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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한 자리에서 20년 풍월당, 지속성의 힘이 탄생시킨 연광철의 ‘고향의 봄’

입력 2023-11-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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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연광철_한국가곡집고향의봄_제공 풍월당(24)
풍월당 20주년을 기념한 한국가곡집 ‘고향의 봄’ 베이스 연광철(왼쪽부터)과 피아니스트 신미정,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사진제공=풍월당)

 

“아무도 듣지 않으니까 음반을 만들지 않는다는 논리를 저는 믿지 않습니다. 공급이 없기 때문에 수요가 없지 수요가 없어서 공급이 없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시골에 피자 가게가 생기면 그 동네 사람들도 피자를 먹어요. 하지만 그 가게가 문을 닫고 나가면 더 이상 피자를 안먹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한국 가곡을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려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음반을 만들게 됐습니다.”

한곳에서 20년, 폭발적인 대중성으로 판매고가 높은 장르도 아닌 클래식 음반 전문 매장인 풍월당을 운영해온 박종호 대표는 첫 자체제작 음반인 한국가곡집 ‘고향의 봄’에 대해 “한국 가곡에 대한 숙제 같은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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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 박종호 대표(사진제공=풍월당)

“우리나라를 내세울 만한 음악이 과연 있는가, 한국의 젊은 연주가들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만 그들이 하는 음악은 사실 한국 정체성이 거의 없는 서양 음악을 그대로 하는 것이거든요. 그걸 우리나라 클래식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이 있고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정서를 아주 잘 담은 것이 한국 가곡이라고 생각해요.”

이어 박 대표는 “물론 한국 가곡의 퀄리티가 독일의 리트(Lied)나 프랑스·이탈리아 가곡에 비해 떨어진다거나 피아노 반주가 체계화돼 있지 않다는 등 여러 가지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번 음반작업을 하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고 덧붙였다.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건 아니지만 풍월당이 처음으로 발매하는 음반인 연광철의 ‘고향의 봄’은 악보에 손 댄 것도 없고 피아노 반주를 바꾸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그 곡들을 원래대로 살렸는데도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이죠.”

그렇게 1992년부터 100여년간 불리고 들었던 ‘고향의 봄’ ‘비목’ ‘청산에 살리라 ’‘사랑’ ‘산수화’ ‘산’ ‘진달래꽃’ ‘그 집 앞’ 등 한국 대표 가곡들이 세계적인 바그너 스페셜리스트이자 베를린 궁정가수인 베이스 연광철의 목소리로 실린다. 발매를 기념해 ‘한국가곡 독창회’(12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도 준비 중인 그 앨범의 제목은 연광철이 나고 자랐던 충청도 시골마을을 떠올리며 무반주로 노래한 ‘고향의 봄’이다.

 

연광철은 “한국 가곡을 부르는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며 “제가 올해로 유럽에서 활동한 지 30년이다. 그 30년은 그들의 작품과 음악을 소화하고 그들의 문화 속에 살며 협업하려고 노력했지만 사실은 늘 정체성에 많은 혼란이 있었던 시간”이라고 털어놓았다.

 

연광철
베이스 연광철(사징제공=풍월당)

“(‘고향의 봄’ 음반 녹음을 위해) 이번에 노래를 부르면서 전기도 안들어오는 시골에 살던 때, 그곳의 정취, 아름다운 자연을 느기고 떠올릴 수 있었어요. 30여년간 외국 사람으로서 한 역할에 대해 해석하고 노래하던 제가 아닌 저의 모습을 찾게 됐죠.”

이어 연광철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기회가 될 때마다 한국 가곡을 불러보려고 한다”며 “30여년 동안 (유럽에서) 그들의 음악을 해석하고 문화에 젖어들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우리 가곡에서도 새로운 해석, 새로운 감동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미정
피아니스트 신미정(사진제공=풍월당)

 

음반의 피아노 연주는 결성 10주년을 맞은 신박듀오(신미정·박상옥)의 신미정이 나서 힘을 보탰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가게된 계기가 가곡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들만의 시어로 된 가곡을 공부하면서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전했다.

