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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지 칼럼] 서민금융 정책은행 설립해야

입력 2022-01-12 08:43 | 신문게재 2022-01-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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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 한 농부가 밭에 놔두었던 호미며 괭이가 지난여름 폭우에 휩쓸려 가 버리자 농기구 보관용으로 밭가에 조그만 창고를 만들었다. 할멈이 아파 새참을 못 가져오게 되면서 멀리 계곡에서 호스로 물을 끌어와 간단한 요기도 하고 목도 축일 수 있게 됐다. 가끔 땡볕을 피해 잠시 눈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얼기설기 지붕을 얹고 한 몸 누일 판자도 들여 놓았다. 어설픈 대로 나름 유용한 농막은 되었다.

 

IMF외환위기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 진작책이 작동했고 위기를 졸업할 무렵인 2002년경에는 ‘카드대란’이란 봇물이 되어 터지고 말았다. 카드대금 연체는 신용불량자 양산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사기죄로 처벌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카드돌려막기가 막히자 다른 금융기관 채무 또한 무더기 연체로 이어져 부채폭탄이 되었다.

 

부채폭탄이 터질 지경이 되자 부랴부랴 채무조정을 위해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만들어졌다. 신복위가 금융기관과 협약을 맺어 일정한 기준에 따라 채무감경과 분할납부로 당장의 급한 불은 일부 끌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조정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기에도 이르렀다.

 

설상가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이미 터져버린 부채도 부채지만 재기를 위한 지원 대책이 절실해졌다. 미소금융, 바꿔드림론, 햇살론, 새희망홀씨 등 서민정책금융상품이 속속 출시되었다. 

 

채무조정 및 서민정책금융상품 운영 재원은 신용회복기금(캠코)과 기업·금융기관 출연금과 휴면예금으로 조성된 기금(미소금융지원재단)이 주축이 되었다. 신용회복기금은 IMF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부실금융기관 및 부실징후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조성된 부실채권관리기금의 잉여금이 재원이었다.

 

신용회복기금은 국민행복기금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2016년 설립된 서민금융진흥원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미소금융 또한 서민금융진흥원에 이관되었다. 이로써 흩어져 있던 서민금융지원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개괄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서민금융과 관련된 정책은 특수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때그때의 사정에 맞추어 기획되고 시행되어왔다. 마치 농부가 필요에 의해 이것저것 갖다 붙이다 보니 농막이 된 것처럼 서민금융진흥원 출범으로 일단은 하나의 통합기능까지는 갖추어졌다.

 

그런데 재원을 들여다보면 정책의 지속가능성이나 확장성 관점에서 불완전한 측면이 있다. 주된 재원이 금융기관의 휴면예금인데 이 돈의 주인은 예금자다. 다만 소액이다 보니 말 그대로 은행에서 휴면상태로 있을 뿐이고 언제든 예금자가 반환청구하면 돌려주어야 할 돈이다.

 

더구나 이자가 지급되는 돈이니 5년이 지나도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2012년 대법원이 판결하자 약관을 고쳐 이자지급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이자를 찾아갈 때 일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2017년부터 다시 재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시효완성여부에 대한 시비가 남아 있어 여전히 법률 리스크가 있는 돈인 것이다.

 

결국 다른 방식의 재원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채권발행, 차입, 기부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익창출 능력이 전제되지 않은 부채를 통한 자체 자금조달에는 한계가 있다. 2020년 말 서민금융진흥원의 자산구성을 보면 전체 자산 3조1천7백억 중 62%가 휴면예금·보험금이고 기부금은 7%에 불과하며 나머지 31%는 신용보증계정이다.

 

재원조달과 관련해서는 일본정책금융공사의 재정투융자제도(FILP)와 같이 국채발행을 통한 직접 재정 투입과 더불어 정부 보유 주식의 배당금이나 정부보증채권 발행을 통한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일본은 과거 FILP에서 우체국예금과 연기금도 활용했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정책서민금융이 지속가능하고 확장성을 담보하는 방안으로 서민금융에 특화된 정책은행(Policy Bank) 설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금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되 우체국예금처럼 원리금 전부의 지급을 정부가 보증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만하다. 부실충당 재원은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복지재정으로 충당하거나 정책은행이 수익사업을 통해 조달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금융을 실천하는 민간기관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프랑스의 Adie나 스페인의 MicroBank와 같은 성공적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설계를 한 뒤에 집을 만들어야지 만들다 보니 지어진 집이야 농막이 되고 말 뿐이다. 이제라도 집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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