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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클래식이 궁금해질지도 몰라! 무라카미 하루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책갈피]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입력 2022-03-29 18:00 | 신문게재 2022-03-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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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사진=문학동네 공식 SNS)

 

대놓고 편향적이다. 스스로의 고백처럼 중구난방이며 장르도 다양하다. 스스로의 예감처럼 “왜 브루크너가 없지?” “왜 바그너가 빠졌어?”라는 불만이나 “어쩌자고 이런 레코드를 애지중지하며 듣고 있어요?” “그런 책이 대체 무슨 쓸모가 있냐?” 등의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그 이름만으로도 독자들을 열광시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습관처럼 혹은 그의 표현대로 고질병처럼 수집한 레코드 486장의 이야기다. 책에도 없는 집착을 보이는 레코드들은 틈 만나면 중고레코드가게로 달려가 사들인 “새까만 바이닐 디스크”들이다.

소장 이유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LP 컬렉터들이 수집할 작품을 고르는 기준인 명반이니까, 세계적인 거장의 것이니까, 한 뮤지션의 앨범 컬렉션을 위해…식의 이유가 아니다. 그저 재킷이 멋있어서, 싸도 너무 싸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혹은 흥정이 꽤 순조로워서 그리고 다른 걸 사는 김에. .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사진제공=문학동네)

그의 레코드 리스트 첫줄에 이름을 올린 에네스트 앙세르메 지휘,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이 녹음한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는 재킷만 보고 집어온 것이다.


조지 셀 지휘자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관현악단의 슈만 ‘교향곡 2번 C장조 작품번호 61’, 피아니스트 카를 제만이 협연한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5번 C장조 K.503’, 헝가리 출신 명지휘자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한 버르토크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등 익숙한 곡들도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의 의한 광시곡’, 쇼팽 ‘발라드 3번 A장조’,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과 5번, 요제프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48번 C장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키호테’ 등 익숙한 음악가의 익숙한 음악들도 하루키의 수집 과정과 음악가 및 연주자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니 색다른 재미가 묻어난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라는 책을 쓸 때 새삼 알게 된 오자와 세이지의 음악적 완성도와 음악적 세계를 짚어내는가 하면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 ‘기나긴 이별’ 중 사립탐정 필립 말로가 언급한 하차투랸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늘어진 팬벨트’가 아니라 물리지 않는 음악이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익히 알고 있는 음악이나 음악가들과 더불어 풀어낸, 다소 낯설 수도 있는 피아니스트 존 오그던, 지휘자 이고르 마르케비치, 토머스 비첨 등 연주가들에 대한 소회들도 가벼운 듯 심오하다.

곡이나 그 연주자가 가진 역사를 비롯해 모노럴과 스테레오 시대 녹음의 차이, 근육질의 연주, 즉물적이지 않다 혹은 건전한 중용 등 같은 곡을 연주한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특성, 음악가가 가진 훌륭한 자세 등을 읽어내 적은 글들이 참으로 하루키답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출간한 무라카미 하루키(사진=문학동네 공식 SNS)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그로페의 ’대협곡’을 두고 “성실하다고 해야할지, 지극히 진지한 묘사음악” “즉물적이면서도 무척 컬러풀하다” “드라마틱하다기 보다 파노라마에 가깝다‘거나 ‘정신분석을 받는 기분’ ‘잘 통솔된 훌륭한 연주’ ‘테크닉은 좋지만 시종일관 서두르는 느낌’ ‘꽤 이색적인 지휘’ ‘미성의 테너가 부르는 아리아를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음색’ ‘꼭 싸움을 거는 듯한 피아니와 바이올린 듀오’ 등 연주가들의 연주에 대한 평도 무심한 듯 세심하다. 간결한 어구들로 읽는 이들이 저마다 가진 그 ‘단어’에 대한 뉘앙스대로 받아들여지게 하기도 한다. 

 

레코드는 손질해주면 그 만큼, 오디오 장비를 정비할수록 소리가 좋아지니 어쩌면 귀찮을 법도 한 이 취미에 대해 하루키는 인간적 관계를 논한다. “LP판은 애정을 가지고 대하면 그만한 반응을 보여준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는 그의 표현대로 “어차피 거의 의미 없는 편향의 집적”인 인생의 단면이다.

지극히 하루키답게 모은 레코드들에 대해 하루키는 독자들의 체계적인 교양쌓기나 지식전달 혹은 레코드 자랑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평안을 주는 그저 취미생활일 뿐이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충분히 교양적이고 지식집약적이며 그 곡이나 음악가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책에서 언급한 음악가와 연주가, 음악 등을 좀더 알아보고 싶게. 그리고 딱 한장 가지고 있는 어느 놀라운 피아니스트의 LP판을 들어보고 싶게끔.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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