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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더컬처] ‘킬미나우’로 단단해지고 ‘프라이드’로 행복해졌죠! 트와일라 그리고 실비아 이진희

입력 2017-06-1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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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고민했어요. 그래서. 두 작품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결정하기도 힘들었지만 하다 보니 더 힘든 부분이 있더라고요.”

연극 ‘프라이드’(7월 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의 1958년 실비아를 보는 듯했다. “올리버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 아프고 답답하고…”라며 “내가 왜 필립한테 올리버를 소개했을까, 올리버가 어떤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싶고”라며 진심어린 걱정을 담아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은 영락없는 ‘프라이드’의 2017년 실비아 혹은 ‘킬미나우’(7월 16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트와일라였다.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는데 저보다 보시는 분들이 더 힘드실 거예요. 저희는 거기(킬미나우)를 일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트와일라도 조이도 제이크도 그냥 현재를 살아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늘 슬프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바라보시는 분들은 너무 슬프죠. 게다가 음악도 너무 슬프잖아요. 저도 다큐멘터리나 런(처음부터 끝까지 진짜 공연처럼 해보는 연습) 지켜볼 때가 제일 힘들었거든요.”

감정적으로 쉽지 않은 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로, ‘킬 미 나우’의 트와일라로 무대에 오르며 자신을 다져가는 이진희는 그런 배우다.


◇두 번째 ‘킬미나우’와 ‘프라이드’ 그리고 두 번째 트와일라와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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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저는 원래 무대와 제 현실의 구분이 잘되는 사람이었어요. 무대를 굉장히 잘 털어내는 편이었는데 연달아 두 작품을 하다 보니 그게 좀 힘들더라고요. 공연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없는데 혼자 있는 다른 시간들이 오히려 지치고 힘들어졌죠.”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7년을 오가며 풀어가는 성소수자인 필립(배수빈·성두섭·이명행·정상윤, 이하 가나다 순)과 올리버(박성훈·박은석·오종혁·장율·정동화) 그리고 필립의 아내이자 올리버의 둘도 없는 친구 실비아(김지현·이진희·임강희)의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이다.

‘킬미나우’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조이(신성민·윤나무)와 그를 돌보느라 자신을 잃어가는 아빠 제이크(이석준·이승준)가 가족인 트와일라(이진희·정운선), 친구 라우디(문성일·오정택)와 함께 전하는 편견과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다.


“두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에 비하면 작품과 그 속의 인물들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훨씬 더 저한테 끌어당길 수 있었죠. 처음 연습할 때부터 둘(킬미나우의 트와일라, 프라이드의 실비아)을 분리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작품 보다는 인물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고 그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이진희는 재연 ‘킬미나우’로 두 번째 트와일라, 삼연 ‘프라이드’로 두 번째 실비아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애써 표현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1, 2년 사이에 저 자신이 변했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거든요. 실비아도, 트와일라도 그때(2015년 프라이드 재연, 2016년 킬미나우 초연) 보다 훨씬 강해졌죠. 이렇게 살아왔던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진희에 닿아있던 ‘킬미나우’의 트와일라 “저를 단단하게 한 힐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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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개인적으로 ‘킬미나우’는 저를 좀 더 단단하게 해준 작품이에요. 간접경험이라고만 하기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저랑 많은 부분들이 닿아 있거든요.”

선천성 신체장애를 가진 조이와 그를 돌보는 아버지 제이크, 고모 트와일라의 ‘킬미나우’는 곧 이진희의 가정사 일부이기도 하다.

“제 남동생 얘긴데…(조이처럼) 이렇게까지 아프진 않아요. 아픈 정도의 차이는 크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 가족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아픈 가족한테 가족이 늘 좋은 얘기만 하고 무조건 따뜻할 수는 없어요. (남동생을) 나무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죠. 그 친구(남동생)의 아픔,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이 느꼈을 아픔들, 외로움 등을 안보려고 피해왔었는데 공연이기 때문에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되게 아팠고 힘들었어요. 초연에는.”

자신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들의 아픔을 지켜보는 게 너무 아파 외면했던 이진희에게 ‘킬미나우’ 초연은 너무 울어 연습을 아예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작품이었다.

