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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스스로 움직이며 관람객조차 전시가 되는! 필립 파레노 ‘보이스’

[문화공작소]

입력 2024-02-28 18:30 | 신문게재 2024-02-2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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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보이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처음 이 건물에 왔을 때 들었던 소리(Voice)는 웅웅거림이었어요.”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가 처음 들었다는 웅웅거림뿐이던 공간은 인공지능(AI) 시스템이 내부에 적용시킨 미술관 주변 환경들, AI가 구현해낸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 층별로 작가가 캐치해낸 색채들, 부유하는 물고기 풍선과 말풍선, 녹아내리는 눈사람 등이 가미되며 낯선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의 국내 첫 개인전 ‘보이스’(Voice, 7월 7일까지 리움미술관)는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 활용을 비롯해 데이터 연동, AI,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퍼포먼스 등으로 미술관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전시다. 그렇게 작가와 관람객들, 미술관, 외부 환경이 매순간 상호교류하고 변화하며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필립 파레노 보이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목소리, 언어라는 것은 사실 소통을 위해 먼저 만들어졌다기보다 인간이 본인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되죠. 그러한 생성과정이 바로 ‘목소리’가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시가 세 달 혹은 4달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자체적으로 하나의 언어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르죠.”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전한 필립 파레노는 “정신이 나간 사람들은 항상 어떤 소리를 듣거나 환상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뿐 아니라 누구든 어떤 사물에 충분히 집중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어떤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보탰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런 환청 같은 것들을 듣기 시작하면 이상한 동시성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이를테면 환청 혹은 환시로 보는 것들 사이에 어떠한 인과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연결된 것처럼 느껴지는 형상(刑象)이 발생하는 순간이죠. 이러한 순간들과 관람객들이 관계를 맺는 아주 미묘한 기반이 목소리입니다. 그 부유하는 목소리들은 관람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기능을 하죠. 그렇게 사물들이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순간 사물은 객체나 대상이 아닌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주체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 세계의 일부가 되는 것들에 주목하고 있는” 필립 파레노의 첫 개인전에서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전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야외 설치 대형 타워 ‘막’(膜)을 비롯한 ‘델타 에이’(∂A), ‘움직이는 조명등’ 등 최신작까지 4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를 할 때면 그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의 건축적인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치 손금을 읽듯 공간을 읽어내려고 하죠. 특히 리움미술관은 아주 특별한 형태의 건축물입니다.”

그의 말처럼 리움미술관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장 누벨(Jean Nouvel),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꾸린 각기 다른 공간들이 엮여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범죄학자의 소설, 지구에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남은 생존자들이 지하에서 생활하는 이야기 속 디스토피아에서 영감 받은 오렌지색 공간은 디스토피아인 동시에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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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각 건축물들에서 공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색상들이 있었어요. 장 누벨이 설계한 공간은 하주 매트하고 평평한, 소리에 반향이 없는 공간이죠.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 때문인데요. 이 공간은 유일하게 외부가 보이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유리창에 오렌지 색 필터를 붙였습니다. 지구가 영원히 석양을 보게 되는 순간을 연상케하는 색상이죠. 지극히 평평한 공간에 부여한 오렌지 색이 높은 피치의 소리와도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스피커들을 통해 높은 빛의 소리가 구현되는 풍경을 느끼길 바랐죠.” 

이어 “그 위층은 파란색 공간이다. 블랙박스 안은 검은색으로 구성했고 그 아래는 저에게는 작품들이 서로 춤을 추는 일종의 연회장처럼 느껴진다. 로비는 공공공간으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풍경들이 연출된다”고 부연했다.

