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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무대 뒤에서 속살거리는 프롬프터에 빗댄 지금 이야기, 연극 ‘소프루’

[Culture Board] 연극 ‘소프루’

입력 2022-06-15 18:00 | 신문게재 2022-06-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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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루
연극 ‘소프루’ⓒChristophe Raynaud de Lage(사진제공=국립극장)

 

“2010년 외부 협력 연출로 포르투갈 리스본의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Teatro Nacional D. Maria II) 작품을 한 적이 있어요. 그곳 연습실 현장에서 프롬프터(Prompter, 연극 중 프롬프터 박스나 무대 인근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등을 일러 주는 사람)를 봤어요. 그가 속삭이는 모습이 우아했죠.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만 눈에 띄었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앙상블을 이루는 모습이, 자신의 직업에 임하는 태도가 멋지게 느껴졌고 신선했어요.”

40년 넘게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의 프롬프터로 일해 온 크리스티나 비달(Cristina Vidal)과의 강렬한 첫 만남 후 작가이자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는 시적이고도 철학적인 연극 ‘소프루’(Sopro, 6월 17~1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를 기획했다. 
 
포스터_국립극장 해외초청작 소프루(sopro)
연극 ‘소프루’(사진제공=국립극장)

‘숨, 호흡’이라는 뜻의 ‘소프루’는 여전히 현역 프롬프터로 활동하며 배우들과, 공간과, 시대와 앙상블을 이루는 크리스티나 비달의 속살거림에 빗대 극장에 깃든 숨결에 귀 기울인다.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전언처럼 “포루투갈에도 국립극장에 2명 뿐”이며 “유럽에도 거의 사라진 직업군”인 프롬프터의 이야기가 초연되기까지 7년여. 

 

티아구 호드리게스 작·연출이 2015년 크리스티나 비달이 40여년을 몸 담아 온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선임되고도 2년 후의 일이다.  


‘소프루’는 자신이 조명을 받거나 관객들에게 드러나거나 무대에 서기를 극도로 꺼린 크리스타 비달을 “당신이 아니라 무대 뒤, 보이지 않는 데서 일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작품”이며 “당신은 그들을 대표해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라 설득하는 데 온힘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소프루’는 2017년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이 제작해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후 파리가을축제, 더블린축제, 빈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공연예술축제와 각 도시의 극장에서 공연돼 사랑받았다.

“모든 행위 자체가 기억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하는 그는 ‘소프루’에 대해 “기억하는 것에 대한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팬데믹으로 위기에 처한 극장 이야기”라고 소개한 그는 ‘소프루’를 통해 “극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위기를 겪어 왔지만 팬데믹으로 점점 심화되면서 (비대면이 아닌)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소프루Sopro 공연사진(2)_Filipe Ferreira
연극 ‘소프루’ⓒFilipe Ferreira(사진제공=국립극장)

 

그가 “극장에 오는 행위 자체가 절대 만날 수 없는 집단과 한 공간에서 만나는 경험”을 선사하는 ‘소프루’는 프롬프터 크리스티나 비달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폐허처럼 보이는 극장에서 크리스티나 비달은 배우들을 불러낸다. 그리곤 티아구 호드리게스가 ‘소프루’를 만들자 설득하던 일, 공연 중 커튼이 젖혀져 노출돼버린 에피소드 등 그가 40년간 몸 담아 온 극장에서의 기억들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실제 프롬프터인 크리스티나 비달의 여정과 더불어 그가 함께 했던 몰리에르의 ‘수전노’, 장 라신느의 ‘베레니스’,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소포크라테스의 ‘안티고네’ 등을 비롯해 다양한 셰익스피어와 포루투갈 희곡 등이 교차한다. ‘소프루’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 정치·경제 등 사회를 비추는 티아구 호드리게스 작·연출의 작품세계와 맥을 같이 한다. 

티아구 호드리게스
연극 ‘소프루’ 작가이자 연출가 티아구 호드리게스ⓒFilipe Ferreira(사진제공=국립극장)

 

9살 소녀의 시선으로 포루투갈 긴축 재정 시절을 빗댄 ‘기린 생애의 슬픔과 기쁨’(2011), 사라자르 파시즘 정권의 검열 시스템을 그린 ‘무릎 아래 세 손가락’(2012)이 그렇고 티아구 호드리게스 작·연출의 할머니가 직접 겪은 전쟁 이야기를 독일, 러시아 소설에 섞어 시와 기억에 대해 풀어낸 ‘기억하며’(2013)이 그렇다. 개인의 이야기를 고전과 엮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2014)를 비롯한 ‘보바리’(2016), ‘그녀가 죽는 방식’(2017) 등 그의 대표 레퍼토리들이 그렇다.

티아구 호드리게스는 “지금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누구나 목소리를 내고 ‘나’에 대해 말하는 시대지만 그 속에서도 ‘나’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은 채 타인을 위해 일하며 행복과 의미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의미를 더했다.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와 보이지 않는 이들에 대한 가치는 극 내내 속닥거리던 크리스티나 비달의 마지막 7줄 대사에 고스란히 응축된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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