“제가 가장 아팠던 건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조이와 제이크였어요. 마지막에 로빈 아줌마한테 ‘꼭 다시 와주세요’라는 조이의 말이나 라우디랑 싸우면서 ‘나 혼자 오줌 쌌잖아!’하는 거나 ‘난 이 모자도 벗지 못해’라는 조이의 말 등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계속 아팠어요. 정말 난데없는 장면들에서 울고 힘들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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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미나우’. 조이 역의 윤나무와 고모 트와일라 이진희.(사진제공=연극열전)

 

초연 연습 당시 런을 돌 때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 리딩을 못했을 정도로 ‘킬미나우’는 이진희에게 바라보기 힘든 현실이었고 아픔이었다. 듣기 힘든 부분들을 듣지 않으려고, 생각을 딴 데 집중시키느라 애를 먹어야 했던 매일이었다.

“저는 제가 굳은살이 되게 많이 박힌 줄 알았어요. 그런데 덮어 두고 있던 상처들이 엄청 많았더라고요. 저희 식구들은 저를 되게 차갑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가족들한테 감정표현도 잘 안하고 굉장히 이성적으로 대하거든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트와일라랑 비슷해요. 오빠인 제이크가 아프고부터는 자신이 더 정신을 차리고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공연 때 자꾸 울게 되니까…관객분들이 ‘킬미나우’를 보고 나면 너무 울어서 얼굴도 빨갛고 눈도 붓고 그러시잖아요. 그때의 저는 매일 연습이 그랬어요.”

초연 중반을 넘어서까지도 아프고 힘들었던 이진희를 단단하게 다지고 그 아픔을 좀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한 이들 역시 동생과 가족이었다.

“동생이 공연을 보러 왔어요. 사실 안보게 하고 싶었어요. 제 입장에서 ‘킬미나우’는 장애가 있는 가족을 둔 분들한테는 추천하고 싶은 극이지만 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는 추천하기 힘든 공연이었거든요. 공연 내내, 커튼콜 때까지도 고개를 못들었어요. 남동생, 같이 온 아빠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결국 커튼콜 때 마주쳤어요. 못견디게 슬펐죠.”
 

정작 당사자인 동생은 달랐다. 우려와 달리 동생은 “너무 재밌게 봤고 너무 공감했어. 내가 가족들을 이렇게 힘들게 했나 싶어 힘들기도 했는데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든 조이도 살고 제이크도 사는데 나라고 못살까…희망을 얻은 것 같아”라며 밝게도 웃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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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배우들과 “와~ 이거 나 아는 거야!” “이거 하실 때 되게 힘드셨죠? 저도 되게 힘들었거든요”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곤 걸어가는 뒷모습이 저한테는 여전히 아프고 슬펐지만 가족들이 너무 재밌어 하는 모습이 정말 많은 위로가 됐어요. 저한테는 힐링극이죠. 그날의 공연이 아니었다면 재연도 똑같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날 공연 이후로 의연해졌고 극도, 제 가족도, 저 자신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죠.”


◇‘프라이드’의 실비아처럼 “필립이 너무 슬퍼요”

“사실 ‘킬미나우’는 무대에 오르면 진짜 집에 사는 것처럼 하게 돼요. 반면 ‘프라이드’는 관객들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이지만 저에게도 배우로서 굉장히 행복을 느끼게 하죠. 게다가 ‘프라이드’는 관객들이 주는 힘이 엄청 단단해요. 그 단단함 안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순간들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굉장히 짜릿해요.”

배우로서의 ‘프라이드’와 자신의 일상 같은 ‘킬미나우’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 이진희는 “그래서 공연 전날은 ‘프라이드’가 훨씬 부담이 크다”며 “끝나고 나서 ‘프라이드’가 쾌감을 준다면 ‘킬미나우’는 어떤 후련함이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 ‘프라이드’를 할 때는 실비아의 외로움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하지만 두 번째 공연에서는 필립을 보면서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자기 인생이 얼마나 가짜 같을까 싶어요. 전에는 그걸 통해서 오는 내(실비아) 인생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고 아팠다면 지금은 그 모습 자체가 너무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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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 1958년의 실비아 이진희.(사진제공=연극열전)

이진희는 ‘프라이드’ 3연에 실비아로 함께 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를 1958년의 “필립, 난 당신이 너무 슬퍼”로 꼽았다.

 

자다 깬 실비아와 필립이 올리버와 리처드 코블리, 아이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1막 3장 중의 한 장면이다. 올리버를 만남으로서 선명해지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마음의 벽을 치고 사는 필립을 향한 말이다. 


