 정직하게(?) 소진됐다는 사실이다.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행위는 문제다 싶어 간식 상자 옆에 안내문을 적어놨다. ‘일하시는 분들 먹으라고 준비한 간식인데 몰래 먹고 껍질만 버리고 가는 분!그 분들의 노고를 지켜달라. 보안상 문 앞에 CCTV를 달아놨기에 간곡히 부탁한다’고. 출근 후 집에서 전화가 왔다. 잠시 들린 남편의 여동생이었다. 정확한 워딩은 “이웃 여자가 찾아왔는데 자신의 자녀들이 호기심으로 몇개 집어먹었나 보다. 우리집은 단 걸 안 먹이는 주의니까 애들 유혹하지 말고 정 이런 걸 하려거든 어른들 먹는 메뉴로 바꿔달라”는 전언이었다. 몇번이나 확인했지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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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본 ‘리발’은 발리에서 산 공예품 강아지로 우리집 택배 간식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다.(사진=이희승기자)

 

아이들의 고모는 그 안내문이 붙여진 걸  모른 채 문을 열었고 상황을 몰랐던지라 일단 전달하겠다고만 하고 연락을 한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고모는 “어떻게 저런 글을 써 붙여 놓을 수 있느냐는 표정으로 ‘혹시나 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실직고하더라’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간곡함을 가장한 ‘안내문’으로 범인이 밝혀진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라도 자신의 아이들이 먹었다는 걸 안 부모라면 해명 대신 아이를 대동해 사과를 시키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도덕적이고 훈훈한 결말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웃집 벨을 눌러 “정말 그런 말을 했냐?”고 확인할 수도, “아이들이 먹을 수도 있지만 메뉴까지 바꾸라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요?”라고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단 음식으로 간식을 준비하면 이웃의 클레임을 무시하는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난감해 하는 나에게 지인들은 “네 평소의 성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간식상자를 아예 두지 않는 게 어떨까?”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되도록 마찰을 줄이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없어지는 이유를 안 이상 나의 결론은 ‘그냥 두자’였다. 이런 해프닝으로 우리를 위해 고생하는 분들께 작게나마 보답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걸 멈추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집에서 못 먹는 걸 등교와 학원을 오가며 몰래 먹는 그 꿀 맛이 얼마나 달콤했을지 가늠되기도 했다. 다만 너무 많이 혼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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