야외공간에 구축된 탑 형태의 ‘막’은 “마이크 혹은 작은 기상 측정 도구 같은 것”으로 “외부의 데이터가 내부에 있는 작품의 영향을 미치도록 외부 환경들을 전시장 내부로 제공한다.” 알고리즘 등이 아닌 실제 외부세계에서 끌어온 데이터를 활용해 전시장 안의 시간성을 지닌 사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필립 파레노 보이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 안에 달린 42개의 센서가 대기의 변화, 지각 변동 등 데이터와 신호를 작품으로 전송하게 되죠. 그렇게 전송된 신호와 데이터는 그 자체로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한 그 상상의 캐릭터가 이 모든 것을 느끼고 그것을 언어화해 말을 하게 되는 거죠. 그 ‘크리처’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두나 배우의 목소리를 차용했죠.”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필립 파레노는 “AI는 훌륭하지만 창작을 위한 도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이를테면 날씨 데이터로 만들어진 작품은 AI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AI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감성 등 살아있는 생명의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필립 파레노
필립 파레노(사진=허미선 기자)

 

“작업을 할 때마다 기술의 경계를 밀어붙이고 확장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 목적이 인간과 최대한 비슷하게 혹은 인간의 의식, 지성 등과 비슷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함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진짜가 아닌 것, 가짜가 무엇인지를 아주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하거든요.”

“사물이 아닌 시간을 기반으로 한 사물들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했는데 그 정보를 얻기 위한 좋은 방법이 이 미술관에 틈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이스’는 인공지능과 데이터 연동, 최첨단 사운드 시스템 등으로 구현되는 다수의 목소리, 피아노 연주, 점멸하는 조명들 등과 더불어 녹아내리는 눈사람, 서서히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들 등을 통해 시간을 경험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어떤 세계를 구축하면서 이 세계도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직면합니다. 이 전시 역시 살아 있지만 몇달 간 존재하다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영원히 존재하는 건 없잖아요. 이 전시는 매우 연약한 구조로 만들어져서 몇 달이 지나고 나면 바스러지고 말 겁니다.”

그리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눈사람, 그 곳을 부유하는 물고기 풍선 등을 예로 들었다. 그의 전시에는 헬륨가스로 채운 알록달록한 물고기 풍선과 투명한 말풍선 등이 부유하곤 한다.

이에 대해 필립 파레노는 “저는 무엇을 하든 그것이 완결됐다고 느끼지는 못하는, 어떠면 부유하고 방황하는 사람 같다”며 “미술이라는 건 항상 완결되지 않은, 불완전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런 점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제가 바꿔내는 어떤 변화들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바꿔낸 작업들과 제가 여전히 연결된 감각을 느낍니다. 마치 작업 하나하나가 제 몸에서 연장된 것처럼요.”

그는 이들을 “일종의 센서”라고 표현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을 항상 안정적으로 환경을 유지하려고 한다”며 “그럼에도 그 안의 공기 흐름이나 온도 등은 변하곤 한다. 물고기 풍선은 공기와 기압에 따라 반응하고 움직이는 센서”라고 설명했다.

“눈사람은 조금 더 재밌는데요. 미술관이나 뮤지엄들은 기본적으로 그안의 작품들을 보호하고 영구적으로 유지되게 하려고 하죠. 하지만 아무리 미술관이 온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더라고 눈사람은 녹아내리고 말거든요.”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그는 “미술관은 항상 닫혀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부세계에 등을 돌리고 있는 곳”이라며 “아주 비싼 작품들이 전시돼 있기 때문이다. 빛에 필터링을 건다든지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버블과도 같은 공간”이라고 털어놓았다.

“그 버블에 틈을 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관람객들이 전시장 안에서 마음대로 헤매며 작품과 전시에 관여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그렇게 ‘보이스’는 관람 방식이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시작과 끝 지점도 명확하지 않다. 필렙 파레노는 “본인이 원하는대로 부유하면서 어떤 영상을 볼지, 보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 관객들이 이 공간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스스로가 보내고 싶은 만큼, 원하는 방식으로 이안에서 시간을 보내시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이 전시 안에 심어둔 부유하는 아이디어들을 감지하시길 바라요. 극장에서 보는 영화처럼 그 어떤 프로토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전시에서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낼지, 무엇을 얻어가실지는 스스로에게 달렸죠.”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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