“필립의 뒷모습 이야기를 할 때가 지난번 공연이랑 가장 다른 것 같아요. 제 스스로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슬픔이 컸다면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은 모습을 견디기 힘든 거죠. 둘이 같이 있을 때의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서 아이를 갖고자 노력했던 실비아의 마음이 그래서 더 아픈 것 같아요. 너무 아파서 아기 얘기를 하는 실비아가 참기 힘들 때도 있죠.” 

 

필립으로 인해 실비아가 아픈 장면과 더불어 오롯이 실비아로서 아픈 장면은 올리버에게 “나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2017년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을 보고 더 아팠던 1958년의 실비아와 맞닿는 장면이기도 하다.

“실비아가 굉장히 행복해 하는 순간인데 겉으로는 울지 않지만 속으로 콱 아플 때가 있어요. 그래서 더 믿어요. 1958년의 실비아는 반드시 행복해졌을 거예요.”

그렇게 두 번째 ‘프라이드’를 만나면서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라고 되뇌며 떠나는 실비아의 마지막에 대한 감정이나 해석도 달라졌다.

“(2015년 재연에서는) 억지로, 슬퍼서 가는 느낌이 강했어요. 저 여자가 저렇게 인사를 하고 가서 어떻게 살까, 혹시나 안좋은 생각이나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계셨을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요. 1958년의 실비아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물론 아프지만 충분히 희망를 보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그로 인해 필립도 분명히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고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진희는 스스로 떠나는 선택을 한 실비아는 물론 여전히 자신을,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올리버를, 그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실비아를 부정하며 혼란과 두려움에 휩쓸리는 필립도 행복졌을 거라는 희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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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자신이 믿었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 필립이 당장은 힘들 거예요. 실비아에 대한 죄책감도 들테고 정확한 시기는 나오지 않지만 (2막 4장에서) 병원도 갔고 방황도 하겠죠. 하지만 필립이 그 이후로 행복하게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실비아는 떠나지 못했을 거예요. 필립이 당장은 무너져내리겠지만 자신을 찾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실비아가 떠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실비아가 필립을 그렇게 버려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 실비아의 마음을 필립이 충분히 알았을 거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희망은 이진희가 ‘프라이드’의 실비아와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살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실비아 뿐 아니라 트와일라도 잘 살았을 거예요. 조이, 라우디랑 셋이서 더 힘내서 잘 살았을 거예요. 분명히.”


◇상대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실비아와 트와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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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상대를 볼 줄 아는 눈,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바라보는 남다른 눈을 가졌다는 게 실비아와 트와일라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실비아도, 트와일라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집중력이 엄청난 것 같아요. 상대로 인해 살아갈 힘을 받고 거기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사람이죠. 어떤 상황이든 자기가 버티고 살아갈 힘을 찾는 단단한 사람들이요.”

실비아와 트와일라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말한 이진희는 “오빠와 조이를 돌보며 지지고 볶고 사는 게 트와일라가 살아가는 힘”이라며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늘 내 옆에 있고 그로 인해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살아갈 힘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필립과 있을 때, 올리버랑 있을 때, 두 사람과 같이 있을 때의 실비아는 완전히 다르죠. 그래서 그 순간들이 지나고 혼자 남았을 때 허무하게 보내는 시간들을 느꼈다는 실비아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외롭게 보냈을까…필립이나 올리버랑 있을 때도 외롭지만 견딜 수 있는 건 상대에게 집중하기 때문이죠. 그게 실비아가 살아가는 방법 아니었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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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첫 장면. 왼족부터 필립 역의 성두섭, 실비아 이진희, 올리버 오종혁.(사진제공=연극열전)

 

실비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이진희는 1958년 남편 필립과 동화작업을 함께 하는 올리버가 만나는 ‘프라이드’ 첫 장면에 대한 고민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셋이 만나는 이 장면 전에 이미 너무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실비아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며 “그 세계에서 버텨내려다 일정 정도 망가져버렸거나 무뎌졌을 것들을 담고자 노력했다”고 전했다.

“‘프라이드’ 뿐 아니라 모든 극이 그래요. 극적인 순간, 관객들은 처음 보는 무대 위 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이전의 것들이 다 담겨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에 세 사람이 만나는, 실비아가 필립과 올리버를 만나게 하는 1막 1장은 여전히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이 닿으려 노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제가 실비아였더라도 필립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겠지만 덜컥 올리버를 집으로 데려왔을까 싶은 생각은 들어요. 실비아는 상대에 굉장히 집중하는 사람이니 두 사람(필립과 올리버)이 동질의 영혼이라는 걸 알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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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잠에 서 깨 필립과 함께 올리버, 성희롱 사건에 휩쓸려 스스로 목을 맨 옛 동료배우이자 동성애자 리처드 코블리에 대해 나누는 1막 3장의 대화는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장면이다.  

