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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읽고 싶은 이어령'

[책갈피] 띠동갑 벗, 소설가 최인호가 2013년 죽기 전 추린 에세이 모음집

입력 2022-04-05 18:00 | 신문게재 2022-04-0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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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연합)

 

이 책은 현재 절판됐다. 운이 좋다면 아직 서점에 남아있는 ‘희귀본’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판된 에세이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 교육자, 장관으로서 ‘시대의 석학’으로 불렸던 고(故) 이어령의 에세이다. 고인이 유독 아꼈던 작가 최인호가 직접 선별하고 허락을 받아 출판된 유일한 책이니 믿고 봐도 좋다.

 

이어령 전 장관과는 띠동갑인 최인호 작가는 단편소설 ‘벽구멍으로’로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입선 후 1967년 ‘견습환자’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상도’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천국의 계단’ ‘별들의 고향’ ‘불새’ ‘바보들의 행진’ ‘깊고 푸른 밤’ 등 그의 작품들은 드라마로, 영화로 만들어지며 사랑받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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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이어령|2014년 출간 |1만 4800원.(사진제공=여백)

저자가 책의 소개글에서 직접 밝히듯 ‘읽고 싶은 이어령’은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책이었다. 당시 이 전 장관은 기존 출간된 글들을 재출간하는 데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침샘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었던 최인호 작가는 2013년 타계 서너달 전 자신이 직접 추린 모음집 원고를 이 전 장관에게 가져왔다.


당시 최인호 작가는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남은 기운을 모아 추린 이어령의 글 32편을 들고가 “옛글을 새 글처럼 포장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잠재웠다는 후문이다. 

출판사 여백관계자는 당시 이 전 장관이 “건네받은 원고 속에는 평소에 벗이 아끼고 사랑했던, 심사숙고해 선별한 나의 글들이 있었다” 감동했던 순간을 전했다. 

띠동갑 차이였으나 동료이자 평생의 벗으로 지내온 두 사람의 특별함이 한권의 책으로 완성된 셈이다. 저자는 “인호가 없었다면, 그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아마도 이 세상에 영영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를 추모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추억과 위안 그리고 ‘인간 이어령’이 직접 겪고 깨달은 인생의 지혜들로 가득 차 있다. 특유의 고독하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일상을 통찰하는 내용이 페이지마다 넘쳐난다. 세계 곳곳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들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요리와 여행, 한국인에 대한 통찰까지 작가 최인호가 글로 발견한 이어령의 매력은 마력에 가깝다. 몇십년에 걸친 책이니 페미니즘 시각으로 볼 때 불편한 문장과 국민을 계몽하려는 듯한 내용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살갑게 표현하는 게 서투른 어른의 훈수’쯤으로 여기면 어떨까.

‘읽고 싶은 이어령’은 그가 글과 행동으로 보여준 넓은 시야와 세월로 쌓은 지성을 엑기스로 응축한 책이다. 지난 2월 26일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은 출간 대기 중인 책만도 30여권에 이를 정도로 노년의 대부분을 작가로서 불태운 걸로 유명하다. 하지만 저자도, 그 글들을 추리고 엮어 출판하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지기도 고인이 된 ‘읽고 싶은 이어령’은 서점가를 가득 채운 그 어떤 책보다 현재진행형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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