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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1974년 미국에서도 ‘하야’가 있었다.

입력 2016-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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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시작해 ‘탄핵-하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상황은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슷합니다. 미 정치계에 한 획을 그은 이 사건은 닉슨 대통령의 ‘하야’로 마무리 되었는데요. 사건이 발발한 1972년부터 대통령이 하야한 1974년까지 미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워싱턴 외곽에 자리한 아주 낡고 허름한 호텔 ‘워터게이트’, 1972년 6월 17일 새벽 2시 30분 쯤, 이 호텔에 위치한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5명의 괴한이 침입했습니다. 경찰에 체포된 그들 몸에는 도청장치가 있었습니다. 괴한 중 한명의 수첩에서는 백악관 보좌관 하워드 헌트의 연락처도 발견됐죠. 단순침입 그 이상이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괴한과 백악관의 연관성을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은 닉슨의 선거자금 일부가 괴한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발견해 보도했지만 백악관은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 때까지도 국민은 닉슨을 믿었습니다. 파문은 대선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미 대선 역사상 가장 큰 표차이로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1973년 1월 8일 도청 사건 공판이 시작되면서 파문은 공론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괴한의 ‘위증’ 사실이 드러나며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논란이 일자 닉슨이 나섰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아랫사람들이 마음대로 한 일입니다. 사람관리를 잘 하지 못한 제 잘못도 있으니 참모진을 해임하겠습니다”
관련성을 인정하면서도 책임은 내려놓은 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입니다.

거짓이었습니다. 같은 해 7월 부보좌관이 닉슨이 도청사건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그 때부터 닉슨의 ‘은폐’가 시작되었습니다. 특검 해임을 지시하면서도 범죄에 대한 어떠한 인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닉슨은 1974년 8월 5일 증거물을 제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지시한 주범이었고 FBI 수사 방해공작을 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죠. 사면초가였습니다.

또한 거액의 탈세, 대기업 불법 자금 수수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백악관 주요 인사의 도청 활동과 문서 위조 등 부정행위도 허다했습니다.

닉슨은 탄핵압박에 몰리자 하야를 택했습니다. 탄핵안을 가결한 지 4일 만에 대통령직을 사퇴한 겁니다. 임기 중 사퇴한 유일한 대통령으로 남았습니다.

대형 권력형 비리에 ‘게이트’를 붙이는 것은 이 사건에서 유래됐습니다. ‘박근혜 게이트’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오늘도 한국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입니다.

박민지 기자 pmj@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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