 

“그 대화는 실비아가 외로움을 토로하는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리처드 코블리의 죽음, 스스로 목을 맨 게 엄청 큰 충격이었을 것 같아요. 죽음도 아프지만 그 방법이, 저(실비아)는 모르는 그들(동성애자들)의 아픔으로 다가왔고 필립의 아픔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필립이 저런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었을테고…그래서 더 이상 미뤄두고 모른 척 감춰둘 수 없어서 (필립과 올리버를 만나게 하는) 그런 선택을 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필립의 “우리가 만나는 걸 꺼려한 것 같아요”와 올리버의 “실비아가 우리를 만나게 했어요”라는 대사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또 같은 의미기도 하다.

“그 전에도 만나게 할 기회가 있었지만 실비아 스스로가 피해왔을지도 모르죠. (리처드 코블리 소식을 듣고) 그 선택을 하기까지 3일 내내 잠못 드는 밤을 보냈을 거예요.”

세 사람이 만나면서 시작하는 1막 1장은 실비아가 고민하느라 하얗게 새운 수많은 밤들과 그런 실비아에 닿기 위해 애쓴 배우 이진희의 노고가 고스란히 녹아든 장면이다.

“실비아가 두 사람(필립과 올리버)이 그렇게 (사랑하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만나게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필립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올리버라는 사람이 필립이라는 사람과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필립이 자기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제(실비아)가 올리버를 동질의 영혼을 가진 친구로 느끼는 것처럼 필립에게도 그런 친구가 생기기를 바랐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더 불행해질 것을 실비아는 분명 알았던 것 같아요.”


◇100개가 넘는 경우의 수 ‘프라이드’, “매회 첫공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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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프라이드’에는 네명의 필립, 다섯명의 올리버, 두명의 남자 그리고 세명의 실비아가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그 경우의 수만도 100개를 훌쩍 넘는다. 게다가 필립,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는 1958년과 2017년을 오가야 하고 세 사람의 관계가 극도로 중요한 극이기도 하다.

“트와일라는 ‘킬미나우’라는 극 안에 너무 명확하게 소속이 있어요. 하지만 실비아는 필립과 올리버 사이 어딘가에서 위치가 계속 바뀌죠. 그런데 그 역할들이 너무 중요해요. 실비아가 어떤 사람인지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필립과 올리버를 어떻게 바라봐주느냐에 따라서 둘의 관계가 전혀 달라지거든요. 실비아가 필립을 만났을 때, 올리버를 만났을 때 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관계들이 너무 중요한 극이죠.”
 

‘프라이드’는 각 역할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해야 하는 대사, 상황, 느껴야 하는 감정들보다 필립·올리버·실비아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주고받는 느낌, 감정 등을 촘촘하게 엮으면서 완성시켜가는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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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의 실비아, ‘킬미나우’의 트와일라로 출연 중인 이진희.(사진=양윤모 기자)
그만큼 현장에서 주고받는 느낌과 감정, 상태 그리고 상대 배우에 따라 전혀 다른 극이 되기도 한다. 이에 이진희는 “제 상태는 물론 상대에 더 집중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현장에서 주고받는 데 더 집중하게 돼요. 1958년과 2017년의 캐릭터도 다르고 배우들마다 다른데 100개가 넘는 조합이 있으니 매회 첫공연처럼 긴장하면서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공연 전에 대사도 다시 맞추고 꾸준히 연습하면서 배우로서는 정말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실비아의 단단함에 대해 이진희는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생각하는,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실비아”라고 표현했다.

“실비아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상대에 대해 굉장히 깊이 생각하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에요. 1958년, 2017년을 오가며 울다 웃을 수 있는 건 그래서죠. 물론 배우들마다, 저의 상태에 따라 표현은 다 다르죠.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실비아, 그가 가진 단단함이 분명 있어요. 그걸 유지하려고 매공연 노력하고 있죠.”

이진희는 인터뷰 내내 극 중 실비아처럼 단단한 속내를 진중하게 그리고 쾌활하게 털어놓았다. 그런 이진희를 보면서 ‘프라이드’ 중 올리버의 대사처럼 털어놓고 싶어졌다. “실비아여서 그리고 트와일라여서 고맙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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