“교수님들께 항상 단어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아 진정성을 가지고 연주해야한다고 배웠어요. 그 점에 집중해서 항상 가곡을 반주하려고 노력했는데 한국 가곡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다가오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아요. 녹음하는 내내 지금까지 가족, 친구들과 고향에서 함께 했던 선물같은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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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앨범 커버는 고(故) 박서보 작가의 작품이다(사진제공=풍월당)

 

이번 앨범의 커버는 지난 10월 13일 세상을 떠난 한국 미술계의 거장 박서보 화가의 작품이다. 이에 대해 박종호 대표는 “박서보 선생님 아드님이 풍월당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많은 음반을 구매하시는 손님 중 한분”이라며 “표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박서보 선생님 작품을 떠올렸다. 생전 박 선생님이 흔쾌히 허락해주셨고 정식 발매 전 음반을 보내드리기도 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돌아가시기 전 제가 한번 뵌 적도 있는데 여전히 선을 계속 긋고 계시더라고요. 박서보 재단에서 대가 없이 저희에게 사용을 하게 해주셔서 한국을 대표하는 것들로 완성할 수 있었죠. 더불어 풍월당 회원 200여명이 이 프로젝트를 상당히 후원해주셨습니다. 애초 세계적인 유명 레코드 회사가 함께 하기로 했는데 상당히 진척된 단계에서 못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어요. 그래서 풍월당 운영 20년만에 회원분들께 아쉬운 소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금을 모아 한국을 대표하는 가곡, 연광철, 박서보의 단색화, 신미경의 피아노 반주 그리고 20년을 한 자리에서 클래식 애호가들을 맞이하며 ‘성지’로 자리매김한 풍월당의 합작품인 ‘고향의 봄’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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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 20주년을 기념한 한국가곡집 ‘고향의 봄’ 베이스 연광철(왼쪽)과 풍월당 박종호 대표(사진제공=풍월당)


“얼마 전에 뉴욕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한국을 다니러 오신 길에 풍월당을 방문하셨어요. 그 분께서 우리 직원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1만불을 지갑에서 바로 꺼내 현찰로 기부하고 가셨어요. 이 역시 ‘고향의 봄’ 프로젝트에 넣었죠.”  

 

이어 박 대표는 “20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버틴 게 저에겐 가장 감동적인 사실이다. 제가 아니라 풍월당에 와서 음반을 사주시는 분들,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지금까지 끌고 오신 것”이라며 ‘지속성의 힘’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번 ‘고향의 봄’ 프로젝트는 우리가 잊은 옛날 어머니의 목소리, 할머니의 손길, 집에서 먹던 된장 등을 다시 살리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 가곡이 1922년부터니까 100여년이 됐어요. 그 100여년 동안 많은 음악가들이 클래식이라는 서양 음악에 담아내려고 무척 애썼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지금의 우리가 한국 가곡을 들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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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 20주년을 기념한 한국가곡집 ‘고향의 봄’ 베이스 연광철(왼쪽부터)과 피아니스트 신미경,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사진제공=풍월당)

 

그리곤 “단 한번도 한국 가곡을 들어본 적이 없는 20대의 풍월당 직원이 이 음반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며 “한국 가곡은 그렇게 우리의 보편적 의식 안에 들어 있는 음악이고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라고 강조했다.

“음악을 아는 것은 피아노를 칠 줄 알거나 음악을 할 줄 아는 게 아니에요. 음악을 듣는 것이죠. K팝이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 가곡은 여전히 한국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매일 TV로 라디오로 한국 가곡을 듣곤 하셨어요. 하지만 점점 한국 가곡을 접할 기회들이 사라져 버렸죠. ‘고향의 봄’이 이제 다시 우리의 음악을 듣고 부르는,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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